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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만나다

[잘못된 만남] 경찰서에서 만난 교통사고 가해자

등록|2010.09.19 15:34 수정|2010.09.22 19:15

돌아가신 지 8년만에 맞이한 어머니 환갑올해 4월 어머니의 환갑을 맞아 산소를 찾아 조촐한 환갑잔치를 마련했다. ⓒ 김동이


2002 월드컵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인 그해 11월은 인생에 잊지못할 악몽으로 남아있다. 30년이 넘도록 정신적 멘토였던 어머니께서 운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충격과 악몽을 아직도 가슴속에서 가시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고 다음날 경찰서에서 만난 범인과의 조우는 인생 최대의 잘못된 만남이었다.

직업군인으로서의 길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6년째에 접어들었던 2002년 11월 16일 막내 동생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하던 동생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던 동생에게 급하게 다그쳐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 ..."
"빨리 말해봐 임마! 어떻게 된 거여"
"횡단보도 건너다가 봉고차에 치였는데..."
"근데"
"지금 병원에 계신데... 돌아가신 것 같대"
"뭐? 확실해? 어느 병원이야?"
"조치원 00병원인데..."


다급하게 전화를 끊고 군복을 입은 채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에 떠 있는 별만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럴수가'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할 때가 아니었다. 군대라는 울타리에 메어 있던 터라 마음대로 부대를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곧바로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곧바로 병원으로 내려가야 되겠습니다. 보고해 주십시오."
"조금만 기다려. 보고하고 연락줄게."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전화기가 울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이내 난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곧바로 지휘관에게 사정을 보고했다.

"조치해 줄 테니까 조심해서 갔다오고, 시간이 더 필요하면 연락해."

겨우 허락을 맡고 급히 의정부행 버스에 올랐다. 당시 승용차도 없고 동두천의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던터라 의정부를 거쳐 다시 서울로, 서울에서 조치원으로 내려가는 여정은 막막하기만 했다.

다행히 서울에 사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두 시간여만에 도착한 병원. 난 병실이 아닌 영안실로 향해야 했다.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후 잠시 응급실에 머물렀지만 이내 숨을 거두셨고 영안실에 빈소가 마련됐다.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아버지와 우리 3남매는 망연자실했고, 비보를 듣고 빈소로 달려온 외가 친척들도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모여들어 이내 빈소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특히, 영정사진 조차 준비하지 못했던 가족들은 위패만을 모신 채 빈소를 차렸고, 집안 어른들이 단체사진 속에서 급조한 어머니의 영정사진은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친척분께서 시골집에서 찾아낸 어머니의 사진으로 나중에 교체하기는 했지만 가족들은 한동안 자괴감과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횡설수설 범인과의 조우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빈소가 차려진 뒤 이틀째 경찰복을 입은 교통계 직원들이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영안실을 찾았다.

"유족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현장검증도 해야 하니까 가족분들 동행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상주로서 빈소를 지켜야 했지만 사고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해야 했기에 상옷을 입은 채 친척들과 함께 경찰을 따라 나섰다.

먼저, 유족들의 진술을 듣기 위해 경찰서 교통계로 향했다. 칸막이가 쳐져있는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곳에서 진술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 칸에서 어머니 사고와 관련된 범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경찰의 질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사실을 부인하는 범인의 목소리는 우리 가족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범인은 "저는 신호를 지켰고, 사고자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했다"는 것이다.

이미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어머니의 동행자들 9명의 진술과 당시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군인들의 진술로 범인의 신호위반 사망사고에 대한 범행사실은 경찰에서 확인이 마친 뒤였지만 계속해서 범인은 자신의 범행에 대해 부인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작스런 충격으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진술에 임하던 난 범인의 허위진술이 이어지자 앉아있던 의자를 머리위로 들고 범인에게 향했다. 유족들에게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허위진술로 일관하는 범인을 가만 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경찰의 저지로 범인을 향한 분노의 화풀이는 소동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가족들의 분노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이윽고 조사가 끝나고 사고현장에서의 현장검증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범인은 사고현장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며 뻣뻣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현장검증에서 범인이 진술했던 신호체계와 완전히 다른데도 말이다.

사고현장에서 발견한 어머니의 신발, 유족 두 번 울리고

현장검증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뻔뻔하게 돌아서는 범인을 보며 분노를 삭이던 중 우연히 횡단보도 한쪽에 너부러져 있는 신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그 신발은 바로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신고 있었던 낡은 신발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니 다른 한짝의 신발도 나뒹굴고 있었다. 신발을 주워들고 고이 가슴에 품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와서 경찰에 이끌려 끌려가는 범인의 모습을 보니 분노는 극에 달했다. 또한, 사고현장에서 사고자의 유품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경찰에게도 원망의 눈길이 갔다. 

이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까지 마치고 4일 만에 우여곡절 끝에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삼우제를 치르던 날 경찰에게서 또 다시 달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범인이 합의를 거부하고 일명 몸으로 떼우겠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범인과의 만남을 원치 않았던 가족들은 그냥 그렇게 범인을 법의 심판에 맡기고 사고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떠오르고 싶지 않은 범인의 얼굴이지만 거짓말로 일관하던 뻔뻔했던 범인과의 만남은 내 인생 최악의 달갑지않은 '잘못된 만남'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고장소였던 밀마루 전망대 앞 종촌사거리지금도 이곳을 지날 때면 악몽이 떠오른다. 최근 세종시 공사가 본격 추진되고 있는 이곳은 차량소통도 증가되고 있지만 과속감시 및 신호위반 카메라 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아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 Daum 지도 캡쳐


한편, 어머니께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곳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의 건설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난해 3월말 조성된 연기군 남면 종촌리의 밀마루 전망대 앞 사거리로, 당시 사고 이후 과속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돼 한참동안 운영되었지만 행복도시 건설이 본격화된 이후로 차량소통이 더 증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철거해 또 다시 사고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비록 지금은 행복도시 건설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주해 종촌사거리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차량증가 등으로 과속과 신호위반 차량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과속감시와 신호위반을 단속하는 카메라 설치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잘못된 만남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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