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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그.쪽.으.로.갈.까?!"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등록|2010.09.04 17:04 수정|2010.09.04 17:04

▲ 어디선가 나를 찾는... ⓒ 문학동네

신경숙의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문학동네)는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화와도 같은 청춘소설, 연애소설이다. 사랑과 이별을 앓는 젊은이들에게, 그 아픈 성장통을 경험했고 경험한 젊은이들을 향한 소설이다.

"언젠가 우리에게 생긴 일들을 고통없이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 것을 믿고 각자가 크리스토프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희망을 끝까지 붙들기를 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엿보인다.

앙드레 지드나 헤세 등과 함께 통과해 온 세대가 있었다면 90년대 이후엔 일본소설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열병, 성장통을 대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 쓰는 일이 행동이며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증언이라는 작가는 이 소설은 새벽 세시에 깨어나 아침 아홉시까지 책상에 앉아 썼다 한다.

"내.가.그.쪽.으.로.갈.까"

소설은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팔 년만이었다."로 시작된다. 나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고 앞으로 더 읽어 나아가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8년 만에 그 먼 긴 시간의 터널을 단숨에 좁히면서 가까운 듯 느끼게 하는 전화할 수 있는 또 그렇게 애틋한 이름 하나 있을까. 수년 만에 전화를 해도 "어디야?" 하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  "내가 그쪽으로 갈까?" "네가 이쪽으로 올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하나 가졌을까.

주인공 나(정윤)을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의 8년 만의 재회는 임종을 앞둔 '윤 교수'를 찾아가야 할 상황이 만들어지면서다. 8년 만에 재회하고 정윤과 명서의 희망적인 관계를 예감하게 하며 끝을 맺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나(정윤)은 대학교에 갓 입학하자마자 한 학기도 다 채우지도 못했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골로 내려가서 1년 동안 지낸 뒤, 1년 후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거기서 윤 교수, 명서와 미루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청춘은 기쁨과 슬픔, 상실의 사연들로 짜여져 간다.

소설 속 주이공인 '나'(정윤)를 비롯해 단, 명서와 미루, 이 네 사람은 이미지가 그려질 듯 개성이 묻어난다. 비극적인 시대상황에서 사랑의 기쁨과 슬픔, 미래의 불확실성에 불안 해 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별은 우리가 거쳐 온 지난날이고 또 지금의 젊은이들이 겪어내고 있는 긴 터널이다. 작가는 '사랑의 여러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듯, 사랑의 여러 가지 무늬들을 독자들은 만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한 마을에서 너무도 가까운 관계로 자랐던 정윤과 단, 명서와 미루는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비밀한 공감대를 가졌다. 단은 군대에서 오발사고(?)인지 자살인지 분명치 않게 죽고, 실종된 언니의 남자를 찾아 헤맸던 미루는 상처 많은 미루는 홀로 외할머니 집에서 굶어 죽고 만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어버린 정윤과 명서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방황하고 자기를 학대하다가 헤어지고 마는데, 8년 만에 윤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동료들과 함께 그들은 다시 만난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너무 많은 죽음들로 깊은 슬픔으로 깊이 젖어들던 내 마음 독자들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나' 정윤이 언젠가 간직하고 있으라고 명서가 건네주었던 '갈색노트'다. 노트의 가죽장정을 벗겨내고 난 뒤 처음 발견한 글 '언.젠.가.는.정.윤.과.함.께.늙.고.싶.다.'는 말을 발견하고 정윤은 그 말에 이렇게 이어 붙인다. '내.가.그.쪽.으.로.갈.게'.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는 이들에게

신경숙의 소설에선 항시 '깊은 슬픔'이 있다. 그녀의 소설은 아프고 절절하다. 읽어갈수록 더 깊은 슬픔으로 잦아들게 하고 존재의 깊은 심연까지 그 닿지 않을 바닥으로 내려가게 한다. 그녀의 소설은 들뜬 기색이 없다. 소설은 내내 우울모드라 마음이 저절로 가라앉고 저자 특유의 섬세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그 잔잔하고도 내려앉고 젖어들게 만든다. 소설의 끝에서 등을 곧게 펴게 하는 희망이 그나마 슬픔을 딛고 마음을 일으킬 수 있었다.

소설 속의 정윤과 단, 명서와 미루 등 각 개성적인 인물들이 드러나지만,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계속 내 마음에 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윤 교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윤 교수의 '크리스토프'이야기다. 윤 교수의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성장통을 앓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거쳐 왔던 사람들에게, 혹은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 모두에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다.

나는 윤 교수를 보면서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했던 선생님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하던 마지막 수업의 선생님이 떠올랐다. 크리스토프는 여기서 '장 크리스토프'가 아니다. 성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라 한다.

크리스토프는 가나안 사람으로 거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다. 힘이 장사였던 그는 무서운 게 없었고 자신은 오직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사람에게만 봉사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을 바칠만한 인물을 찾을 수 없어 지친 그는 실의에 빠져 강가에 집을 짓고 그곳에 머물면서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면서 지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크리스토프는 겨우 삿대 하나만 지닌 채로 강물이 아무리 불어나도 그 삿대로 강물을 헤치며 사람들을 강 저편으로 건네주었다.

어느 날 밤 한 아이가 그를 찾아온다. 아이는 오늘밤 안에 강 저편으로 건너가야 한다면서 크리스토프에게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깊은 밤이긴 했지만 이깟 아이쯤이야! 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지만,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장신의 크리스토프의 키를 넘을 지경으로 범람했다. 처음엔 가벼웠던 아이도 강물이 불어남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철근 같은 무게로 그를 짓눌렀다. 처음으로 자신이 강물에 빠져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던 크리스토프는 간신히 강 저편에 이르렀다.

그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머물면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강 이편으로 건네주었지만 너보다 더 무거운 사람을 실어 나른 적이 없구나." 그 순간 아이는 사라지고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예수가 눈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하고 윤 교수는 덧붙여 말한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중략)...강물이 불어났다고 해서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 나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법은 무엇이겠는가?...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언젠가 우리에게 생긴 일들을 고통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거라고 간절히 바랐던 시간들을 지난 사람들, 지나고 있는 청춘들이 저마다 별처럼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기를. 저자의 바람대로 '사랑의 기쁨만큼이나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젊은 청춘들을 향한 발신음이 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출판: 문학동네/2010. 8.2. 1판 7쇄
저자: 신경숙
가격: 1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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