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아니고 '으름'?... 그게 뭔데
[여행] 충북 진천 보탑사 3층 목탑
▲ 3층 목탑 앞에 줄을 맞춰 배추가 심어져 있다. ⓒ 조정숙
충북 진천군 진천읍 보련산 자락 연꽃골에 우뚝 서 있는 보탑사는 고즈넉하면서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연꽃골은 진천읍에서 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다. 보탑사 가는 길에는 김유신 장군 생가 터가 있고 보탑사에 못 미쳐서는 연곡저수지가 있어 풍광이 빼어나다. 보탑사 입구에 도착하자 커다란 정자나무 그늘 아래 올망졸망 보따리를 풀어 놓은 할머니가 정겹게 부른다.
▲ 보탑사 입구에서 으름과 풋고추를 팔고 있는 동네 할머니 ⓒ 조정숙
▲ 으름 속살이다. 바나나처럼 생겼다. ⓒ 조정숙
▲ 보탑사를 찾은 어르신이 으름을 드시고 있다. 달톰하면서 맛있다며 한개를 건넨다. ⓒ 조정숙
"이봐요, 색시 고추 사가셔, 볶아먹기도 하고 쌀가루 묻혀 쪄서 먹어도 맛있어."
"으름이여, 할아버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따온겨, 엄청시리 달고 맛있어 한 번 잡숴봐."
"얼만데요?"
"4송이에 천 원만 줘."
으름은 가을 산의 바나나라고 한다. 모양도 바나나와 비슷하게 생겼다. 길쭉한 열매가 2~4개씩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맛이 궁금해 하얀 속살을 입 속에 넣고 맛을 보았다. 그런데 달콤하기는커녕 씁쓸하고 입 안이 텁텁해 기분이 나쁠 정도다.
"할머니 달콤하다고요? 너무 쓰고 입 안이 텁텁하잖아요?"
"아이고, 아녀 씨는 씹으면 안되는디. 씨를 깨물어서 먹어버린겨? 씨는 그냥 삼키든지 뱉어야허는디. 우짠댜."
역시 충청도 아니랄까봐 느긋하게 말씀 하시는 할머니가 야속할 뿐이다. 성격 급한 내 잘못이다. 덕분에 사찰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내내 입안이 전쟁이었다. 커피를 마셔도 물을 마셔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불편했다.
▲ 법고각과 범종각이 나란히 마주보며 중생들을 맞이한다. 범종은 가장 극심한 고통인 지옥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까지 해탈케 하고자 하는 뜻을 담아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 친다. ⓒ 조정숙
▲ 프레임속에 프레임, 보탑사 3층목탑 ⓒ 조정숙
▲ 보탑사 담장사이 구절초에 나비와 벌이 앉아 꿀을 딴다. ⓒ 조정숙
▲ 구절초와 사찰의 기와 지붕이 이 가을 운치를 더한다. ⓒ 조정숙
보탑사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자 법고각과 범종각이 나란히 마주보며 중생들을 맞이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보탑사만큼 아름다운 사찰은 처음인 것 같다. 경내 곳곳에 다양한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꽃대궐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꽃 위에는 벌과 나비들 심지어는 파리들까지… 날 수 있는 곤충들은 죄다 꽃송이 위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총 높이가 42.7m인 보탑사의 3층 목탑은 떠받치고 있는 기둥만도 모두 29개에 이른다. 신라가 새로운 통일국가를 염원하며 황룡사 9층 탑을 세웠듯이, 남북통일은 물론 옛 고구려 땅까지도 통일하려는 간절함 염원을 담아 지은 탑이라고 한다. 이 탑의 특징은 3층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신라 황룡사의 9층탑 이후 처음으로 3층까지 오를 수 있게 지은 탑이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자 군데군데 줄을 맞춰 심어져 있는 배추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찰 내에 배추기 이렇게 많이 심어져 있다니... '배추가 금값'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아마도 예전에 꽃을 심었던 자리에 배추를 심어 놓은 것 같다. 왠지 꽃보다 배추가 더 정겨워 보이는 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채솟값 폭등 때문이었나 보다.
▲ 1층 법당 불상 앞에 수박이 놓여 있다. 초파일에 놓았다가 동짓날 먹는다. ⓒ 조정숙
보탑사 3층 목탑 1층 법당 부처 앞에 수박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왜일까, 궁금하여 10년째 사찰입구에서 불교용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보살에게 물어 보았다.
"팔월초파일날 기도를 한 뒤 수박을 쌓아두었다가 동짓날에 동지기도가 끝나면 팥죽과 함께 대중공양을 하죠. 과학적으로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참 신기한 일이에요. 상온에서 자연 그대로 보관하는데도 수박이 변질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게 말입니다. 수분이 어느 정도 증발해 약간 젤리처럼 느껴지며 당도도 훨씬 높아요. 수박을 쪼개어 보면 결이 갈라지기도 하고 가운데가 약간 비어있는 상태가 된 것도 있어요. 암튼 그 맛은 먹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궁금하시면 동짓날 한 번 오세요."
▲ 다람쥐가 마중나와 반갑게 맞이해 준다. ⓒ 조정숙
보탑사의 건축기법에 감탄할 뿐이다. 사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다람쥐도 마중 나와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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