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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보다 젯밥이라더니 체육대회보다 춤판

제5회 금광면민 한마음 체육대회 이모저모

등록|2010.09.27 10:34 수정|2010.09.27 10:34

줄넘기그녀들이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사뿐히 가을 하늘을 뛰었다. 남성 2명, 여성 5명이 한 조가 되어 신나는 줄넘기를 이루었다. ⓒ 송상호



안성 금광면민 체육대회가 9월 26일 금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2년마다 열리다보니 이런 광경은 일상이 된다.

"아랫마을 영철이네 아들, 장가 갔는 디 며느리가 참하더만."
"아 그려. 결국 갔구만. 얘 좀 태우더니 잘 되았구만 그랴."
"윗마을 김영감은 작년에 세상 떠난 겨."
"쯧쯧. 그 양반 골골하더니 갈 때가 되았지 뭐."

시골 체육대회가 졸지에 뉴스 교환 시장이 된다. 평소 개인적으로 만나다가 마을 단위로 만나니 할 말은 더욱 많아진다. 어르신들의 수다가 이렇게 시끄럽고 흥겨울 줄이야.

선수단선수단이 입장했다. 선수단이라고 해서 이팔청춘들이 아니다. 육숙에서 팔순까지 어르신들도 상당수다. 선수가 따로 없고, 관중이 따로 없다. 약 세 마을씩 묶어서 한 구역이 되었다. ⓒ 송상호



선수단 입장은 올림픽 선수들 입장하는 듯

선수단 입장이다. 올해는 제 1구부터 6구까지 나눴다. 예년에 각 마을마다 출전하던 것을 인원 분배 때문에 약 3마을씩 묶어서 한 구역으로 나눴다. 마을마다 출전할 젊은이들이 적어서다. 선수단 입장이라고 하니 이팔청춘들이 출전하나보다 하겠지만, 육순부터 팔순 어르신들이 많고, 30~40대는 젊은 축에 속한다. 군데군데 어르신들의 손자손녀들이 끼어 있어 그나마 평균 연령대를 낮추는 편이다. 그래도 입장하는 위용은 올림픽 출전선수들을 방불케 한다.

줄넘기는 남성 두 명이 줄을 돌리고, 여성 5명이 줄을 넘는다. 여성들은 소녀부터 50대 아줌마까지. 하나둘 셀 때는 해당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센다. 처음엔 장난하듯 시작한 경기가 뒤엔 장난이 아니다. 뒤로 갈수록 출전 선수들이 이를 악문다. 그녀들이 가을 하늘 위를 나비처럼 사뿐히 날아오른다.

줄다리기는 마을간 자존심 대결이다. 여성 10명, 남성 10명이 출전한다. 힘겨루기다보니 모두 각오가 남다르다.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비장함이 마을마다 흐른다. 진행자의 출발 신호가 떨어진다.

"으쌰, 으쌰..........."

줄다리기줄다리기는 힘겨루기인만큼 각 마을의 자존심이 걸려있었다. 어떡하든 이기려는 마음이 얼굴에 마구 드러났다. 남성 10명, 여성 10명이 한 조가 되어 경기가 치러졌다. ⓒ 송상호



시간이 갈수록 규칙도 엄격해진다. 심판에게 항의하는 목소리도 간혹 나온다. 판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는 듯싶으면 당장 언성을 높인다.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용을 쓴다. 그러다가 이긴 팀은 만세를 부르며 운동장이 떠나갈 듯 승리의 환호를 날린다. 진 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이다. 아쉬움이 얼굴에 잔뜩 묻어난다.

행운권 당첨되면 빛의 속도로 단상을 향하다

경기 중간 중간 벌어지는 행운권 추첨 시간. 그렇게 떠들던 운동장이 순간 쥐 죽은 듯 정적이 흐른다. 모두가 긴장한다. 행여나 자신의 번호가 불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운동장 가득하다.

그러다가 자신의 번호가 불리면 거의 빛의 속도로 단상을 향해 달려간다. 누가 자신의 경품을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로또가 당첨되어 상금 타러가도 이 정도로 기뻐하지는 않을 터. 한 소녀는 자신의 번호가 불린 게 믿기지 않는지 "이거 진짜 주는 거 맞아요. '까악~'"이라며 비명을 지른다. 한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경품으로 받으면서 청중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마치 대통령에 당선된 당선자가 국민에게 손을 흔들 듯. 

