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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사건 기념관서 잔혹한 학살과 마주하다

'박영희 시인과 함께 하는 만주기행'을 다녀와서(2)

등록|2010.09.06 11:26 수정|2010.09.08 09:49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30분 군산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홍성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오전 8시 30분 아내와 나를 인천국제공항에 내려주었다. 공항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삐까번쩍'했다.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이 촌뜨기 부부를 완전히 기죽이고 있었다.

▲ 인천공항 교통센터 건물. 바다를 매립해서 지은 지하 3층 지상 1층 건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비행기가 비행하는 곡면 형태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 조종안


SF 영화에 나오는 비행기 날개 형상의 대형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도 예술의 한 분야인 만큼 설계사의 감각에 따라 아름답고 창조적인 건물을 탄생시킬 수 있다.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교통센터라고 했다. 순간 너무 일찍 태어난 내가 미워졌다. 

대한민국 관문답게 공항 전용 카트(cart)가 장대열차처럼 길게 열을 지어 오갔다. 커피 판매점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을 음미하는데 갑자기 왼팔이 허전해지면서 손목시계를 차고 오지 않은 걸 알았다. 수첩에 메모해놓고 그렇게 챙긴다고 챙겼는데···. 웃고 말아야지 어쩔 수 없었다.

대구에서 오는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고, 비행기 시간은 12시 30분이니까 오전 7시 버스로 와도 되는데 새벽에 출발한 이유가 있었다. 두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공항 구경도 하고, 모닝커피도 마시면서 쇼핑도 하자는 아내 제의 때문이었다.

저공비행을 하다 사뿐히 내려앉는 비행기들 하며 말투와 표정이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공항 대합실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에 푹 빠졌있는데 대구에서 올라온 24명이 기를 흔들면서 나타났다. 모두 초면이었지만 반가웠다.

게 눈 감추듯 기내식을 먹어치우다 

우리를 중국 심양까지 싣고 갈 비행기는 중국의 최대 항공사 중국남방항공 소속 CZ682편이었다. 단체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전용열차로 이동했다.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서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 파란 파스텔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창공, 다양한 모양의 구름, 비행기 앞날개가 어우러져 펼치는 하늘의 쇼는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 조종안


좌석 번호를 찾아 아내와 나란히 앉았는데, 바라던 대로 비행기 앞날개가 보이는 38A 석이었다. 같은 요금을 내고 푸른 하늘에서 펼쳐지는 지상 최대의 쇼를 아내와 함께 감상하며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어렸을 때는 비행기 앞날개는 본체 좌·우에 하나씩 붙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관심을 두고 보니까 날개 뒤편에 여러 개의 보조날개가 있었다. 비행기가 방향을 바꾸거나 고도를 조절할 때마다 보조날개가 상하로 움직이는 모습은 볼수록 신기했으며, 수시로 변하는 구름은 하늘을 온통 하얀 꽃밭으로 만들었다.

▲ 비행기에서 나온 기내식. 두 개나 먹어치웠는데요. 야간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 조종안


기내식이 나오는 비행기는 처음이어서 메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내와 비행기를 세 번 타보았는데 목적지가 모두 1시간도 안 되는 제주도였기 때문이었다. 아내를 힐끔 쳐다봤더니 처음 데이트하는 날보다 더 흥분된 표정이었다. 

곧이어 스튜어디스가 은박지로 싼 도시락을 나눠줬다. 얼른 받아 열어보니까 하나에는 쇠고기 카레와 쌀밥이 들어 있었다. 또 하나에는 소시지와 장아찌, 찹쌀떡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아침이 시원찮아서 그런지 순식간에 비어 버렸다.

도시락을 먹고 5분쯤 지났을까? 뱃속에서 '아무래도 서운하다!'는 연락이 왔다. 해서 지나가는 스튜어디스에게 염치를 무릅쓰고 "도시락 하나 더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친절하게 대답하면서 내미는 도시락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돼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비행기가 착륙하려고 하자 고운 녹색 실로 수놓은 것 같은 들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하고 아팠지만, 즐거운 여행에 비하면 코끼리 발의 생선가시였다. 하늘엔 새털구름이 떠갔다. 화단의 하얀 장미처럼 피어오르는 뭉게구름과 초원의 양들을 떠오르게 하는 양떼구름을 감상하는데 곧 심양에 도착한다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조금 늦게 도착해도 되는데, 서운했다.

