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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심은 배추 150포기, 쟤들한테 주고말지

[새터 찾아 삼만리 27] 배춧값 폭등에 씻나락 까먹는 소리만, 벌레만도 못한 세금 귀신들

등록|2010.10.02 15:51 수정|2010.10.02 15:51
배추가 금값이라고 합니다. 그렇잖아도 '4대강 죽이기'로 나라 살림 거덜내고 있는 것도 한심헌디, 배춧값이 비싸니 대신 양배추를 먹자고 허질 않나, 배추 농사 짓는 농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중국산 배추로 때우려 하질 않나.

이처럼 나랏님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배추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사실 시기가 늦었습니다. 전남 고흥으로 이사와 처음으로 심는 배추. 중부지방에 비해 기온이 높은 아랫녘에서는 모종 옮겨 심는 시기를 늦춰도 된다 하여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겨우 150포기를 심었습니다.

"김장도 못 담그는 걸, 왜 자꾸 심어"

▲ 5대째 씨를 받아 심은 쭉정이 배추가 풀과 벌레들과 생존 경쟁을 벌여가며 잘 자라고 있다. ⓒ 송성영


우리 밭에는 따로 갈아 놓은 배추 밭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 우리나라 4대 종묘상을 먹어치운 다국적기업에서 받은 씨를 뿌린 밭입니다. 벌써 5대째 씨를 뿌리고 다시 씨를 받아 배추를 심고 있습니다. 속이 실하진 않지만, 아직까지 풀과 벌레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가며 그럭저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재배를 통해 확인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이 종묘상에서 나온 배추 씨앗은 다음 대에 씨를 받아 심으면 쭉정이로 자랍니다. 기형 배추가 나옵니다. 참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토록 한해살이 씨앗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생명을 죄 뒤틀어 놓는 그 기술로 생명을 살리는 데 심혈을 기우였다면 세상은 벌써 달라졌을 것입니다.

여하튼 저는 그 잔인무도한 다국적 기업에서 내놓은 배추 씨를 받아 매년 500포기 가까이 심어 왔습니다. 결과는 백전백패. 속 알갱이가 꽉 들어찬 통통한 배추를 건지기가 쉽지 않아 매년 김장 김치 담그는 데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이런 저를 아내는 늘 못 마땅해 했습니다.

"그걸 왜 자꾸 심어? 김장도 못 담는 걸."
"기달려 보라구, 언젠가는 좋은 놈 나올껴."

김장 김치도 담그지 못하는 배추 밭에 농약은 물론이고 화학비료조차 치지 않으며 온갖 정성 다 들여도 결국엔 농약에 절은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해왔으니, 아내의 불만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결국 김장용 배추 모종 수소문에 나서다

하여 작년부터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종묘상에서 판매하는 배추씨로 김장 김치용 모종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따로 모종을 키워 속 알갱이 찬 김장을 담그려 했는데 올해는 새 터 정착에 정신을 빼앗기고 거기다가 작은 도서관을 꾸미기 위해 장판이며 도배며 주변 정리를 하다 보니 그만 시기를 놓쳐 버렸던 것입니다.

없는 살림에 비싼 배추를 사서 김장을 담글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시기가 늦었어도 김장 배추는 심어야 했습니다. 집에서 늘 세끼 밥을 챙겨 먹고 어쩌다가 두서너 달에 한번 꼴로 외식을 하는 주제이니, 김치 없이 어떻게 겨울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어렸을 때 하루 두세끼 겨우 먹고 살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도 김장 김치를 없이 겨울을 보낸 적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오일 장터를 기웃거려 가며 읍내에 나가 종묘상까지 들쑤시고 다녔는데도 배추 모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때가 늦은 것도 늦은 것이지만 배추 값 폭등으로 장에 모종이 나오자마자 금세 동이 났던 것 같습니다.

촘촘하게 뿌려 놓은 씨알머리 없는 배추라도 한 포기 한 포기 옮겨 심어 볼까 고민하던 차에 구원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 뒤편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어촌 계장 부부가 때마침 늦은 배추 모종을 옮겨 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림짐작으로 천 포기가 넘어 보였습니다.

"어촌 계장님, 거기시, 혹시 배추 모종 남게 되면 좀 파실 수 없을까요이."
"아적 못 심으셨어요?"
"심긴 했는디, 그게 좀 속 알갱이가 차지 않는 배추라서…."
"다 심어 놓고 남게 되면 좀 드릴 게요." 
"아 당연하지요. 다 심고 남으시면 그래야쥬. 아이구 고맙습니다."

▲ 뒤늦은 배추 심기에 모종이 없어 한참을 헤매고 다녔다. ⓒ 송성영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도화면 오일장에 가 보았지만 배추 모종은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전날부터 시작한 씨 마늘 두 접 정도를 오전 내내 밭에 심어 놓고 슬그머니 어촌 계장님네 밭으로 가 보았습니다. 배추 밭 가장자리에 마저 심지 못한 모종이 수백 포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적 다 못 심으셨네요."
"할 일이 많다보니께, 다 못 심을 것 같네요. 모종 필요하시다고 했죠이. 가져가셔요."
"아이구, 고맙습니다."

벼 수확해야 하지, 밭 갈아 씨 마늘 넣어야지 요즘 일 년 중에 일손이 가장 바쁜 시기 입니다. 그렇게 50포기가 심겨진 모종판 세 개를 얻어 모종 값을 건네주려는데 한사코 거부합니다.