경품 대통령행운권을 추첨하여 자전거를 탄 한 할아버지가 마치 대통령에 당선되어 화답하듯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 송상호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공차서 반환점 돌아오기' 시간이다. 이 경기 하면서 어르신들의 성격 나와 주신다. 어떤 할머니는 차분하게 공을 차서 느릿느릿 하신다. "아따 속 터져. 빨리 허랑게유". 대기하던 할아버지 속이 터진다. 어떤 할아버지는 공을 잡자마자 뻥 차서 냅다 뛰다가 넘어져 꼬꾸라진다. 그 모습을 보며 운동장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된다. 어르신들의 경기인 만큼 승패에 상관없이 상품이 각자에게 주어진다. 비누세트다. 모두가 상품을 받아들고는 모두가 이긴 듯 만면에 미소다.

중간 중간 본부석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르신들, 특히 아줌마와 할머니들 사이에서 거의 반사적으로 춤과 박수가 터진다. 숫제 경기와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춤판을 즉석에서 벌인다. "얼씨구나 지화자 좋다". 거기다가 한 잔의 약주는 이 춤판의 기폭제가 된다. 천국이 따로 없다.

춤판 1시도 때도 없이 춤판이다. 본부석에서 신나는 음악만 나오면 거의 반사적으로 춤과 박수가 이어진다. 할머니들은 이날을 기다렸다. ⓒ 송상호



드디어 이제와는 수준이 다른 경기 한 판이 펼쳐진다. 축구 경기다. 다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예선전을 거친 두 팀의 맞대결이다. 20~30대의 건장한 청장년들이 한 팀이다. 시골마을 조기 축구회라지만, 실력은 선수 못지않다. 그동안 틈틈이 길러왔던 실력을 마음껏 풀어놓는 시간이다. 골이 들어가려다 말면, 운동장은 순간 아쉬움의 한숨소리로 가득 찬다. 오늘은 천금의 한골이 승부를 가른다. 골이 터지니 희비가 엇갈리고. 한 쪽에선 환호소리가, 한 쪽에선 아쉬움의 소리가.

운동장은 삽시간에 관광버스 춤판

체육대회 시간이 한창 지나 어르신들이 지칠 만도 한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바로 이때를 기다렸다. '장기자랑 대회'다. 말이 장기자랑 대회지 거의 춤판, 노래판이다. 사회자의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구석구석에서 자리 잡고 있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각 마을에서 노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 둘 단상 앞으로 모여든다. 각 마을의 내로라하는 열성파들 다 모인다.

춤판 2가수들과 장기자랑 참가자 들이 단상에서 공연을 하니 일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운동장에서 춤판을 벌였다. 이날 춤판은 장장 2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 송상호



신나게 흔든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음정이 조금 틀려도, 박자가 조금 안 맞아도 모두가 괜찮다. 신나는 노래만 불러 준다면 모두가 용서가 된다. 운동장은 삽시간에 관광버스 춤판이 된다. 열성파들은 무대 앞에서, '얌전파'들은 각 구역 처소에서. 중심부에서 흔들고, 변두리에서 흔들고. 갈수록 열기가 더해진다.

초대 가수들의 노래는 춤추며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운동장이 술렁인다. 가을이 춤을 춘다. 오호라, 바로 이 시간을 오매불망 기다렸나보다. 당초 예상 시간보다 시간이 늦어진다. 끝없는 노래신청자들 때문이다. 처음에 머쓱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모두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 체육대회보다 춤판에 열정을 더 바친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간다더니 딱 그 짝이다.

팔순 할머니올해 85세의 한 할머니(금광면 홍익아파트)가 신명나게 꽹과리를 치고 있다. 이 할머니의 표정이 이날의 분위기를 모두 말해준다. ⓒ 송상호



팔월 한가위 끝에 명절 음식 잔치하듯 풍성한 마음으로 치러진 면민체육대회. 손자손녀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정겨운 추억 하나 푸짐하게 싸들고 집으로 향한다. 내후년을 또 기약하면서.  
덧붙이는 글 체육대회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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