중국 심양(瀋陽)은 어떤 도시?

오후 2시 40분 심양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가 일인용 현수막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심양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고, 공항 분위기도 차분했다. 인사를 나눈 가이드는 자신을 조선족 3세라고 소개하면서 심양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 도시 분위기가 조금 지저분하고 음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버린 심양의 아파트 단지. 중국은 지금도 개발 중이었습니다. ⓒ 조종안


심양은 한때 고구려 영토였으며 1625년에 청나라 수도가 되었다가, 1644년 베이징이 수도가 되면서 '봉천부'(奉天府)를 설치했다. 1932년에는 일제에 의해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봉천시'로 개칭되었고, 만주국이 붕괴되자 '선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심양은 만주어로 '무크덴'(Mukden)이며, 인구는 약 750만 명이고 17개 민족이 도시를 이루고 있다고···. 시내에는 네 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중 '서탑거리'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지사 부인들이 장사해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의미 깊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버스로 30분 가까이 걸렸다. 거리 곳곳 왜놈들이 지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들이 만주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심양은 지방도시이면서도 한국, 북한, 프랑스, 러시아, 미국, 일본, 캐나다 영사관이 있다고 한다. 조선족이 세운 서탑교회도 있단다.

'9·18사건' 기념관 방문

먼저 '9·18사건' 기념관을 방문했다. 일제는 이른바 '류타오거우 사건'으로 불리는 남만주철도폭파사건을 조작하여 1931년 9월18일 만주군벌이었던 장쉐량 부대를 공격했다. 중국이 먼저 전쟁을 걸어왔다는 구실을 삼기 위한 거짓술책이었다.

▲ 정면에서 바라본 ‘9·18사건’ 기념관. 일본, 한국 등 외국인 관람객이 수난을 당했던 현지 중국인보다 많은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 ‘9·18사건’ 기념관에서는 1931년 9월18일 이후 참상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일본 정부는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현지 관동군은 세력권 확장을 위해 명령을 무시하고 지속적인 전투를 강행하였다. 만주 전체가 일제 손아귀로 넘어간 후에야 국제 연맹의 중재로 전투가 중지되었다고 한다.

친일 앞잡이를 내세워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후 중국 본토까지 손아귀에 쥐려는 야욕으로 가득 차있던 일제는 철도를 부설하여 만주 지역의 광산물, 가공품을 본토로 운송하기 시작했고 이 노선을 군대가 보호하도록 했단다.

9·18사건 기념관에는 일제가 어떻게 만주를 점령했고 만주국을 세웠는지, 당시 일제와 중국 고위층 활동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진열해놓고 있었다. 학살 장면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한국 젊은이들도 만났는데, 한글로 된 책자나 설명문이 없어서 답답했다.

▲ 심양의 조선족 식당 전경. 메뉴는 한국식이지만, 중국 음식의 느끼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 조종안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와 한식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간판은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골 밥상'이었고, 메뉴도 된장찌개에, 잡채, 김치볶음, 콩나물 무침, 오이무침 등이었다. 맛은 별로였다.

첫날부터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9·18기념관'을 건성으로 둘러봤는데도 저녁 6시 20분에 출발하는 연길행 기차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하다고 해서 봉천경찰서와 모택동 동상이 서 있는 중산광장은 돌아오는 날 들러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음 날 아침까지 15시간 가까운 기차여행에 대비해 재래시장에 들러 싱싱한 과일과 음료수 등 간식거리를 구입했다. 이제 200만 재중 동포들의 중심지 '연길'로 가야 한다. 야간 침대 열차를 타기 위해 심양역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중국 관련 내용은 현지 가이드와 박영희 시인의 설명, ‘2010만주기행’ 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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