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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반대 카페도 있더군요, 그분들도 오세요"

'몸말'로 말걸기 시도한 이주민들...<2010 제5회 이주노동자영화제>를 다녀와서

등록|2010.09.06 10:17 수정|2010.09.06 15:51

▲ 영화 발청소의 한장면 ⓒ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회


이주민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공장, 농촌, 어업현장, 심지어는 가정에서까지 말없이, 존재감없이 살아야 하는 그림자. 그런 이주민들이 이제 그림자가 아닌 인간으로,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웃으로 함께하길 바라며 영화를 선택했다. '입말'이 안되면 '몸말'로 소통이 가능하듯 영화를 통해 말걸기를 시도한 것이다.   

지난 4일 대학로 CGV에서 그들이 첫 번째로 말을 걸어왔다. 올해로 5회를 맞는 '이주노동자 영화제'는 세계에서도 유일한 다문화 영화제이다. 영화제 준비위원회는 9월 4~5일, 이틀간의 서울 상영회를 시작으로 10월 17일까지 경기도의 마석, 안산, 부천 등 총 6개의 도시를 순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아웅틴퉁(미얀마)씨는 이번 영화제의 기획의도를 묻는 다소 뻔한 질문에 뻔하지 않게 대답했다.

"이주민은 한국 정부에 대해 요구하고 힘들다고만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주민도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인이나 이주민이나 이 땅에 사는 동안 서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

그런 의도를 살리기 위해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개막작 선정에 오랜 공을 들였다. 그리하여 이름있는 감독의 작품도 아니고, 국제영화제 수상작도 아닌 이주민의 자체제작 단편 영화들이 개막작에 선택됐다. '그림자의 시선'이라는 개막작 섹션에는 이주노동자의 생활과 독백, 갓 시집온 이주여성이 겪는 에피소드, 뮤직비디오 등이 모자이크처럼 엮여있다.

'그림자'에서 벗어나 '영화'로 말하기 시작한 이주민들

▲ 희망을 부른다 중 한장면 ⓒ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 상영작으로 선정된 <어둠 속의 등불>은 2009년에 추방당한 미누(네팔)씨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이주 노동자의 인권 뿐 아니라 광우병 사태,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문제 속에서 한국인과 함께 했던 미누.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힘들지라도 그의 꿈만은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 꽃피길 바라는 마음을 영화는 담고 있다.   

▲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의 찬드라 ⓒ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회


그 외 23편의 작품 중에는 박찬욱 감독의 다큐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세르지오 아라우 감독의 블랙코미디 <멕시코인이 사라진 날>, 쿠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송일곤 감독의 <시간의 춤> 등 무게감 있는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결혼 이주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결혼 이주여성인 제니, 사라아브레군도 등은 하나 하나 영상을 배워가며 결혼 후 겪은 에피소드를 짧고 발랄하게 영화에 담았다. '다문화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이들은 다문화는 '차이'이며 '소통'이라고 대답한다.

▲ '파마'의 한 장면 ⓒ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회


또 한 편의 영화, 오랫동안 이주여성과 함께 한 이란희 감독은 <파마>에서 새색시 이주여성이 미장원에서 겪는 낯섦과 두려움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영화 속에서 한국인들은 이주 여성들은 모두 가난해서 팔려온거나 다름없으며 한국말을 못하는 그들은 어딘가 모자란 존재라고 규정한다.

이란희 감독은 반대로 이주여성에게 한국이 어떻게 보일지 영화 속에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 결과 백인 앞에서는 한없이 수그러들고 동남아 사람들은 이주민으로 통틀어 얕보는 한국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역시 권력도 명예도 바랄 수 없는 소시민일 뿐인데 말이다. 과연 누구의 시선이 맞는 것인지 궁금한 분들은 직접 영화관을 찾으라 권하고 싶다.

▲ 아웅틴툰 집행위원장과 이란희 감독. 상영관 앞에선 두 주역 ⓒ 이현정

이번 영화제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후원, 기쁜 마음으로 작품을 보내준 감독들 그리고 이주민 친구들이 내놓은 후원금으로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관람료는 없으며 개막식, 폐막식 때 맛난 떡과 여러 나라의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다.

개막전에서는 특별히 감독들이 직접 참석해서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알찬 시간도 가졌다. 그런 호의를 공짜로 받기 미안하다면 입구에 마련된 모금함에 살짝 정성을 담아도 좋겠다.  

영화제 현장 관리에 분주하던 양재화 팀장은 초청의 말을 이렇게 대신했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다문화 반대 카페도 있더군요. 저희 영화제 소식을 전하며 당일 날 상영관 앞에서 시위를 하자고 제안하는 분도 있었어요. 영화제에 그분들도 오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영화를 통해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영화제 개막식 현장소모뚜씨와 나하나씨가 함께 진행한 개막식 ⓒ 이현정


4일 오전 11시 첫 상영회의 관람객은  5명이었다. 그러나 그 수는 점점 늘어나 오후 7시 반 개막제 때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초보 감독과 출연자 등 20여 명, 그리고 족히 150명은 넘어보이는 관객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대학로 CGV의 무비꼴라주 바닥에 깔린 팥죽색 방석들이 어떤 영화제의 레드카펫보다 빛나는 시간이었다. 이주민들은 눈빛을 교환하면 마음이 닿고 서로의 체온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한국에 산다. 체온이 있는 것은 누구인가? 사람이다. 그림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2010년 제5회 이주노동자영화제 상영일정


      개막전       
9월 4(토)-5일(일)  오전 11:00 ~
서울 대학로 CGV 제5관
(특별행사 : 오후 7:30 개막제)

지역상영전
9월 12일(일)  오후 6:00~
경기도 마석 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 샬롬의 집
9월 19일(일)  오후 2:00~
경기도 김포 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10월 3일(일)  오후 3:00~
경기도 포천 이주민지원센터 나눔의 집(스리랑카 친구들)
경복대학(예정)
10월 10일(일) 오후 2:00~
경기도 안산 외국인주민센터
10월 15일(금) 오후 2:00~
경기도 일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10월 17일(일) 오후 2:00(폐막식)~
경기도 부천시 외국인노동자의 집

문의
이주노동자영화제 공식홈페이지: www.mwff.org

덧붙이는 글 이 후 영화제의 뒷 얘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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