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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고무신의 칸타타

등록|2010.10.07 11:57 수정|2010.10.07 11:58

▲ 포도나무 ⓒ 조상연


늦여름 포도나무 타고 올라간 그물에는 호박곶이가 널려 있고
고추잠자리는 빨랫줄 장대를 맴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재가
덥다며 책보를 마루에 벗어 던지더니 받아온 옥수수 빵을 손에
쥐어주고는 방앗간 앞 도랑으로 멱 감으러 가잔다.

발등에는 여름내 따가운 볕이 만들어준 고무신 자국이 선명하니
아재 손을 잡고 신작로 길 나서는데 그러잖아 바짝 마른 흙길에
아재의 깜장 고무신 끌 적마다 흙먼지 풀풀 일어난다. 아마도
가을걷이 끝나고 추석 때 얻어 신을 새 고무신 생각에 신작로
흙길 먼지 일으키며 질질 끌고 가는 아재다.

수초도 가득한 좁은 도랑에서 한참을 놀다 덜덜 떨며 나와 햇볕에
몸을 말리는데 아재 얼굴 노래지더니 도랑 속으로 다시 뛰어든다.
아재의 깜장 고무신 한 짝이 도랑물에 떠내려갔다.

음흉한 아재는 집에 돌아와 저녁도 안 먹고 자는 체를 한다.
그러나 잠시 후 할머니 손에는 낮에 잃어버리고 남은 나머지 한
짝의 깜장 고무신이 들려 있었고 그 고무신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아재의 뺨을 몇 번이고 오간다. 아재의 팔짝팔짝 뛰는 소리와 함께
고무신의 짝짝 경쾌한 소리가 잠든 조카의 귀에 꿈결처럼 들려온다.
다음날 저녁 댓돌 위에는 못 보던 깜장 고무신이 나란히 놓여있다.

호롱불 불빛 아래 한 짝의 깜장 고무신과 아재의 조그만 뺨이 빚어
내는 칸타타의 음률 속에 어제 온종일 신작로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닌 새 고무신을 향한 아재의 수고로움은 그렇게 해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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