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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셔틀? 난 일진에게 스타킹도 사다 바쳤다"

[제보취재] 학교 내 비폭력 문화 안착이 문제 해결의 시작점

등록|2010.09.13 20:23 수정|2010.09.13 20:26
"싸움 잘하고 험악하게 생긴 애랑 짝이 된 거야. 그 애가 첨에 툭툭 시비 걸면서 때리더라고. 어느 날 수업 시간에 배가 고프다면서 '나중에 돈 줄 테니 빵하고 초코 우유 좀 사와'이러는 거야. 난 안 된다고 했는데, 무섭게 째려보면서 '좋은 말 할 때 사와' 이래서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화장실 간다고 뻥치고 사왔어."

힘이 약한 아이들이나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힘센 아이의 빵을 배달하는 일명 '빵 셔틀'을 경험한 아이의 말이다. 이러한 빵 셔틀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셔틀들만의 공간'이라는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의 빵 셔틀은…"이라며 속 얘기를 털어놓고 있다.

지난 5월에 생긴 커뮤니티에는 '빵 셔틀'은 물론 '우산 셔틀', '스타킹 셔틀' 등 수많은 경험담들이 올라와 있다. 여기서 '셔틀'은 PC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병력 운반을 담당하는 수송선을 의미한다. 같은 반 친구가 게임 수송선으로 희화화 되는 학교 폭력의 한 단면이다.

▲ 자신들이 당한 빵셔틀 피해담을 털어놓고 있는 '킹셔틀' 홈페이지 ⓒ 인터넷 사이트 '킹셔틀' 갈무리


"난 스타킹 셔틀도 해...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이뿐만 아니라 '우산 셔틀', '스타킹 셔틀'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빵 셔틀이랑 학생증 빌려주는 셔틀 아니면 점심시간에 신발 갖다 주는 셔틀, 이거 세 개가 내 셔틀로 지정되었는데 오늘 하나 더 생겼어. 일진이 나한테 '비 올 때마다 우산 들고 와라, 아니면 우산 막대기로 맞는다'고 말하기에… 알았다고 했어."

"난 스타킹 셔틀도 해. 난 우리 반 일진들 스타킹 나갈 때가 제일 두려워. 하루에 한 번 이상 꼭 스타킹 자판기를 애용하지 ㅠㅠ 왜 돈은 천 원 밖에 안 주는데. 오늘 화장실에서 스타킹 갈아 신었는데 일진들 어떻게 알았는지 신은 지 1시간도 안 된 스타킹 뺏어갔어. 오늘 비도 와서 너무 추운데 지금 맨다리로 다니고 있어 너무 추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심지어 화장실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경험담도 올라왔다.

"우리 학교 일진 중에 한 X은 태어날 때 무슨 병으로 똥오줌을 못 가려, 근데 걔네 형이 학교 짱이라 형 빽으로 일진하는데. 이 XX가 오줌 싸면 이 XX가 반항하는 척하면서 수업 중에 '아 수업 X같네 OO야(내이름) 나가자' 이래. 그럼 난 가방 들고 따라 나가. 가방 안에는 이XX 간병 셔틀 할 물건이 들어 있는데 이 XX랑 화장실 똥 누는데 가서 수건에 물 적셔서 이XX 몸 닦고 속옷 갈아입히고 젖은 교복 갈아입혀. 내가 가방을 큰 걸 들고 다니는데 그 가방 안에는 교복 그 XX 사이즈로 2~3벌 정도 들고 다니고 팬티 3장, 수건 3장 그리고 향수. 얘가 똥오줌 못 가리는 건 친한 친구들하고 나밖에 몰라. 그래서 향수로 오줌 쌌다는 증거를 없애 나 이렇게 산다…."

"엄마가 나 셔틀인 거 눈치 챈 거 같아"


또 다른 피해자는 부모님이 알게 된 것을 걱정하며 글을 올렸다.

"엄마가 나 셔틀인 거 눈치 챈 거 같아. 수련회에 비싼 허리 띠 매고 갔다가 일진 거 싸구려랑 바꿔치기 당해서 집에 가고, 만날 용돈 타가고 해서 엄마가 걱정 많으셨는데…. 엄마가 사촌형한테 내 얘기를 하는 걸 들었어. 엄마가 'OO가 만날 좋은 물건 가지고 학교 가면 항상 잃어버리거나 딴 애들이랑 바꿔온다, 어떡하니. 저번에는 집 비밀번호도 알려줘서 가출한 친구가 집에서 샤워하고 있더라' 고 하시더라. 안방에서 문 잠그고 말하셨는데 난 들었어. 그 후로 사촌형 얼굴도 못 보겠어."

이 글에는 "어머니께서 정말 마음이 아프시겠네요, 빨리 대책을 찾아보세요"라는 위로를 담은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당하기만 하던 이들이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싸움을 배우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한 피해자는 "나이도 점점 먹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잖아요. 킥복싱처럼 길거리 싸움에서 유용한 것 좀 알려주세요. 배우면 자신감도 붙고 싸울 때 안 쫄 수 있을까요?"라며 상담 글을 올렸다.

학생의 55% "빵 셔틀, 학교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아"

이처럼 학교에서 폭력이 일상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빵 셔틀을 학교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 동안 초·중·고교생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의 55%가 '빵 셔틀을 학교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는 학생의 비율은 22%에 달했고, 학교 폭력을 경험한 학생 가운데 64%는 '학교 폭력으로 고통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 중 '죽고 싶을 만큼 고통을 느꼈다'는 학생은 16%나 됐다. 간단한 심부름으로 취급하기엔 당하는 피해 학생들의 고통이 너무 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미정 청예단 팀장은 "아이들이 빵 셔틀을 폭력이라 인식하지 않고 일상의 놀이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며 "반면 당하는 아이들은 수치스럽고 모욕감을 느껴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내에 만연한 폭력적 분위기가 빵 셔틀의 원인



폭력을 폭력으로 여기지 않는 문화가 빵 셔틀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가하는 체벌 등 학교 내에 만연한 폭력적인 분위기가 약자에게 가하는 힘의 행사가 부당하다고 느끼지 못하게끔 작용한다는 것이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는 "교사가 어린 학생에게 가하는 강압이 당연하게 인식되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도 힘 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을 부리고, 심부름을 시키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발생하게 된다"며 "이것이 쌓이다 보면 빵 셔틀을 폭력의 문제와 인권 침해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생 간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에 만연한 폭력부터 거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학교 내의 폭력적인 문화 자체에 대한 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돼'라는 계도의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다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가해 학생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도 계도의 일종이다.

"가해 학생이 피해학생의 상처 알게 하는 노력 필요"

이에 대해 배 활동가는 "폭력의 근절은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이 스스로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과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가능하다"며 "그러나 이제까지의 대처 방법은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의 목록을 주입시키는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에서 내 놓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인 CCTV도 문제다. CCTV엔 엄연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그 때문에 폭력이 더 음성화될 수 있어 현장 교사들도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미정 팀장은 "결국은 학생들의 인식을 바꿔주는 것 밖에 없다"며 "시작은 빵 셔틀이지만 향후에 어떻게 번질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가해 학생들이 빵셔틀을 폭력으로 인지하고 피해 학생에게 어떠한 상처를 주는 지 알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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