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범람하는 국영수, 비수능교과 황폐화시켜

2014 수능 개편 제2외국어 한문영역 공청회를 다녀와서

등록|2010.09.18 16:09 수정|2010.09.18 16:14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井水不犯河水). 그러나 거대한 국영수 강물은 2009 개정교육과정에 범람하여 크고 작은 우물물들을 덮쳐 비수능교과를 여지없이 황폐화시키고 있다. 거대한 강물이 모든 샘물을 덮친 상황에서 만일 그 물이 오염되어 먹을 수 없게 되면, 그때는 어디서 맑은 샘물을 구할 수 있을까.

국영수 범람은 곧 사교육비의 범람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여기에 2014년 수능 개편 시안 발표는 거의 확인사살 수준에 가깝다. 그럼에도 2014년 수능 개편 시안이 과목축소로 인해 수험생의 학습부담과 사교육비 경감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낮은 수준의 포퓰리즘이거나 현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호도하려는 불순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교육을 '변별력'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무리 수능과목을 축소한다고 해도 수험생이 느끼는 '학습부담의 절대값'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2014 수능 개편 대전 충청권 공청회전문가토론 참석자들이 배석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 김대오


지난 17일 2014학년도 수능 개편을 위한 '제2외국어 한문영역 대전 충청권 공청회'가 대전교육청 강당에서 열렸다. 백순근 2014년 수능개편안 자문위원의 수능시험 개편 시안 발표에 이은 전문가 토론에서 참석자들 대부분은 세계화, 다원화 시대 제2외국어 한문영역을 수능에서 제외하는 것은 지난 2001 교육과정보다도 한참 후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제2외국어 한문은 결코 수험생의 학습부담과 사교육의 주범이 아니라며 제2외국어 한문영역을 현행과 같이 수능에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3과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 송미영씨는 "처음에는 시험과목 축소가 수험생의 부담을 줄여주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반가워했으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국영수 비중이 높아져 결국 아이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유무역으로 전세계가 전례없이 밀접하게 연결돼 사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른 선진국에서는 확대해 가는 제2외국어교육을 우리나라는 거꾸로 축소하고 수능에서도 제외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능에서 제2외국어를 제외하겠다는 것은 외국어는 곧 영어라고 세뇌하는 것과 같다. 모든 이론은 현실로부터 검증이 된다는데 우리나라가 미국 등 영어권 국가들과만 교역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어는 도구적 성격이 강하고 외국어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물건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양한 도구가 필요하다. 망치만 크게 다듬는다고 해서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툴바에는 다양한 툴이 있어야 적시적소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2009 개정교육과정은 총론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의 발달과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품격있는 삶'을 적시해 놓았다. 그럼에도 그 각론에 이르면 국영수에 이수단위를 몰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청회장의 다양한 주장을 담은 피켓들 국영수 위주의 수능을 반대하는 사회탐구와 제2외국어 한문영역 관계자들이제작한 피켓들이다. ⓒ 김대오


공청회에 참석한 백순근자문위원은 2009 개정교육과정이 국영수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국어과목의 최대 이수단위를 18단위에서 15단위로, 최소 이수단위도 12단위에서 10단위로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답변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혹세무민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부가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학교장에게 20-30%까지 자율적으로 이수단위를 적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으며 또 64단위의 학교자율과정은 보나마나 국영수로 채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어듣기평가'라는 강물은 한 학기에 한 번씩 범람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교 3교시 수업을 마비시킨다. 수능을 앞둔 고 3교실의 비수능교과목은 자습 등으로 파행운영되기 십상이다. 공청회장에는 국영수의 범람으로부터 저마다의 우물을 지키기 위한 비수능교과목의 몸부림이 피켓과 현수막으로 내걸렸다.

그러나 공청회는 각계의 의견을 듣는 것일 뿐이지 일일이 답변할 필요는 없다는 자문위원의 태도가 공청회가 그저 구색 갖추기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