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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테러범의 딸을 고문해야 할까?

[서평] 마이클 센댈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록|2010.09.28 11:19 수정|2010.09.28 11:19
가까운 미래, 드디어 진보정당이 집권했다고 가정하자. 이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우익 테러집단이 서울 한복판에 폭탄을 설치하고는 "좌파 정부는 즉각 퇴진하라, 아니면 폭탄을 터트리겠다"는 경고를 보내왔다고 하자.

폭발이 불과 몇 시간 남은 시각, 경찰은 테러범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용의자는 폭탄의 위치를 알려줄 의사가 없다. 이제 경찰은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정부에 허가를 요청했다. 그런데 신정부는 그동안 "어떠한 경우라도 고문과 같은 반인권적 방식은 쓰지 않는다"고 공언해온 상태다. 그러나 다른 대안은 없고 초침만 째깍째깍 가고 있다. 폭탄이 터지면 수만 명이 죽게 되지만, 인권을 내세워 당선된 신정부에게 고문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수만 명을 살리기 위해 테러범에 고문은 가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할 지 모른다. 그런데 이 테러범이 정말 독종이어서, 고문을 당해도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해 보자. 이제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다. 테러범의 어린 딸을 붙잡아 그의 앞에서 고문한다면 그가 입을 열 확률이 높다. 이 방법 역시 수만 명을 살리기 위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도덕적 딜레마를 조금 변형해 보았는데, 좀 극단적이긴 해도 이런 사고 실험은 유용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히 도덕과 정의를 '자신에겐 있으나 이 사회에는 아직 없는 것', 즉 자신이 미래에 꽃피워야할 무엇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적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 속에 늘 존재하고 있어, 우리가 슈퍼맨처럼 "내가 곧 정의"라고만 부르짖기만 하다가는 그 딜레마에 발이 걸려 넘어질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저자 마이클 샌델 역시 우리에게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대해 온갖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그는 도덕과 정의라는 주제를 매우 현실적이고 뜨거운 쟁점들 속에 풀어놓는다. 금융위기, 병역문제, 안락사, 동성결혼 등 구체적 상황에서 그는 우리의 판단을 요구하고, 그 판단이 어떤 원칙에 의한 것인지 돌이켜보라고 한다. 그야말로 '소크라테스식 수업'이다. 묻고 반박하고 재반박하고, 앉을 새가 없다.

도대체 정의가 뭘까? 우리는 대개 세 가지 방식으로 정의를 말한다. 우리는 행복의 양이 커지는 것을 정의롭다고 한다. 또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이 정의라고도 한다.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욕심쟁이는 벌을 받는 것, 즉 어떤 미덕이 실현되는 것을 정의라고도 한다. 우리는 이 모두가 잘 조화되면 그게 정의라고 쉽게 생각한다(야,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세 가지 방식이 서로 충돌할 거라고 한다. (뭣이?) 다수의 행복을 강조하다보면 그로 인해 권리를 빼앗기는 소수가 생길 수 있다. 수만 명이 살기 위해 테러범의 딸을 고문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좀 더 일상적인 예로, 회사가 살기 위해 소수의 비정규직은 해고당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한편 개인의 권리를 절대화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개인의 양심이나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한다면, 자신의 재능과 행운에 따라 누구는 타워팰리스에 살고 누구는 반지하방에 사는 일은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에 부당함을 느낀다면, 개인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 도덕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행복 극대화나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정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정의를 '미덕의 추구'로 바라보는 입장을 몹시 경계한다. 어떤 상위의 도덕이 존재하면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거라고 생각해서다. 또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그만이지 굳이 그 행복의 도덕적 질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정의에 대한 논란에서 공동체의 목적이 무엇인가, 가치 있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비켜갈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정치 세력들은 빵과 권리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공동체의 도덕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도덕은 상대적이니까, 개인의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등으로 표현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면 '미덕'과 '공동선'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이 옳다면, 정치세력들, 특히 진보 정치세력은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정의가 단순히 더 많은 빵이나 권리가 아니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것이라면 말이다. 아마 무엇이 더 '좋은 삶'인지부터 논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론 없는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영성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잘 읽으려면 스스로 열 개 이상 질문을 찾아내야 한다. 정의가 무엇이든 간에, 질문하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힘이 그 바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interojh 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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