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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학생들 신념과 사상, 12년간 '감시'하겠다?

교과부 독서교육시스템, 독서기록 '집적' 논란... "사생활 침해 이어 사상검열"

등록|2010.09.30 21:37 수정|2010.10.01 19:33
[2신 : 10월 1일 오후 5시 20분]

정부가 750만 명 머릿속 누적 검열 우려

개인의 '평생 독후활동을 책임지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교과부가 올해 말까지 완료 예정인 독서교육지원시스템(독서교육시스템)에 대해 '사생활 침해'를 넘어 '사상 검열' 장치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 독서교육시스템 연수자료. ⓒ 화면캡처


"빅브라더 위한 위험한 발상" 30여 독서단체 '반대 운동'

이 시스템은 전국 750만 명의 초중고생이 12년간 읽은 책과 독후감을 누적 관리하게 됨에 따라 '개인의 사상, 종교 등을 유추할 수 있는 은밀한 사생활 정보'도 집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등 30여 개 단체가 이 시스템 반대 운동에 직접 나설 것으로 보여 파문이 예상된다.

<오마이뉴스>가 1일 입수한 41페이지 분량의 '독서교육시스템 파워포인트 연수자료'를 보면 교과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학교 단위의 독서교육에서 개인의 평생 독후활동으로 중심이동"을 하는 것을 추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교과부는 최근 해킹 사건이 터진 DLS(전자도서관시스템) 서버를 활용해 15개 시도교육청(광주교육청 제외)별로 독서교육시스템을 운영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전국 학생들에게 자신의 독서 기록을 일제히 인터넷 시스템에 올리도록 한 뒤 국제중, 특목고와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 자료 등으로 활용토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독서교육시스템 연수자료를 보면 고등학생의 경우 대입전형 독서포트폴리오를 작성할 수 있는 항목을 따로 두고 있다. 또한 이 자료의 신뢰성을 위해 학생의 독후감 내용 등 독후활동 통계를 살펴보기 위한 항목도 들어 있다.

▲ 독서교육시스템 연수자료. ⓒ 화면캡처


생활기록부에 적도록 한 독서기록, 왜 또 교과부가...

교과부는 설동근 현 차관이 교육감이던 2004년 부산시교육청에서 처음 실시한 이 시스템을 지난 5월부터 시범 실시를 거쳐 올해 말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독서관련 단체들은 "개인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위험한 시스템을 만들면서 독서단체와 단 한차례의 공식 협의도 없이 강행하고 있다"며 반대운동에 들어갈 태세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은 "개인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를 기록하는 독후활동은 일기와 같이 개인의 사상과 신념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이라면서 "국가가 수백만 전국 학생의 12년간 독후활동을 통째로 기록 관리하고 꼬리표를 붙이겠다는 것은 빅브라더(정보 통제로 유지되는 감시권력) 부활을 꿈꾸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덕주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부대표도 "중고교는 이미 생활기록부에 '독서생활기록'란을 두어 기록하게 하고 있는데도 교과부가 학생 독서 기록을 중복해서 집적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교과부 중견관리는 "학생들의 독서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참고하고 체계적인 독서교육을 하기 위해 포털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라면서 "계속 제기되는 (독서 기록 집적 등)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이 모여 검토를 신중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정보 노출' 보도 뒤, 시스템 사이트 잠정 폐쇄

한편, 교과부는 지난 5월부터 시범 개통한 독서교육시스템 사이트(www.reading.go.kr)를 1일 오후부터 잠정폐쇄했다. 하루 전인 9월 30일 저녁 <오마이뉴스>가 "교과부, 학생 사상 정보도 3만건 무방비 노출"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시범 실시 중인 사이트에서 2만9491개의 학생 독서 기록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보도한 뒤 벌어진 일이다.

▲ 독서교육시스템이 1일 오후 잠정 폐쇄됐다. ⓒ 화면캡처


[1신 : 9월 30일 오후 9시 40분]

교과부, 학생 사상 정보도 3만 건 무방비 노출

▲ 교과부가 최근 시범 개통한 독서교육지원시스템. 앞으로 750만 초중고 학생들에게 독서기록을 올리도록 할 예정이다. 대학 입학사정관제 등의 자료로 쓰기 위해서다. ⓒ 윤근혁


30일, ○○여고 1학년 6반 30번 임○○ 학생은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다음처럼 현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2010년 경제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소외되고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난장이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의 희망을 지켜주는 것이 현 정부가 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하루 전인 29일에는 ○○고 2학년 5반 1번 강○○ 학생도 유시민씨가 쓴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이란 책을 읽고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그딴 비리사건 하나로 죽음을 선택한 바보. 그는 그 비리사건 외에도 이명박 현 정부에게 많은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사상·종교 담은 독후감 실명 기록, 2만9000여 개 노출

사람의 사상, 종교 성향과 같은 은밀한 정보를 고스란히 내보이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독서 내용과 독후감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은밀한 정보를 담은 독서 기록 수만 건이 교과부가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30일 밝혀졌다. 이 게시글에는 글을 쓴 학생의 이름과 학년, 반, 번호 등 학생 개인정보도 함께 적혀 있어 사설업체의 악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 ⓒ 오마이뉴스 그래픽

이 같은 사실은 서울경찰청이 교과부가 관리하는 전자도서관시스템(DLS) 서버가 해킹당해 학생 636만 명의 개인정보가 빼돌려졌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추가로 확인된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사이트는 교과부가 올해 5월쯤부터 시범 개통한 독서교육지원시스템(아래 독서시스템). 15개 시도교육청(광주교육청 불참)별 사이트 구축이 완료되면 내년부터 전국 1만여 개 초중고 학생 750만명에게 독서기록을 12년 동안 누적 기록토록 할 예정인 이 시스템은 해킹 사건이 터진 DLS와 연동되어 있다. 학교별 독서지도의 효율성과 입학사정관제에 활용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게 교과부의 설명이다.

독서시스템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시범 실시 중인데도 30일 오후 6시 현재 전국 학생이 올려놓은 2만9491개의 독서 기록을 특별한 로그인 과정 없이도 볼 수 있다. 이 기록엔 개인정보인 실명과 학년, 반, 번호는 물론 개인의 사상과 종교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독후감 내용이 둥둥 떠 있다.

DLS 해킹 혐의자들이 빼낸 정보가 학교와 학년, 반, 번호 수준인 점에 비춰보면 교과부 스스로 비슷한 개인정보를 특별한 안전장치 없이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 독서시스템 사이트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나 학생의 반, 번호와 독후감 내용이 적힌 학생 정보를 볼 수 있다. ⓒ 윤근혁


"학생 사상 정보 노출, 무척 위험" 반대 운동

이덕주 전국도서관담당교사모임 부대표는 "DLS 사태는 외부인들이 학생 정보를 빼돌린 것인데 이번에는 교과부가 스스로 학생신상정보를 노출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독서기록은 사람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인데 전국 학생들의 독서기록을 12년간 모아두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학교도서관과 독서교육 관련 단체들은 이르면 10월 1일 독서시스템이 '한 인간의 사상과 이념을 검증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는 등 반대운동에 뛰어들기로 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학생의 반, 번호 노출에 대해 관련 부서와 논의하겠다"면서도 "개인정보 노출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교과부 중견관리는 "학생 스스로 블로그나 일반 게시판처럼 개인정보를 적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면서 "학생들이 개인정보에 대한 개념이 없겠지만 학생들의 자발적인 입력에 의한 것이어서 (독서기록과 학년, 반, 번호 정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도 "15개 교육청별로 곧 분산시스템이 구축되면 학생이 올려놓은 글은 재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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