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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자존심과 비애

등록|2010.09.09 10:19 수정|2010.09.09 10:19
옛날에는 당연히 노인일 테지만, 시절이 좋아진 덕에 아직 '초로(初老)'의 둔덕 위에서 초혼(初昏)을 즐기며 산다. 조금은 무안하면서도 아직은 이리저리 바쁘고 분주한 그 둔덕 위에서 가끔 지나온 내 삶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태안성당 총회장 시절태안 앞 바다 유조선 원유유출 사고로 넉 달 동안 거의 매일 바다의 기름냄새 속에서 살아야 했다. ⓒ 지요하



 당연히 회한이 많다. 영악하지도, 영민하지도 못한 모양새로 엄벙덤벙 살아왔지 싶다. 그러므로 다분히 '바보' 꼴이다. 바보라는 이름과 쉽게 만나곤 한다. 잘난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잘난 사람들이 쉽게 척척 해내는 일을 한 가지도 못해보고 살았다.

 청년 시절에는 당연히 군대를 갔다. 베트남 전장에도 가서 전투부대 말단 소총수로 죽을 고비도 넘기고, '고엽제'라는 전상을 안고 돌아왔다.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 이상한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고 오히려 그것을 뽐내는 듯이 거침없이 출세를 하고 높은 공직에도 쉽게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초장부터 바보의 조건을 족쇄처럼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중년의 세월에 이르도록 '위장전입'이 뭔지도 몰랐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국회청문회에서 처음 위장전입이라는 말을 들은 후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그게 '보통명사'가 되는 현상을 지켜보았다. 위장전입의 이유나 목적도 들어 알게 되었고, 잘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기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아온 내가 바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까지 부동산 투기 한번 해본 적 없고(그럴 만한 재력도 없었고), 법을 어긴 일이라곤 두어 번 교통단속에 걸려 범칙금을 문 것밖에는 없는데, 잘난 사람들의 이런저런 위법과 범법 사실들을 보고 듣노라면, 분노 자체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은 위축감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일찍이 주변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때는 "아니야. 나 같은 사람은 법치 안에서 법의 보호를 받고 살아야 해. 법 없으면 난 죽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 잘난 사람들이 쉽게 농단하는 법이 나 같은 사람을 제대로 보호해 줄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나는 평생을 거의 바보로 살아왔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것은 이상한 자존심이고 또 비애이기도 한데, 최근의 국회 청문회 풍경을 보면서 자존심과 비애의 쌍곡선을 여실히 체감했다.

 또 요즘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운운하고, 군에 '강군 육성'을 하달하는 것에서도 이상한 자괴감을 겪는다. 그냥 조용히 내실 있게 그런 것들을 추구하면 좋을 텐데 우선 말을 앞세우니 말살에 쇠살 같은 느낌도 들고, 얄궂은 부조화에서 슬픈 곤혹스러움도 감내해야 한다. 아무래도 바보의 자존심보다는 비애가 더 커질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9일치 대전일보 문화면 칼럼 ‘한밭춘추’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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