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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보수가 '수구꼴통'으로 보이는 까닭

[책 속으로 떠난 역사 여행 69]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

등록|2010.09.08 08:50 수정|2010.09.08 09:20
특수한 법률로 국가보안법 혹은 비상조치법을 국회에서 임시로 제정하신 줄 안다. 지금 와서는 그러한 것을 다 없애고 이 형법만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 또는 장래를 전망 하면서 능히 우리 형벌법을 달성할 수 있겠다는 고려를 해 보았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제일 중요한 대상인데, 이 형법과 대조해 검토해 볼 때 형벌에 있어서 다소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이 형법만 가지고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겉그림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 ⓒ 동녘

지금도 이 말 들으면 게거품 물고 삿대질 할 사람들 꽤 있을 거다. 삿대질에서 끝나지 않고 빨간 딱지 철석 붙여 구속해야 한다고 책상 탕탕 두드리며 흥분할 사람들 얼굴도 떠오른다. 자칭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 연설이 1953년 당시 대법원장 김병로가 국회에서 했던 연설이라는 것을.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었던 당시 대법원장 김병로는 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국회에서 밝혔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으로 대한민국 사법의 기초를 만든 인물, 이승만 권력 유지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고 가난한 이들의 민권에 먼저 눈길을 돌렸던 인물, 이 정도는 되어야 '건강한 보수주의자'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늘같은 권력 쥐고 구름 같은 재력 휘두르며 욕심보따리를 놓지 못하는,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지키려 애쓰면서 살아온 이들. 그들은 자칭 보수라 미화했다. 다른 이들도 덩달아 그들을 보수라 불렀다.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은 그들을 '수구' 혹은 '꼴통'이라 비아냥댔다.

많은 사람들 존경 받는 보수는 없을까

진보와 보수가 칼로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다. 한 인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진보와 보수라는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만 존재하는 사회는 없다. 진보도 보수도 다양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한 부분이다. 건전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은 박정희와 날선 대립을 보였던 장준하, 이승만 정권과 타협하지 않았던 김병로, 가산을 모두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회영, 대한제국의 쇠락을 보며 자결했던 황현, 선비와 농민이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 유형원, '구국의 영웅'인 동시에 '망국의 책임자'로 인식되었던 최영 등의 삶을 보수주의적 삶의 전형으로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권력과 재물 앞에서 당당하고, 자유와 민권 앞에서는 너그럽고, 일제와 독재 정권에 협력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빨갱이나 친북좌파로 몰아세우지 않는 건강한 보수주의자들, 자기합리화와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할 줄 아는 건강한 보수주의자들 어디 없을까?
덧붙이는 글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동녘/2010.7/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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