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KBS 문제로 계속 조사만 받고 있어요"
KBS '블랙리스트 발언' 고소 70일째 결론 못내... 국정감사까지 이어지나
▲ 지난 7월 19일 오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KBS로부터 고소당한 방송인 김미화씨가 영등포경찰서에 출두하고 있다. ⓒ 남소연
"KBS 문제로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받은 게 7월 초부터 9월이니까… 3개월이 다 돼 가는 데, 계속 조사만 받고 있어요! 원래 이렇게 오랫동안 조사받는 건가요? 추석이 다음 준데…"
KBS로부터 고소 당한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15일 답답한 자신의 심경을 트위터에 토로했다. 소가 제기된 지 17일 현재 70일이 지났건만, 이 사건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알 수 없다. 일반 형사사건의 조사기간이 통상 60일이라는 점에 비춰본다고 해도 'KBS 블랙리스트 사건'은 열흘이나 더 경과된 셈이다.
70일 넘도록 경찰은 조사 중
핵심은 김씨가 지난 7월 6일 트위터에 "김미화는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 된 답니다"라며 "KBS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처음 그 말이 언론에 나왔을 때 제가 믿지 않았던,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주십시오"라고 올린 글이 과연 KBS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블랙리스트의 법리적 해석을 두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화씨가 언급한 블랙리스트를 실존하는 명단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방송사에서 추상적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뜻으로 봐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중앙일보>와 인터뷰 한 영등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조사 내용으로 볼 때 김씨가 언급한 블랙리스트는 방송 출연 금지 대상 명단이 적힌 문서일 수도 있고, 기피인물에 대한 추상적인 낙인의 의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김씨가 노조의 주장을 근거로 '나 왕따 당하고 있대요' 정도의 발언을 한 것이라면 처벌이 어렵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를 문서로 해석하면 허위사실을 유포해 KBS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인정된다는 거고, 반대로 무형의 낙인이나 왕따의 의미라면 김씨의 책임은 약해진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문서 없어? 그럼 유죄?
▲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KBS로부터 고소당한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7월 19일 오전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이와 관련, 김씨의 변호인인 정연순 변호사는 "우리는 처음부터 블랙리스트라는 출연금지 명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바 없다"며 "김미화씨가 여러명의 KBS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기피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사실인지 확인 차원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이어 "경찰이 (블랙리스트) 문건의 존재를 놓고 수사한다면 이는 수사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또한 "임원회의 결정사항으로 드러난 특정연예인에 대한 배제나 기피는 KBS 새노조가 공개한 대로 KBS 내부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김미화씨 입장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고 이에 대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 했는데, 이를 명예훼손이라고 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KBS는 지난 15일 경찰에 추가 자료를 제출했다. A4 30~40쪽 분량의 의견서가 영등포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도착한 상태다. 경찰은 이 자료를 우선 검토한 뒤에 필요하다면 김미화씨와 그 변호인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KBS가 새로 제출한 A4 30~40쪽 분량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경찰은 함구했다.
이준안 KBS 법무실장 역시 "이 사건 관련 고소 대리인으로 두 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다는 것 이외에 다른 사실에 대해 일체 말해줄 수 없다"며 "이 사건 당사자에게 뭘 묻는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9월 말까지 이 조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유는 국정감사 때문이다. 내달 4일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문방위(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비단 출연금지 문제나 명예훼손 여부를 떠나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까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에 의견을 남긴 것이 화근이 돼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게 된다면 표현의 자유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배우 출신 최종원 민주당 의원은 1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공영방송인 KBS가 대중문화예술인을 상대로 그 같은 소송을 벌이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10월 국감을 앞두고 이 문제를 질의하려고 자료도 찾고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의원은 "헌법 제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위배되는 일이 과연 지금 시대에 맞는 일인지 묻고 싶다"면서 "대중문화예술인이 거대권력인 방송사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은 비단 KBS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문화부 장관에게도 책임이 있는 만큼 집중 질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 의원은 "KBS가 먼저 사과하고 소를 취하하는 편이 훨씬 공영방송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 "소송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풀 생각 없다"
▲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KBS로부터 고소당한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7월 19일 오전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제목의 KBS 내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이 같은 견해는 KBS 내부에도 존재한다. KBS 내부 관계자는 "경영진도 국감을 앞두고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는 눈치"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비화돼 '수신료 정국'에 피해를 줄 경우 KBS에 무엇이 남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한상덕 KBS 홍보실장은 "자연인 김미화에게 우리가 왜 나쁜 감정이 있겠느냐"면서 "공인으로서 트위터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블랙리스트 문건이 있는 것처럼 말했으니 이 점에 대해 먼저 사과한다면 우리도 소를 취하할 뜻이 있다고 시종일관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KBS는 이미 임원회의 결정사항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법의 판단을 구하기로 결정하고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김인규 사장 또한 임원회의에 속한 분으로 같은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우리가 소송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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