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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손톱 위에 예쁜 꽃이 앉았네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주다

등록|2010.09.15 13:25 수정|2010.09.16 10:33

▲ 아파트 화단에 핀 봉숭아꽃 ⓒ 이은희


아파트 화단마다 봉숭아꽃이 소담스레 피었다. 이 아파트에 3년째 살면서 봉숭아꽃을 눈여겨 보기는 올해가 처음이다.어린 시절 이맘때면 번거롭기 짝이 없는 봉숭아물 들이는 의식이 한차례씩 어김없이 있었다.

그 번거로운 모든 과정은 엄마가 준비하고, 어린 딸은 다섯손가락을 쭉 뻗고 있다 봉숭아꽃을 손톱에 얹은 채 잠자리에 들면 되었다. 밤새 꽁꽁 묶은 손가락이 퉁퉁 부어 피가 잘 통하지 않아 가려웠던 기억이 꽤나 불편하게 남았던지 어린 딸에게는 봉숭아꽃물 들이는 일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빨갛게 변한 손가락이 신기하기도 하고, 며칠 새에 살갗에 번진 꽃물이 빠져서 손톱만 오롯이 빨갛게 되면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 왠지 자랑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엄마와 떨어져 지냈으니 가장 최근에 봉숭아물을 들여본 기억은 5년전 이맘 때.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친정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새신랑과 새신부에게 친정엄마가 들여준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봉숭아꽃물을 들이다

아들이지만 내 아이에게도 예쁜 꽃물을 들여주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번거로운 많은 과정이 눈앞에 스쳐지나가며 그냥 모른척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전 외할머니가 한손을 들여주시면서, "나머지 한손은요?"라고 귀엽게 묻는 녀석에게 "한손은 엄마가 해줄거야~"라고 대답해버시는 바람에 아이는 내게 언제 해줄거냐며 자꾸 물어왔다. 또 어린이집에서 잠시 들여주었는지 연한 귤색으로 변한 아이의 손톱이 꽃물을 들인 것도 아니고 안 들인 것도 아닌 게 영 보기가 불편해서 결국 귀찮아도 다시 예쁘게 해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우선 화단에 있는 봉숭아꽃을 이파리와 함께 조금 꺾었다. (티 안나게 여러 그루에서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시들지 않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아이들 저녁 먹이고 목욕을 시킨 뒤 낮에 약국에서 사둔 백반과 함께 꽁꽁 찧어 아이의 손에 조금씩 얹어 묶어 주었다.

▲ 화단에서 따온 봉숭아꽃 ⓒ 이은희


▲ 봉숭아꽃을 손톱에 얹고 꽁꽁 묶은 아이의 손 ⓒ 이은희


외할머니가 들여준 한손 말고 나머지 한손을 들여주었는데 웬걸, 불편했을텐데도 꼼짝 않고 두시간 정도의 시간을 너무나 잘 참는 것이 대견스럽다.

며칠전 친정에서 나도 한 손에만 봉숭아물을 들여보았다. 어린 시절, 엄마도 양손을 서로 다른 날 들였던 기억이 난다. 상상해 보시라~ 한손을 묶고 나면 그 손으로 나머지 한손을 묶는건 대략 불가능한 일이다.

암튼, 잘 참아준 아이의 손에 예쁘게 꽃물이 들었다. 아이도 발갛게 든 꽃물을 보며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들여준 나머지 한손과 비교하니, 수십년 역사의 할머니표 봉숭아꽃물과 올해 초년차인 엄마표 봉숭아꽃물은 역시 색깔 내공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 주황빛으로 물든 아이의 손톱 ⓒ 이은희


과정이 역시 번거롭긴 했지만, 그리고 밤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긴 하지만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나 역시 작은 기대감에 마음이 조금은 설렌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내년을 또 기약하게 되는 이런 마음이 엄마의 마음인 것일까? 욘석, 손톱이 아직 짧아서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있진 않겠지?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꽃물이 손톱끝에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유명한 속설이 있지 않은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내 어린시절 어느 땐가는 첫눈이 올 때 손톱 끝에 가늘게 남아있는 봉숭아꽃물을 분명 볼 수 있었을게다.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 어린시절 내 첫사랑이니 말이다. 헤헤~

남편과 아이의 닮은 손외할머니표 꽃물은 엄마표 꽃물과 질적으로 다르다! ⓒ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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