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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 대표님, 추석날 라면 먹는 심정 아시나요?

비정규직 해고자인 저희 집에서 라면 한 그릇 함께 드시죠

등록|2010.09.22 17:53 수정|2010.09.22 19:04

추석날 아침라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현실을 만든 현대자동차 사측과 노조 대표에게 감사드립니다. 불법파견 문제를 방치하고 외면하여 가정 파탄이 날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아시는지... ⓒ 변창기


서울엔 추석 전에 비가 많이 내려서 물난리가 났던데 울산은 흐리거나, 비가 조금만 내렸습니다. 어제(21일) 오후 동네 한바퀴 돌아보니 이 집 저 집에서 창문 열어 놓고 추석 음식 만드느라 시끌벅적했습니다. 멀리서 가족도 왔나 봅니다.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1년 전만 해도 푸짐하지는 않았지만 추석맞이를 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나마 갔었고 이것저것 조금씩 추석 음식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러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올해 3월 중순 느닷없이 들이닥친 정리해고.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 비정규직으로 다니면서 늘 살얼음판 밟듯이 불안하더니 그렇게 일이 터지고 만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없어진다, 안 없어진다 말도 많았던 공정은 결국 구조조정에 휘말렸고, 원청은 새 공정 공사에 들어간다며 정규직 대의원과 협상하였고, 정규직은 1년간 유급휴직을 한다고 했지만 우리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해 주지 않은 채 협상을 끝냈다고 했습니다.

정규직 노조에겐 협상력이 있어 사측과 협상할 수 있었지만 우리 비정규직은 협상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20명 남짓이던 이 업체 저 업체 비정규직은 모두 희망퇴직이란 명분 아래 정리해고 되었습니다.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같은 지붕 아래서 같이 일해 왔었는데도, 저 같은 경우 10여 년 동안 열심히 일해 왔었는데 저는 하루아침에 잘리고 정규직이란 이름을 가진 노동자는 1년간 유급 휴직으로 처리되어서 돈 받아 가면서 집에서 쉬다 다시 공장이 완공되면 일자리 찾아 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7월 22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민주노총 고문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니 저도 정규직으로 복직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대법원 판결은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을 저지르고 있고, 현대차 내의 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한 사내하청 직원은 근무 기간이 2년을 넘었을 경우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처지에서 보면 2000년 7월 3일 처음 들어가 일할 때부터 불법파견되어 현대자동차에서 노동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들어간 지 10년이 다 되어 가니 현대자동차에 부당하게 저의 임금이 착취된 부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봤습니다. 억울해서 그냥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사직서를 쓴 상태였지만 하청업자에게 써준 사직서는 무효가 된다고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한 가닥 희망을 안고서 금속노조에 다시 가입하여 조합원 상태를 복원시켰는가 하면 "불법파견 중단하고 정규직에 복직시켜라"며 출근 투쟁도 했습니다. 그동안 지켜본 사측은 이런저런 구실을 내세워 탄압만 일삼을 뿐, 대법원에서 내린 판결문에 대해 해결할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 불법파견으로 현대차에서 10년 일하다 부당해고 되었습니다. 7월 22일 대법 판결 후 복직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9월 10일(금) 오전 7시 울산 명촌 쪽문 앞에서 출근시위 중. ⓒ 변창기


추석날 아침을 라면으로 때우는 심정, 아시나요?

오늘 아침 저는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아내는 속상한지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아비 사정을 아는지 어디 가자고 보채지 않습니다. 아내는 "벌써 200만원이나 빚을 내어 생활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이 상태가 지속되다간 가정 파탄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제 마음을 휩싸고 돕니다.

식물은 물이 없으면 시들어 죽고 야생 동물은 먹이가 없으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노동자라고 다를 바 있을까요? 일자리가 없으면 돈을 벌 수 없고 돈이 없으면 애써 만든 가정 또한 온전히 보전될 수 없음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현대자동차 대표자와 현대자동차 노조 대표자 두 분은 추석날 아침을 어떻게 보내셨을까요? 모두 가족과 함께 풍성하고 풍요로운 추석 아침을 맞았겠죠? 부당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추석날 라면 한 그릇으로 아침을 때우는 심정을 그런 그들은 알까요?

초대합니다.

현대자동차 대표와 현대자동차 노조 대표 두 분만 오세요. 두 분은 그래왔어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는데도 양측 모두 다를 바 없이 외면하고 방치해 왔어요. 그리고 이렇게 추석을 맞이했고, 저는 추석날 아침 궁상맞게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이런 가장이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현대자동차 노사 양측 대표를 정중히 우리집에 모시고 싶습니다. 추석날 아침에 라면 끓여 먹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한번 느껴보시도록 라면 한 그릇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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