"아, 됐습니다, 그런 거 가지고 뭘."
"그러면 제가 죄송해서…."
"괜찮습니다. 그냥 갖다 심으시고 김장해서 맛있게 드세요 이."
"아, 이러면 되겠네요. 제가 추석 때 공주에 사는 사촌 동생네 집에서 정안 밤을 가져 왔는디, 그 걸로 보답하면 되겠네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 저희들도 좋지요이."

유기농 밤을 건넸더니 어촌계장님 부부가 아주 좋아라 합니다. 아랫녘에는 밤이 귀한 편이라고 합니다. 나 역시 고마워하는 그 마음자리가 너무나 고마워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배추 모종을 옮겨 심은 자리는 밭두둑에 수북한 풀을 뽑아 눕혀 놓은, 지난 초여름 감자를 캔 자리였습니다. 거기에 온 몸을 농기계 삼아 벼를 비롯한 온갖 작물들을 유기농으로 재배 하고 있는 마복산 김동관 성님에게서 얻은 쌀겨와 인근 양계장에서 한 자루에 2천 원짜리 하는 계분을 구입해 찹쌀떡에 콩 고물 버무리듯 흙에 잘 버무려 놓았습니다.     

해떨어지기를 기다려 모종을 옮겨 심는데 동네에 사는 낯선 분이 찾아와 이런 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가 밭 일이 한참 늦어졌습니다. 어둡기 전에 다 심어야 하는데 혼자서 일손이 부족했습니다. 아내는 방과 후 그림 지도를 나섰고,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벌레 한티 세금 낸다고 생각 하믄 되잖어"

▲ 우리집 작은 아이 송인상과 함께 150포기의 배추모종을 옮겨 심었다. ⓒ 송성영


혼자서 자갈돌을 골라내가며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이 저만치에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인상아, 너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 본 적 있냐?"
"몰라." 

모종판에서 배추 모종의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일을 거들어 주던 인상이 녀석이 늘 그래왔듯이 '몰라'로 간단명료하게 대답합니다. 

"이거 말여, 아빠가 손으로 풀 뽑아서 눕혀 놓고, 또 이것저것 거름을 섞어 떡 주무르듯이 하나하나 정성껏 심어 놓으면 벌레들이 죄 갈아먹는디, 왜 약도 안 치고 자꾸 심는지 모르겠다."
"벌레 한티 세금 낸다고 생각 하믄 되잖어…."

"뭐? 하하하! 그러네, 우리가 땅을 맘대로 갈아 먹고 있으니께, 땅 한티 뭔가 세금을 내야 되겠지이. 그람 땅 대신 벌레가 세금 받는 거네. 그런데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둬 간다니께.  어떤 때는 수십 포기를 벌레 한티 줘야 혀. 너무 하지 않냐?"
"그냥 봉사 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어."

"봉사? 그려, 그려. 니 말이 맞다 잉. 니 말이 맞어! 우리가 먹고 살겠다고 벌레 터전을 빼앗고 수없이 죽이고 있으니께. 벌레 한티 그만한 대가를 내줘야지. 벌레에게 봉사하라구? 니 말처럼 생각하니께 뱃속이 편하다."

어차피 농약을 치지 않고 온갖 벌레들과 더불어 자연 농으로 농사짓고자 시작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배추 밭의 그 많은 벌레들을 일일이 잡아 다 죽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배추 100포기 정도면 우리 네 식구가 충분히 겨울을 날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5대째 쭉정이 배추들이 100포기 이상 자라고 있습니다. 무청보다 부드럽고 배추 잎보다 질긴 그 씨알머리 없는 배추들은 잘 말렸다가 씨래기 국을 끓여 먹으면 됩니다. 혹시 압니까? 올해는 씨알머리가 생겨 통통하게 속 알갱이가 차오르게 될지. 

인상이 녀석은 늘 예상치 못한 말로 내게 가르침을 줍니다. 그동안 풀과 벌레와 함께 농사를 지어 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생각일 따름이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작물의 일부를 벌레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뱀보다 무서운 건 사람

하지만 벌레는 내게서 뭔가를 빼앗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충이든 익충이든 밭작물의 벌레들은 그냥 생긴 그대로 생태적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벌레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이 터전에서 대대로 살아왔습니다. 내가 오히려 벌레의 터전을 파헤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상이 녀석 말대로 그들에게 세금을 내고 봉사 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동의 대가를 빼앗는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도록 씨앗을 씨알머리 없이 뒤틀어 놓는 자본가들입니다. 씨알머리 없는 씨앗을 만들어 자본을 키워 가며 또 다른 생명을 죽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게 모르게 그들이 조작한 종자를 구입해 그들의 잔혹함을 살찌우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금을 빼앗아 가는 종자들 역시 따로 있습니다. 배춧값 폭등으로 서민들은 울상인데 귓구멍 틀어막고 날씨 탓만 하고 있는 저들입니다. 4대강 삽질로 생명을 죽이는 작업에 세금을 처박아 놓고 있습니다. 그런 저들에게도 꼬박 꼬박 세금을 헌납하는데 배추 벌레들에게 내주는 세금이 뭐가 그리 아깝겠습니까?

"아참 인상아. 얼마 전에 아빠가 밭에서 풀을 뽑는데 뱀이 말여, 이따 만하게 긴 녀석이. 팔등 위로 쓰윽 지나갔다."
"뱀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녀석이 아빠보다 더 놀래 가지구 저만치로 잽싸게 도망쳤어. 사람이 더 무섭거든, 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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