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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주택 모습 간직한 추억의 동네

[르포⑥-부개동]부개동 골목길을 찾아가다

등록|2010.09.20 10:31 수정|2010.09.20 10:33
좁디 좁은 골목길이 있는 작은 동네. 모습은 허름하지만 돌담 사이로 핀 아기자기한 꽃들도 작은 사랑을 가꾸며 사는 우리네 그 곳. 어스름한 초저녁에 두부장수 아저씨의 작은 종소리, 집집마다 밥하는 냄새와 골목골목 아이들이 모여 재잘대며 노는 소리 등. 우리의 옛 추억이 묻어나는 곳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걸까요?     

재개발과 신도시 정책으로 인해 이제 이런 풍경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높이 솟은 아파트와 하루 종일 뚝딱거리는 철거 소음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깊어만 가지요. 도시적 삶의 변화와 개선사업지구로 묶여 공동체적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적 아픔을 치유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시대를 비껴가기라도 하듯 아직 옛날 그 모습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동네의 따스한 동네를 카메라 속에 담아봅니다. 이를 통해 작게나마 마음의 추억을 이어봅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꿈을 다시 꾸어봅니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영원한 사랑방으로 간직될 골목길 추억 여행을 함께 떠나봅니다.

▲ 마을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떡볶이 포장마차. 주인장 이처례(59)씨가 손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이정민


"전쟁이 끝나고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우리 가족은 여기 부개동에서 남편과 시아주버니랑 농사지으며 살았어요. 이후 이 근처에는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어요. 돌가루를 빻아서 접시를 만드는 공장, 철길 너머엔 양말공장, 그리고 지금 아파트가 서있는 곳엔 타일공장과 가구공장 등이 즐비했어요. 그나마 이곳에 공장지대가 있어 주민들의 생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돼 주었죠."

부개동 동수로 128번지길. 동네 풍경을 담으러 한 바퀴 돌다가 예전에 한번 들렀던 떡볶이 포장마차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마을에 온지 38년이 됐다는 주인장 이처례(59)씨는 시집와서 아들 둘을 키우며 고생했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한번은 양말공장에 불이 크게 나서 근처가 쑥대밭이 된 적도 있었고, 타일공장에 다니던 노동자가 기계를 잘못 만지는 바람에 목숨까지 잃고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결국 문을 닫기도 했어요. 빌라 촌 맞은 편 철길로는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가 종일 오가며 경적소리와 검은 연기로 마을을 뒤덮곤 했고요. 지금이야 시대가 좋아져 생활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논과 밭이 전부였고, 소·돼지 키우며 근근이 연명하던 시절이었답니다(한숨)."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덮쳤다. 학교를 마치고 떡볶이와 슬러시(=오렌지색 음료)를 나눠먹던 아이들도, 유치원을 마치고 할머니에게 떼를 쓰며 울던 아이도, 잠깐 마실을 나와 이웃주민들과 막걸리를 나누던 아주머니들도 비를 피해 집으로 향했다. '이제 취재가 시작인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잠시, 아니 오래도록 내린 소낙비를 피해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반가운 햇살이 보이자마자 다시 골목길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 부개동 동수로 128번지길에 위치한 만월산 산책로. 왼쪽으로 군부대 담장과 오른쪽으로 아파트 건설현장 울타리 때문에 올라가는 길이 없는 듯하다. ⓒ 이정민


야트막한 산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이 다 헐리고 2년 전부터 주공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인 골목 끝자락에 만월산 산책로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일찌감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다. 이 마을에 온 지 15년쯤 됐다는 할머니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이곳이 타일공장이었다고 일러 준다. 그리고 한창 아파트 건설 공사로 시끄러운 현장을 돌아보면서 "저곳에 있던 원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아마도 그들과 함께 보냈던 옛 추억이 그리운가 보다.

▲ 저 멀리 보이는 저층 아파트 단지로 넘어가려 했지만, 군부대로 인해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담벼락 밑에 심은 파, 고추, 부추가 알맞게 자랐다. ⓒ 이정민


▲ 차 한대가 지나갈 만한 골목길 양쪽으로 2층 단독주택들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 ⓒ 이정민


아파트를 마주하고 아직 남아 있는 연립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 안쪽 군부대 담 사이에 심어 놓은 파, 고추, 부추 등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막다른 골목 너머로 보이는 저층 아파트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 일명 SSM,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서려했던 장소. 주변으로 작은 슈퍼들이 많이 산재해있어 그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 이정민


골목길을 나와 상가 밀집지역으로 들어서니 일명 SSM,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서려했던 건물이 시선을 끈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상인들의 SSM 입점 저지투쟁으로 한창 언론에 오르내리던 현장이다. '현재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부개2점은 개점 보류 중이고…' 작은 안내문만이 홀로 남아 주인장 행세를 하고 있다.

