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의혹 검사' 봐주고 판사·경찰 잡나?
민경식 특검팀, '용두사미' 수사 결과 발표... "파견검사들 때문에 한계" 지적도
▲ 검사 등의 불법자금 및 향응 수수 사건 진상규명 특검 현판식이 서울 서초동의 한 사무실에서 열린 8월 5일, 민경식 특별검사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55일 동안 조사대상자만 200여 명에 이르는 수사를 벌였음에도 그 결과는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비슷한 혐의 받던 박기준·황희철 '무혐의', 한승철 '기소'
민경식 특검팀은 28일 오전 10시 30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검사 스폰서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받은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과 황희철 현 법무부 차관에게는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박기준 전 지검장은 특검에서도 '사건의 핵심인물'이자 '진원지'라고 평가했던 인물이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진주지청과 울산지검, 부산지검에 근무하면서 정씨로부터 향응과 촌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또한 정씨의 부탁을 받고 그와 관련된 사건의 수사속도를 늦추라고 했으며('직권남용'), 정씨로부터 4통의 진정서를 받은 후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직무유기')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특검팀은 "정씨로부터 20여 년 또는 10~7년 전에 향응을 수수했다는 점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음이 명백해 모두 공소권 없음 처분을 했고, 2009년 6월 저녁식사를 함께 한 것은 직무와 관련한 접대 혹은 뇌물수수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씨와 관련된 수사를 맡고 있던 검사의 수사권을 방해하지 않았고, 정씨로부터 받은 진정서도 은닉하지 않고 차장검사에게 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이 무혐의 처분의 이유다. 민경식 특검은 수사결과 발표 현장에서 "박 전 지검장이 부하를 잘 둔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처분은 황희철 차관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황 차관도 박 전 지검장과 비슷하게 정씨로부터 향응과 촌지를 받았으며, 정씨로부터 받은 진정서를 묵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는 공소시효가 지났나는 이유로, 후자는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수사과정에서 '쟁점'이 됐던 진정서 묵살 의혹와 관련, 특검팀은 "정씨가 황 차관에게 팩스로 보낸 것이 진정서인지 사신(私信)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황 차관이 진정서를 받고도 묵살할 만한 특별한 동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황 차관은 특검팀의 조사에서 "정씨가 부산지검에서 억울하게 조사를 받고 있다면서 자기의 사건이 선처되도록 도와 달라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부산지검에 내용을 알아보면 차관이 사건에 개입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어서 무시했다"고 진술했다.
특검팀은 이러한 황 차관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도 '혐의없다'고 판단했다. 황 차관을 제3의 장소에서 비밀리에 조사한 것에서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봐주기 수사'가 '무혐의'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반면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던 한승철 전 대검 감찰부장에게는 뇌물수수와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 처분을 내렸다.
특검팀은 한 전 부장이 2009년 3월 부산의 한 식당과 룸살롱에서 각각 식사와 술을 대접받고 현금 100만 원을 받는 등 총 240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수사발표문에 적시했다. 한 전 부장은 향응과 뇌물의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특검팀은 기존 판례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대가성이 없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지검장이나 황 차관의 경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또한 특검팀은 "한 전 부장이 뇌물수수 혐의를 비롯한 범죄 및 비위 혐의에 대한 조사가 개시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검찰청 소속 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에 관련된 사건의 조사, 처리 업무를 의식적으로 방기했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인정했다.
한 전 부장이 정씨로부터 향응과 현금을 받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진정서와 고소장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부산지검에서 처리하도록 지시했다는 것. 결국 진정서와 고소장은 '검사 스폰서 사건'의 진원지인 부산지검에서 각각 '공람종결'과 '각하처분'됐다.
조사대상 검사장 5명 중 4명 '불기소'... 판사·경찰은 왜?
▲ 'PD수첩'이 4월 20일 방영한 '검사와 스폰서' ⓒ MBC
또한 특검팀은 현직 검사장 2명에게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를 들어 사건을 '내사종결'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민정비서관을 지낸 조아무개 검사장의 경우 정씨가 특검팀에 그의 혐의내용을 자세하게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조 검사장은 특검팀으로부터 서면조사만 받는 '특혜'를 누렸다.
정씨는 지난 3월과 4월 부산 현지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조 검사장은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M검사 소개로 나왔다"며 "잘 모르는 검사였지만 서울에서 M검사를 만날 때마다 함께 나와서 내가 30만 원씩 주고, 성접대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검팀은 "믿을 만한 증거가 전혀 없고 제보자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음이 명백하기 때문에 서면조사만 하고 내사종결처분했다"고 밝혀 '수사력 부재'를 스스로 드러냈다.
특검팀의 조사대상에 오른 검사장급 검사는 모두 5명이었지만 한승철 전 부장을 제외한 4명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반면 일부 현직 부장검사와 평검사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정씨로부터 '64만원어치'의 식사와 술을 접대받은 점이 인정돼 기소된 정아무개 검사가 대표적이다. '상후하박'(上厚下薄)의 수사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날 발표한 특검팀의 수사결과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전·현직 판사 2명과 전·현직 경찰관 4명을 부산지검으로 인계한 점이다.
특검팀은 정씨의 관련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씨가 다수의 전·현직 경찰관들과 돈거래를 한 흔적을 발견했고, 정씨의 수첩에 적힌 전·현직 판사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본인들이 부인하고 있고 혐의점도 찾지 못했는데도 특검팀은 전·현직 판사 2명과 전·현직 경찰관 4명을 '검사 스폰서'의 진원지인 부산지검으로 넘겼다. 이는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이 특검수사 중에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흘려 '물타기'를 시도했다는 주장도 있다.
민경식 특검팀의 한계는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데서 비롯됐다. 검사를 수사대상으로 하는 사건에 현직 검사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은 조직적으로 진상을 왜곡하거나 외부로 정보를 유출하는 등 '이적행위'를 벌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기준 전 지검장을 뒷문으로 들어오게 해 공개소환 원칙을 무너뜨린 것도 파견검사였다. 황희철 차관을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고, 조아무개 검사장은 대면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도 이들 파견검사들의 힘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민경식 특검은 "그것은 과장되거나 잘못된 생각"이라며 "의사결정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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