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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췌장암 선고 받고도 풀꽃 그린 시인

나태주 시인의 풀꽃 사연 엮은 <풀꽃과 놀다>를 읽으며

등록|2010.09.06 13:17 수정|2010.09.06 13:34
그렇게 지향 없는 환자로 병원에서 지내기 두 달을 넘기면서 어버이날이 되었다. 아들아이가 퇴근길에 카네이션 몇 송이를 사가지고 왔다. 평소 몸이 성할 때는 무심히 받았던 꽃이다. 그렇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입장이 되어 병실에서 아들아이에게 꽃을 받는 심정은 결코 편안하지 못했다. 처연했다 그럴까.…그럴 즈음 앞으로 나올 시집에 쓰여질 삽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곁에는 아들아이가 사가지고 온 카네이션이 있었다. 그렇다. 이 카네이션을 그려보자.
- <풀꽃과 놀다>중에서

<풀꽃과 만나다>(푸른길 펴냄)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사연이다. 평생 아이들과 시와 함께 살아온 시인이 살아오는 동안 특별하게 만난 풀꽃들과 그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우리들 또한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민들레나 닭의장풀, 꽃다지 등과 같은 흔한 풀꽃들과 한 시인의 감성과 사연을 풀꽃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나태주 시인은 지난 몇 년 전 급성 췌장암으로 죽음을 선고 받았다. 급성 췌장암으로 갑작스레 입원하기 며칠 전 한 출판사와 시집 한권을 약속해 놓은 터였단다. 여하간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나자 그 시집 원고 생각이 났던 것.

그리하여 시인은 병실에서 틈틈이 시를 쓴다. 그리고 쓴 시들을 병문안 오는 사람 편에 등기를 부탁하여 건강할 때 이미 약속했던 출판사로 시집 원고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시집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물론 가족들은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환자가 무슨 엉뚱한 짓이냐고 반대를 하고 나무랐지만, 나는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죽더라도 시집이나 한 권 더 남겨야 할 것 아니겠나 싶어서였다.…나는 연필을 들어 노트에 카네이션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그림은 바르게 된 카네이션 그림이 아니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대각선으로 거꾸로 된 카네이션이었다. 왜일까? 병원에 널브러진 내 꼴이 꼭 거꾸로 된 꽃과 같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내가 병원에 들어오고 나서 맨 처음 그려 본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역시 나는 등기편지로 출판사에 보냈다. 이렇게 거꾸로 그려진 카네이션 그림이 나중에 나온 나의 27시집 <꽃이 되어 새가 되어> 표지화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집 표지에는 거꾸로 된 카네이션이 아니라 바로 선 카네이션으로 들어가 있다

▲ <풀꽃과 놀다> 겉그림 ⓒ 푸른길

이처럼 병실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처연한 심정으로 받아 들었던 카네이션 한 송이와 아이들의 발길에 차이고 차여 이지러진 꽃을 피울 수밖에 없으나 있는 힘을 다해 꽃 한 송이 피워 홀씨를 훌훌 날려 보내는 강인한 민들레 등. 책을 통해 들려주는 풀꽃 사연들은 힘들고 지쳐 있을 때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준 그 풀꽃들이다.

내게도 특별하게 맺혀 있는 꽃들이 몇몇 있다. 시인의 풀꽃 사연들을 읽는 동안, 복숭아꽃, 메밀꽃, 제비꽃, 명자나무 꽃… 그 꽃들과의 만남들이 분분하게 떠올랐다. 복숭아꽃에 눈길이 다시 가는 것은 가난한 내 부모의 땀방울이 영글던 꽃이기 때문이요, 제비꽃이 특별한 것은 고향의 흙담 곁에서 놀던 추억이 아스라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올 봄, 몇 년 전 내게 몰아닥쳤던 우울증을 이겨내게 한 명자나무 꽃과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 맘속의 꽃들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에 치여 미처 풀지 못했다. 이제라도 풀어 볼까. 이제 서서히 봉평을 은밀하게 달굴 메밀꽃, 내게 애잔하게 남아 있는 그 메밀꽃과의 만남부터 말이다.

흔히들 수련을 한자로 써보라 그러면 물水 자를 써서 水蓮이라 쓰기 쉽다. 그러나 수련은 졸음睡자를 써서 睡蓮이 맞다. 햇빛이 환한 낮 시간에 피는 꽃이라 해서 자오련(子午蓮)이라고도 부르고,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핀다 해서 미초(未草, 미시에 피는 꽃이란 뜻)라고 부른다고 한다. 수련도 연꽃의 한 종류이므로 연못에서 자라고 꽃이 핀다. 여름날 한낮에 꽃을 피우고 밤에는 꽃송이를 오므리고 잠이 든다. 그래서 그 이름에 졸음睡자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풀꽃 사연만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알고 있으면 좋을 꽃 상식도 얼마간은 들려준다. 저자가 풀꽃 전문가가 아닌지라 그 상식들은 그리 많지 않다. 솔직히 내가 그동안 읽었던 꽃과 식물에 관한 책들 중 꽃 상식은 가장 적은 편이다. 하지만 꽃과 어우러진 감성은 여타의 책들보다 많이 앞서는 것 같다. 아마도 시인이 썼기 때문이겠지.

