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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남의 '가위소리'전

밤에도 눈감지 않는 물고기의 부릅뜬 눈으로 동시대의 현상을 읽다

등록|2010.09.19 11:00 수정|2010.09.19 11:00

▲ 김성관사장님과 그를 모델로한 박성남화백님의 '층_가위소리' ⓒ 이안수


김사장의 엿장수 가위로 잃어버린 신명을 되찾다

박성남화백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로 들어서자마자 놀라운 모습이 벽에 가득 펼쳐져있었습니다. 늘 함께 술자리를 하던 지인의 사실적인 모습이 전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습니다.

일산에서 '현대아크릴'이라는 산업용 아크릴을 가공하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김성관사장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은 때때로 자신의 공장에 지인과 이웃들을 모아놓고 공장음악회를 열곤 합니다. 문을 활짝 연 아크릴 가공 건물입구는 무대가 되고 공장 마당은 객석이 됩니다. 피아니스트도, 오보에이스트도, 성악가도 기꺼이 성장을 하고 그 소박한 무대에 오릅니다.

김사장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예술가들을 잘 모셔야 된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입니다. 사느라고 바빠서 까슬까슬해진 이웃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는 사람이 그들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박성남화백님은 항상 가난한 예술가을 후원하고 이웃들의 날선 감정을 달래어 어루어만지는 김사장님의 행위뿐만 아니라 김사장님의 용모에서 '위로'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김사장님은 항상 웃습니다. 낮에 보아도, 밤에 보아도 언제나 웃는 모습입니다. 예의 그 웃는 모습으로 양손에 두개의 엿장수 가위를 들고 있는 모습은 신명을 잃은 사람에게도 금방 흥겨운 '신'과 '멋'을 되찾아 줄 것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문화박물지'에서 이어령선생님은 한국의 엿장수 가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생김새를 보면 끝이 무디고 날이 어긋나 아무것도 잘라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가위에서 가위의 기능을 가위질해 버린 것이 엿장수 가위이다. 엿장수 가위는 자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는 음향효과에 그 기능을 두었기 때문이다."

박성남화백의 그림은 이 음향효과를 몇 배로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두개의 가위는 독주의 가는 음향이 아니라 마치 악단과 함께하는 것 같은 협연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화가는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 신명을 잃은 현대인의 일상에 신이 지핀 모습의 생기를 두개의 엿장수 가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성남의 '여기, 지금 그리고 나'

박성남화백님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물보다 짙은 피'를 느끼곤 합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아버지 고 박수근화백이 읽히고, 수십 년의 외국생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토속적 정서가 오히려 짙습니다.

전시장에서 돌아온 뒤, 작년 여름 박화백님이 건네준 소설 '빨래터(이경자 저, 문이당)'를 다시 펼쳤습니다.

'빨래터'의 위작논란을 계기로 박성남화백이 삶을 반추하는 방식으로 아버지 박수근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책에 저자는 박성남화백을 이렇게 새겨 넣었습니다.
"그에게 아들이 있는데 그는 거대한 나무 아래서 양분도 잘 못 빨아들이고 햇볕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살아남았다. 그의 인생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상처와 사랑을 품고 있어서 슬픔을 자아내게 했다."

바바리코트와 긴 머플러, 정결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썰렁 유머는 능변에도 불구하고 그를 우수어린 모습으로 기억하게 했습니다. 이경자작가는 박화백의 그 우울의 분위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우울의 근원인 '상처와 사랑'은 박화백님의 모든 그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더 문명화되고 더 풍요로워졌다고 여기는 현대사회의 자아들도 박성남화백이 화폭에서 설파說破하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박성남화백님은 아버지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구태여 배제하지 않으며 우레탄 폼을 사용해 입체를 함께 표현함으로서 치열하게 스스로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부풀려진 우레탄 폼은 현대인의 과도한 욕망입니다. 그 욕망에 둘러싸인 캔버스에는 아버지가 그러했던 선한 소시민들의 일상에서 포착한 단면들이 묘사되어있습니다.

화가는 술 한 잔 함께하는 자리에서 종종 '여기, 지금 그리고 나'를 말합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 요법의 창안자인 프리츠 펄스fritz pearls는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존재하지 않은 시간을 위해 현재를 살 필요가 없음을 말했습니다. 박성남화백님은 밤에도 눈감지 않는 물고기의 부릅뜬 눈으로 동시대의 현상을 읽어내고 그 자아인식을 바탕으로 '나'를 '여기 그리고 지금' 성숙된 삶을 살도록 일깨우고 있습니다.

●박성남 '가위소리'展
-장소 | 대학로갤러리
-기간 | 2010년 9월 15일(수)_10월 12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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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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