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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런 키스>, 시청률 3.5%도 과분하다

[TV리뷰] 손발이 오글오글...첫 회부터 한숨 짓게 만드네

등록|2010.09.03 12:49 수정|2010.09.03 12:49

▲ MBC 새 수목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의 두 남녀 주인공 정소민(오하니 역)과 김현중(백승조 역). ⓒ MBC


이제 고작 2회 정도 방송된 드라마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쓴 소리를 하기란 쉽지 않다. '이 드라마는 철저하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든지, 혹은 '이 작품의 장점은 이것, 이것이지만 문제점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든지 하는 분석을 하기에 2회라는 분량은 부족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드라마는 2회가 아니라 단 1회만 보고도 문제점이 기사 분량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쏟아지니, MBC 새 수목드라마 <장난스런 키스>가 바로 여기에 속했다.

<궁> <돌아온 일지매> 황인뢰 PD와 김현중이 만났다. 거기에 2700만 부가 팔린 검증된 원작이 더해졌다. 잘 버무리기만 하면 대박, 못해도 중박은 갈 것이라는 게 <장난스런 키스>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성급한 사람들은 김현중의 전작 <꽃보다 남자>와 황인뢰 PD의 연출작 <궁>을 언급하며 <장난스런 키스>도 그쯤은 하지 않을까,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 걸? 전작들을 언급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의 시청률(3.5%, 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이 튀어나왔다. 물론 경쟁작이 시청률 50%를 바라보는 국민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와 이미 고정적인 마니아 시청자 층을 확보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라는 점에서, 애국가 시청률은 굴욕적이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문제는 시청률만이 아닌 드라마 내적으로도 지적할 만한 문제점이 수두룩했다는 데 있다.

무릇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1회란, 드라마 속 이야기의 배경에 대한 설명과 등장인물의 캐릭터 전달에 충실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을 빨라진 시청자들의 체감속도에 맞춰 짜임새 있는 편집과 매끄러운 화면 교차로 스피디하게 끝내고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드라마 1회의 모범답안이다.

만화적 상상력의 충실한 재현이 오히려 독이 됐다

▲ 극중 오하니의 상상은 시청자의 손발을 오글거리게 만들었다. ⓒ MBC 화면캡쳐


그러나 <장난스런 키스>의 1회는 이 모범답안과는 너무 달랐다. 편집은 엉망이었고, 따라서 화면 구성과 교차는 제때 이뤄지지 않고 늘어졌다. 당연히 스피디한 전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맥락 없는 장면들의 교차로 상황 설명도 매끄럽지 못했고, 캐릭터 전달도 실패했다. 드라마의 1회가 끝나고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건, 엔딩 장면의 테디 베어를 통해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황인뢰 PD라는(황인뢰 PD는 <궁> 엔딩 장면에도 테디 베어를 사용했다), 그것 하나뿐이었다.

오프닝 장면이 오하니(정소민 분)의 상상신이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드라마의 곳곳에는 이런 만화적 상상력이 스며있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을 뒷받침해주고 부연 설명하는 그림자의 자리에 머무르며 조화를 이뤄야지, 상상이 현실세계와 대등해서는 안 된다. <인셉션>을 찍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장난스런 키스>는 이 균형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맥락 없는 상상신이 드라마가 시작하고 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3번이나 삽입된 바람에 극의 흐름은 자꾸 끊겼고, 시청자들은 한참이 지나고도 극에 몰입하지 못했다. 더구나 만화적 상상력이란 때론 지나치게 유치찬란한지라, 일부 시청자들은 "손발이 오글거려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청자가 손발이 오글거려 극에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청자가 드라마에 대해 '만화 같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과 '만화 같이 유치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만화 같은 세계의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만화 같은 세계의 주인공을 타자의 시선으로 그저 바라보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장난스런 키스>같이 10~20대 여성 시청자를 주 타깃층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이런 현상은 치명적이다. 그녀들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여자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켜 꽃같이 아름다운 남자 주인공과의 달콤한 로맨스를 대리만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 오하니의 손발이 오글거리는 상상에 시청자들은 그만 그녀에게 자신을 대입시키기 포기하고 말았다.

더구나 <장난스런 키스>는 동시간대에 강력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달달하고 애절하기까지 한 청춘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홍자매가 신민아와 이승기 조합으로 10% 초반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구축해놓은 상황. 시청자를 빼앗아 와도 모자를 판에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으니 이 승부, 끝까지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아는 데는 크게 지장 없을 듯하다.

제작진이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드라마'다

▲ 비중이 늘어난 만큼 봉준구를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도 달라야 했다. ⓒ MBC


<장난스런 키스>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제작진이 드라마를 만들면서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고민을 하긴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방향이 잘못됐다. 제작진은 만화를 드라마로 옮기면서 만화 속 세계를 현실로 그대로 옮겨오는 데만 집중한 듯하다. 드라마 초반의 숲 속 상상신에서 나온 화려한 CG나, 형형색색의 국수 가락이 널린 식당 세트 등에서 제작진이 고심한 흔적을 찾을 순 있었다.

하지만 신경 써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 제작진이 가장 크게 고민했어야 하는 부분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을 드라마화하면서, 그 이야기를 드라마에 어울리게 고쳐야 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만화에서보다 드라마에서 비중이 늘어나 남녀 주인공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봉준구(이태성 분)를 그리는 방식이 그렇다.

만화에서 봉준구는 오하니를 열렬히 짝사랑하는 막무가내 캐릭터다. 그러나 만화에서는 초점 자체가 남녀 주인공 두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 비중은 작은 편이었다. 그런데 드라마에선 비중이 한층 커졌다. 차후에 등장하는 이시영까지 더해 사각관계를 형성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를 그리는 방식 또한 만화와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봉준구는 만화의 킨노스케(원작에서의 이름)와 별반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회오리 헤어스타일에 과장된 행동, 맥락 없는 사투리로 화면에 불쑥불쑥 잡히는 그의 모습은 만화에서의 모습과 똑같다. 시트콤이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정극에서, 게다가 주조연급의 비중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기엔 지금의 봉준구는 제작진의 분명한 판단미스요, 무리수다.

<장난스런 키스>는 재미있는 만화다. 출판된 지 한참 지난 지금 다시 펼쳐도 촌스럽지 않고 술술 읽히는 장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고스란히 드라마에 옮기려 하면 안 된다. 만화를 읽는 독자의 시선과,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시선은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장난스런 키스>의 제작진이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할 것. 지금 당신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만화가 아닌,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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