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믿을 사람이 없다..." 무너진 '신한웨이'

[집중취재] 14일 운명의 이사회...313조 거대 금융그룹서 대체 무슨 일?

등록|2010.09.13 14:39 수정|2010.09.13 14:39

▲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에 대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신한금융그룹이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지점에서 한 시민이 신한은행 로고 옆을 지나고 있다. ⓒ 유성호


"우리도 놀랐죠. 다른 사람도 아닌 신(상훈) 행장을 고소했다고 하니까…."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뒤편서 만난 김아무개 차장의 말이다. 옆에 있던 동료가 곧장 "신 사장이야"라고 바로잡았다. 김 차장은 "은행장으로 함께 일했던 시간이 길어서 그런가"라며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길 꺼린 김씨 동료는 "이번 일로 직원들의 내부동요가 심한 것 같다"면서 "전날까지 '열심히 일하자'고 외치는 수장에 대해 다음날 아랫사람이 뒤엎어서, (회사 밖으로) 내쳐버리겠다고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씨가 "많은 동료들이 이번 일을 통해 하는 말들이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신한금융그룹의 한 임원도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의 핵심 자산인 '신뢰'라는 이미지가 크게 훼손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가 되든, 은행 고객 뿐 아니라 주주, 내부 직원들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상훈 사장 배임 혐의 고소... '신뢰' 잃은 신한

▲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 뉴시스


최근 금융권 뿐 아니라 경제계의 핫 이슈로 떠오른 '신한사태'. 이번 사태는 지난 2일 신한은행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전격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6년 동안 신한은행장을 맡아왔고,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에 이어 '신한 2인자'로 꼽힌 신 사장의 피소는 금융권을 넘어, 경제계의 큰 충격을 줬다.

신한금융그룹은 그동안 전문경영인을 통한 혁신적인 금융기법 등으로 금융권의 모범적인 지배구조로 인정받아왔던 터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내부 경영진 사이의 권력 암투 양상으로 번지자, 금융 당국에서 조차 "배신당했다"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내외 시선은 냉랭하다. 신한금융지주의 주가는 지난 2일 이후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시가총액만 따지면 한때 1조4000억원 넘게 날아가 버렸다. 그동안 회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재일동포 주주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논란을 거듭한 끝에 재일동포 주주들은 신한지주 이사회에 이번 사태에 전권을 위임했다.

오는 14일 운명의 이사회가 열린다. 라응찬 회장을 비롯해 신상훈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이른바 '빅3' 경영진의 운명도 어느정도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신한금융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여전하다.

신한금융의 한 임원은 "14일 (신한)지주 이사회로 이번 사태가 일단락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사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아무도 예상하기 쉽지 않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신한금융 안팎에선 이번에 이사회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신상훈 사장 쪽 입장에선 불리하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신 사장의 해임 등을 둘러싸고 지난 11일 동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내분 사태를 보면 앞으로의 일정 역시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일본으로 날아간 까닭

▲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에 대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신한금융그룹이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지점에서 한 직원이 은행업무를 보고 있다. ⓒ 유성호

지난 2일 신한은행 쪽이 신상훈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은 전격적이었다. 전날인 1일까지만 해도 신상훈 사장은 신한금융지주 창립 9주년 행사에 나와 '신한웨이'를 역설할 정도였다.

신한 쪽 관계자는 "신 사장도 은행 쪽에서 자신에 대한 비리 등을 조사하고 있었다는 분위기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을 비롯해 신한금융 쪽에선 신 사장이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비치면서,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한 신 사장 해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 사장을 해임하기 위해선 이사회를 열어야 했고, 이 행장은 3일 일본 도쿄를 방문해 재일동포 사외이사 등을 접촉했다. 

신한금융에서 재일교포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금융권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 은행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자본 참여했던 이들은 신한지주에서 17% 지분을 가지고 있다.그러면서도, 이사회에서 영향력은 막강하다. 12명 이사 가운데 3분의 1인 4명의 이사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신 사장에 대한 은행 쪽의 고소에 재일교포 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이에 이 행장이 부랴부랴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이후 국내에선 이 행장이 이들을 잘 설득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신 사장 쪽에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이사회 소집의 부당성을 적극 알렸다. 여기에 신한금융 노동조합도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사회 개최를 둘러싸고 논란은 더욱 커져갔다.

신상훈 "차라리 동반 퇴진하자"... 라응찬 "셋이 물러나면 일이 되겠나"

이어 지난 7일 재일교포 사외이사인 정행남 재일한인상공회의소 고문은 서울을 방문해 "검찰 조사 전에 이사회가 열릴 수 있겠지만, 신 사장의 해임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라응찬 회장과의 면담을 끝내고 나온 뒤에 나온 발언이었다.