▲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부개동 입구 작은 공원. 지형을 꼼꼼히 살펴보면, 초창기에 이곳이 마을 입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이정민


▲ 허름한 공원이지만 나름 구색을 갖춘 모습이다. 작은 암석 바닥이 이채롭다. ⓒ 이정민


▲ 솜이불은 지금 홀로 시위 중. ⓒ 이정민


큰 도로를 나란히 하며 작은 보행길 옆으로 생긴 커다란 정자나무 그늘로 향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후의 한가로움을 즐기며 멋쩍은 웃음을 보낸다. 나무가 뽑힌 평평한 암석 바닥이 예술 같은 형상의 자태로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 골목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작은 슈퍼마켓과 통닭집, 세탁소, 약국 등이 구색을 맞춰 정렬돼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솟은 저층 아파트들이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가려준다. 아이들이 뛰놀고 있어야 할 작은 공원 마당에 잘 마른 솜이불만이 홀로 시위를 하고 있다.

▲ 골목을 돌아 새로운 장소로 들어가려해도 길이 곧 막혀 갈 수가 없다. ⓒ 이정민


▲ 만날 때는 보안의식, 헤어질 때는 안보의식? ⓒ 이정민


군부대로 인해 막혀있는 막다른 골목길을 끝으로 옛 철길이 그대로 간직돼있는 옆 동네로 발길을 돌렸다. 길이 없어 더 이상 갈 곳도, 쉬어갈 그늘도 없는 이곳에 군인들이 내뿜는 총소리만 들린다. 답답하다.

만날 때는 보안의식! '아버지가 군 생활할 때도, 내가 군 생활할 때도, 술만 들어가면 여지없이 보안이라는 놈은 한방에 무너지고 만다(웃음)' 군부대 출입구 한쪽에 놓인 군인전용아파트 정문 길 위로 금방 학교를 마친 한 아이가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고 털레털레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 풀숲으로 뒤덮인 철길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장면 같다. ⓒ 이정민


부개동 연립주택 단지를 벗어나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던 철도 변 마을길로 들어섰다.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철로 위로 온갖 잡풀이 가득하다. 철길을 나란히 하고 도랑물도 흐른다. 멜로 영화에나 나올법한 풍경이다. 지역에서 이곳을 관광재원으로 활용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는데, 조금만 손을 보면 꽤 괜찮은 촬영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를 경계로 오래된 단독주택 마을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 이정민


▲ 웃음으로 소통하는 할아버지와 이웃집 아기의 아침 인사. ⓒ 이정민


철길 옆으로 작고 아담한 2층 주택들이 즐비하다. 그 자체가 그늘막이 돼주니, 오전부터 마실 나온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깨운다. 배추를 다듬으며 정을 나누는 아주머니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걸치며 흥을 돋우는 할아버지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와 조우하는 세 살짜리 아기의 해맑은 표정이 푸근하다.

▲ 천국의 계단 ⓒ 이정민


▲ 이 집을 마지막으로 골목길이 끝이 난다. 홀로 집을 지키는 백구 한 마리가 쓸쓸해 보인다. ⓒ 이정민


동수로 150번지길. 이곳은 아직 옛날 주택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고 있는 추억의 동네다. '아, 근데 이 작은 길이 벌써 막혀있네' 이곳 역시 군부대가 터를 잡고 있어 더 이상의 통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네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허름한 집, 백구 한 마리가 홀로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 가을은 결실의 계절. ⓒ 이정민


▲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 이정민


막다른 집을 되돌아 나오는데 철길 옆으로 높이 솟아있는 여러 개의 가로수 가지 위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대추와 은행이 반긴다. '역시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구나' 발길을 돌려 걷다가 자꾸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본다. 철길 위에 피어있는 작은 풀들이 오라고 손짓한다. 이내 부대로 막힌 길을 더 올라가 볼 심경으로 풀숲으로 뒤덮여있는 철길을 따라 다시 걸어들어 갔다.

▲ 철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오래된 집이 눈에 띈다. ⓒ 이정민


▲ 계단과 계단 사이엔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 이정민


비 온 뒤라 땅이 질퍽해져 한쪽 철길을 외줄타기 하듯 걷다가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고꾸라졌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그~' 옷을 털고 일어나 끝자락에 놓여 있던 허름한 그 집을 다시금 바라봤다. 한 채라 생각했던 이 집은 달동네 쪽방 촌처럼 여러 개의 방이 붙어 있다.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노래가 나온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계단과 계단 사이엔 삶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음, 저곳이 천국의 계단이란 말인가' 철길 위에 계단, 그리고 그 위로 난 또 하나의 계단 위로 작은 옥탑방이 자리 잡고 있다. 비록 오래돼 낡고 허름하지만, 누군가의 안식처로는 천국이리라.

▲ 고층 아파트에 올라 다녔던 길을 카메라에 담아 보지만, 골목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 이정민


▲ 가을운동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설렘. ⓒ 이정민


▲ 아-름-다-움. ⓒ 이정민


마을 전체 풍경을 담고자 고층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아무런 그늘 막도 없는 옥상 한 가운데서 사진을 찍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왼쪽의 마을을 찍고, 오른쪽의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찍으려 밖을 내다본 순간 동수초등학교 아이들의 앙증맞은 율동이 더위를 잊게 한다. 아마도 가을운동회 때 선보일 집단무용을 연습하나 보다. 유행하는 음악에 맞춰, 선생님의 율동에 맞춰, 소고를 두드리는 학생들의 작은 몸짓이 예술이다. 아름다움 그 자체다. 아-름-다-움!
덧붙이는 글 [부평신문] 이 기사는 9월 14~15일 이틀간에 걸쳐 취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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