수련에 대해 좀 더 보태면, 우리들이 흔히 보는 수련은 엄밀히 외래종이란다. 우리의 특산종 수련은 '각시수련', 우리들이 흔히 보는 수련보다 꽃송이도 작고 꽃잎도 적어 보여 소박하고 은은한 편이다. 지금은 이 각시수련을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황해도에 가지 않아도 더러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황해도 장산곶에만 살았단다.

수련의 사정이 이러니 옛 문헌이나 고전 속의 수련은 아마도 십중팔구 이 각시수련이리라. 각시수련의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많을 것 같다. 수련뿐이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풀꽃들을 대하며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몇백 년 전 이 땅에서 살았을 꽃들을 염두에 두는 것과 전혀 두지 않는 것은 그 차이가 많을 것 같다.  

애당초 우리 것이란 없었다. 오랜 세월, 어울려 살다보니 우리의 풀꽃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령 파초나 골담초, 모란이나 연꽃만 해도 처음엔 외국의 것이었으나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와 오늘날 우리 것처럼 된 식물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이나 채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추를 좋아한다. 그래서 매운맛은 우리 고유한 맛이고 고추야말로 우리 것이라고 얼핏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기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고추는 애당초 우리 것이 아니었고 남아메리카가 원산이었다. 흔히 우리가 한해살이풀로 알고 있는 고추가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부, 제1부 '글로벌 풀꽃세상'이란 글에 이런 부분도 나온다. 분분한 생각을 하게 한 글이었다. 가끔 "저 무분별한 것들이 남의 땅에 들어와 토종들 씨를 말린다"며 이를 갈듯(?)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민들레의 사례가 워낙 많이 알려진 때문인지 봄날 노랗게 피어있는 민들레 앞에 서성거리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한두 해 일이냐만 대체 토종민들레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들이 흔히 보는 민들레 대부분은 서양민들레란다. 여하간 올 봄에는 참 귀한 존재가 되었다. 토종민들레는 물론이거니와 홀대를 어지간히 받았던 서양민들레까지. 몇 년 전부터 민들레가 몸에 좋다는 것이 서서히 알려졌고 올해 초봄 관련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동·식물들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면서 외래종 동·식물을 바라보는 심정은 늘 복잡하기만 하다. 반대로 우리의 동식물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일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 이국땅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동포 혹은 교민들 사정이 저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떤 책에서 우리의 하늘소가 미국으로 건너가 단풍나무와 느릅나무를 훼손하고 있어서 그들에게 커다란 골칫거리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들의 동식물을 위협하고 있는 외래종 동·식물 일부는 우리들이 일부러 돈 주고 사온 것들도 있지 않은가. 여하간 쉽게 버려지지 않는 체기처럼 불편한 심정으로 대하곤 하는 외래종 동·식물에 대한 이런저런 것들을 분분하게 떠올리게 한 부분이었다.

외에도 ▲꽃대 마디가 아홉 마디쯤 자랐을 때 꽃이 핀다고 구절초 ▲하지쯤에 시든다하여 '하고초(夏枯草)'라 불리는 꿀풀 ▲강원도 철원에서 '기생꽃'으로 불리는 황매화 ▲하찮은 것, 천한 것, 흔한 것들을 귀하게 보게 하는 애기똥풀 ▲발밑을 자주 살피게 하는 민들레와 봄맞이꽃 ▲'앉은뱅이꽃' '보리밥풀꽃'으로도 불렀던 제비꽃 ▲하늘빛이 내려와 강그러진 듯 피는 개불알풀꽃 ▲올된 서양 계집애를 닮은 양달개비 ▲맞아 죽은 며느리의 밥풀 두 알 꽃며느리밥풀꽃 등과의 애잔하고 특별한 만남을 시인은 마치 편지처럼 다정하고 살갑게 들려준다. 시인의 풀꽃 편지랄까.

올 봄, 우연히 야생화 기행에 몇 차례 따라갔다. 그 첫날 많이 놀랐다. 꽃은 나처럼 그래도 젊은 여자들이나 좋아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과 달리 한눈에도 60은 훌쩍 넘겼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꽃을 대하는 그 분들이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로 진지하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몇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만난 꽃들과의 사연을 들려줬다. 젊은 날, 아들 딸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꽃이 피는지 지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정년퇴직으로 일을 놓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더라는, 나이가 들어 세상에서 밀렸다는 상실감과 허허함을 친구도 가족도 아닌, 바쁘고 잘 나갈 때 그 존재를 전혀 모르던 풀꽃들이 위로해 주더라는 것.

저자인 나태주 시인도 그분들처럼 어느 날 몰아닥친 삶의 고비에 만난 풀꽃들과의 특별하고 애잔한 사연들을 마치 편지처럼 다정하고 살갑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마다 연필로 그린 풀꽃 그림이 곁들여져 있다. 모두 시인이 직접 그린 꽃들로 상당수는 병원에서 링거를 꽂고 그린 것이라고. 이 세밀화가 눈에 우선 띄었던지, 가끔 만화 그리는 것을 즐기는 딸이 제가 먼저 읽겠다며 가져가 두어 시간 남짓 지나서야 내게 돌려준 책이기도 하다. 시인의 풀꽃 세밀화는 우리 아이가 탐낼 만큼 예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풀꽃과 놀다>|나태주 글과 그림|푸른길 |2010-09-06|값: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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