그동안 이 행장과 신한금융 쪽에서 신 사장의 해임에 자신만만해 하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실상 이 행장 쪽에서 재일동포 사외이사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고, 당초 예상했던 10일 이사회 개최는 무산됐다.

이후 지난 9일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등 신한 빅3 최고경영진들은 일본 나고야로 날아갔다. 이들 세 사람은 이날 아침 같은 비행기에, 같은 비즈니스 좌석에 앉았다. 하지만 라 회장과 신 사장은 서로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있는 이사와 주주를 상대로 한 나고야 설명회는 사실상 청문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신한금융지주 위성호 부사장은 당시 현장에 나와있던 기자들에게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설명회에서 주주들은 사전에 설명도 없이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섭섭한 목소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완곡하게 '섭섭한 목소리'로 표현했지만, 실제 이날 행사장에선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 라 회장 쪽을 크게 꾸짖는 등 고성도 오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은행과 지주회사 쪽에선 담당임원과 고문변호사까지 총출동해 신 사장의 비리 의혹 등을 조사한 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했고, 신 사장은 홀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신 사장은 이어 "최고경영진 3명이 한발짝 물러나서 중립적인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일부 주주들도 신 사장의 제안에 공감했지만, 전체 주주의사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물론 라응찬 회장은 신 사장의 동반퇴진론에 대해 "셋이 다 물러나면 일이 되겠느냐"면서 한 마디로 일축했다. 결국 이날 설명회에서 재일교포 주주들은 "(재일교포) 주주들이 일치단결해서 신한은행을 지원하고, 앞으로 있을 이사회 결의에 따른다"고 결정했다. 신 사장 입장에선 아쉬운 결정으로 느껴졌을 대목이었다.

14일 운명의 이사회, 신 사장 해임안 처리될까

▲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에 대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신한금융그룹이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지점에서 한 시민이 신한은행 로고 옆을 지나고 있다. ⓒ 유성호


신 사장은 일부 언론에서 "한 개인과 회사 조직과의 일방적인 싸움으로 가고 있다"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신한의 한 관계자는 "은행 쪽에서 신 사장에 대한 비리 의혹을 조사하면서, 그와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사전 인사조치가 이뤄지는 등 치밀하게 진행돼 왔다"면서 "물론 신 사장에 대한 일상적인 업무보고 등을 뺀 회사 관련 업무에서도 사실상 배제돼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공은 14일 열릴 신한지주 이사회로 넘어갔다. 지난 나고야 청문회에 대해 만족스럽게 끝난 것으로 여기고 있는 라응찬 회장 쪽에선 신 사장의 해임안을 안건으로 올려, 의결할 가능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14일 오후에 열릴 이사회의 안건으로 어떠한 것도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신상훈 사장의 신변에 대한 문제가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해임안이) 거론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신한지주 이사회의 구성은 모두 12명. 이들 가운데 사내 이사는 모두 4명.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 등이 상근이사이고, 이백순 신한은행장과 류시열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비상근 사내이사다.

사외이사는 모두 8명이다.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전성빈 서강대 교수를 비롯해 윤계섭 서울대 교수,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등 3명이 국내 사외이사들이다. 이밖에 신한금융지주의 주요주주인 BNP파리바의 필리프 아기니에 아시아 본부장이 있고, 재일동포 사외이사는 모두 4명이다.

금융권에선 라 회장을 비롯해 이 은행장, 국내 사외이사들을 한 편으로 보고 있으며, 신 사장과 재일교포 사외이사를 또 다른 한 편으로 구분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이사의 성향 등으로 볼때 라 회장 쪽이 신 사장 쪽보다 유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신 사장 해임안이 올라왔을 때 그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국내 사외이사들의 경우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한금융 쪽으부터 상당한 소외감을 느끼며, 아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라 회장 쪽에서 무리하게 신 사장 해임안을 밀어부칠 경우 자칫 해임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라 회장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되고, 신 사장의 3인 동반퇴진론이 힘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신한금융 안팎에서 신 사장 해임안 보다는 이보다 수위가 약간 낮은 직무정지 안건이 올라갈 가능성도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산규모 313조원에 달하는 거대금융그룹인 신한금융지주. 30여년 동안 한 마디로 잘 나가던 국내 최고의 금융회사가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분명하다. 14일 이사회의 결정이 이번 위기를 풀어줄 열쇠가 될지,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가 될지 궁금하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