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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도서관은 '사회안전망'이다

귀농 후 받은 최고의 상 '독서가족상'

등록|2010.09.09 19:02 수정|2010.09.09 19:02
우리 가족은 책을 즐겨 보는 편이다.

TV는 별로 보지 않지만 책은 좀 보는 편이다.
책은 나도 보지만 아내도 그리고 아이들도 많이 본다.

농촌으로 귀농하기 전 부산에 살 때는 서점이나 인터넷으로 책을 사서 많이 봤다.
물론 지역의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책은 직접 사서 보는 습관이 있어서 가능하면 책을 사서 보는 편이었다.

일요일이면  부산 해운대에 있는 한 대형서점을 찾는 것이 하나의 가족나들이기도 하였다.
서점까지는 우리 가족이 같이 움직이지만 서점의 입구를 지나면 우리 가족은 각자 흩어진다. 네 명은 제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또는 사고 싶은 책을 찾아 준비해온 메모지를 들고 북쇼핑을 하는 거다.

새로 나온 책은 뭐가 있는지 요즘은 어떤 책이 인기가 있는지 천천히 둘러보며 우리 가족 네 명은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 책을 빼들고 서가에 서서 책을 보기도 하고 신문에서 오려온 서평과 실제 책이 일치하는지 대조도 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다가 약속된 시간이 되면 다시 카운터 근처로 모인다.
사기로 결심한 책을 들고 계산대 근처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부산 살 때 우리 가족이 휴일이면 하게 되는 나들이 풍경의 한 모습이었다.

서점이 없는 농촌

그러다가 4년 전 농촌으로 오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책을 사서 보기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비중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농촌에서 대형서점을 자주 방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 농촌인 경남 의령에는 서점이 없다.
진짜로 서점이란 것이 전체 군을 통틀어서 하나도 없다.
대형 서점은 고사하고 소형서점조차도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농촌에 귀한 것과 흔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따로 하게 되겠지만
농촌의 읍내엔 다방은 무지무지 많다.
다방은 80여개 정도 되지만 서점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초중고 학생들 문제집은 어디서 살까?
문제집, 참고서 종류는 서점이 없는 관계로 문방구에서 판다.
문구류를 파는 문방구에서 한쪽 구석에 학교 문제집도 팔고 있는 것이다.
별도의 서점은 아예 없다. 이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서점 나들이를 할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점을 찾아 일일이 도시 나들이를 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전보다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요즘 도서관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
요즘 새로 지은 도서관 - 그것이 민간도서관이든  공공도서관이든 -  을 방문해 본사람은  도서관의 변모에 많이 놀란다.
이전에 알고 있는 그런 도서관이 아니다.
'기적의 도서관' 운동은 한국 지역 도서관의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민간도서관으로부터 영향 받은 공공 도서관들이 시설을 현대화하고 서비스를 많이 발전시켰다.

요즘은 도서관에 가면 웬만한 책들을 거의 무한대로 빌릴 수가 있고 영화도 보고 강습도 받고 취미생활도 하고 모임도 가진다.

2009년 '책읽는 가족' 선정

그래서 농촌에 온 후로는 책을 사는 양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에 도서관 대출량이 차츰 늘어갔다. 아마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올해 초에 우리 가족은 도서관협회/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작은 상패를 하나 받았다.
한 해 동안 책을 많이 읽은 가족에게 지급한다는 '2009년 책 읽는 가족상'이란 거다.
약간의 부상( 도서상품권)과 더불어 특권도 하나 주어졌다.
다른 일반 회원들보다 한번에 빌릴 수 있는 책의 권수를 두 배로 해준다는 거였다.

상패올해초 우리 가족이 받은 독서가족상 ⓒ 서재호


대출권수의 제한을 대폭 풀어준 것이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반가웠다.
이제 도서관에 가서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책을 빌려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나 그것은 이곳에서는 커다란 의미가 없었다.
이곳 경남 의령에서는 근본적으로 도서관 자체가 가진 문제가 별도로 있었다.

그건 도서관의 구조, 하드웨어의 문제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아래 사진을 한번 보자.

이전 도서관두달전 까지 의령의 유일했던 도서관 전경 ⓒ 서재호


위에 보이는 게 의령도서관 사진이다. 아니 사진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바로 얼마 전까지 수십년 동안 이곳 의령의 유일한 도서관이었다가 이제는 그 사명을 다한 곳이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크기가 얼마나 될까?
명색이 한 지자체인 의령군의 유일한 도서관이지만 그 크기는 놀랍게도 70평이고 단층 건물이다. 270평도 아니고 170평도 아니고 달랑 70평이다.

1954년에 지어진 이후로 무려 56년 정도 동안 의령의 군민들은 이 70평 건물의 공공도서관을 유일한 도서관으로 해서 살아왔다.

이 70평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도서관의 내부는 또 좁아진다.
서가, 열람용 책걸상 몇 개, 대출카운터, 사무직원 공간, 검색컴퓨터와 책상.
이러니 전체 70평 중에 실재 책을 진열해 놓은 서가 공간은 얼마 되지도 않고
그나마 다 진열해 두지도 못하고 있었다.

70평짜리 공공도서관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또한 책만 빌리고 돌려주는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립한 빌 게이츠 회장이 한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내가 살던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지역의 문화사랑방이기도 하고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입시위주의 학생들이 휴식할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교과서를 잠시 놓고 상상력을 키울수 있는 마당이어야 하는 곳이다.
다문화 가정의 여성들이 한국을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농촌의 문화와 새로운 흐름이 조우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최근까지 의령에는 그런것이 가능할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었다.

이랬던 도서관이 늦었지만 각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새로 건물을 지어 이전하게 되었다.
7월 말이니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신축 도서관56년만에 새로 들어선 의령의 도서관 ⓒ 서재호


이번 7월말에 넓은 공간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도서관이 경남 의령에 새롭게 들어섰다.
개인적으로 너무 반갑고 잘된 일이다.

새로 들어선 도서관을 우리 가족은 여전히 부지런히 애용하고 있다.
새로 들어선 도서관을 아내와 아이들이 몇 차례 다녀온 후 나도 같이 한번 방문해 보았다.
70평이던 건물이 500평의 규모로 늘어났고 주차장도 새롭게 조성한 모습이 보인다.

내부를 한번 둘러보니 어린이 책 코너가 새롭게 꾸며져 있고 컴퓨터실, 디지털 자료실 등등 이제 어느 정도의 하드웨어가 갖춰어진 것이 보인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도서관은 지역의 '사회안전망'

이제는 이 공간을 좋은 책으로 더 채우고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가꾸어 나갈 일이 남아 있다. 다음에 기회를 한번 만들어서 도서관장과 지역 군의원을 상대로 인터뷰를 한번 진행해 볼 생각이다.

새롭게 조성된 지역도서관이 어떤 식으로 그 내용을 채우고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농촌에서 도서관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학자 도정일은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20세기 남미를 대표하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레 루이 보르헤스는 천국을 상상해 보다가 " 천국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 말했다. 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빈부 골이 깊은 나라에서 도서관이야말로 이 시대의 사회안전망이다.

농촌에서 도서관 문제란 이처럼 '사회안전망'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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