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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가구 안 바꾼 강남 아줌마들, 왜 행복했나

[오마이뉴스-CJ도너스캠프 '나눔특강' ③] 김두식 경북대 교수

등록|2010.10.08 12:08 수정|2010.10.08 12:08
"나눔이란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지금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죠. 가장 손쉬운 나눔 두 가지는 이야기 나눔과 돈 나눔입니다. 나눌 준비를 하고 기다리면 나눔의 기회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때 작은 용기만 내면 누구나 나눔을 할 수 있어요."

가진 돈이 없어도 남과 뭔가를 나눌 수 있을까? <불편해도 괜찮아>의 저자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시한 나눔 소재는 '이야기'였다. 김 교수는 지난 9월 3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CJ인재원리더십센터에서 열린 특강에서 "이야기는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며 "때로는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한 편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커밍아웃 인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와 장애인·여성·청소년 등 사회 약자의 인권을 옹호하게 된 사연을 풀어놓으며 이제 '스펙'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와 CJ 도너스캠프는 지난 5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나눔의 사회적 의미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나눔특강'을 진행 중이다. 김 교수의 강의에 이어 올 11월에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네번째 특강이 열릴 예정이다.

"이야기가 더 쉬운 나눔 만든다"

▲ 지난 9월 30일 저녁 서울 충무로 CJ인재원에서 열린 CJ도너스캠프와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나눔특강'에서 <불편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커밍아웃 인생'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권우성

개가 사람을 물면 별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는 것이 인간 사회의 생리다. 성악가 뺨치는 노래 실력을 지닌 핸드폰 수리공 같은 의외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반응한다.

김 교수 역시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삶의 궤적을 가지고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지금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주류 기독교 내에서 이단으로 취급받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한다거나, 사법고시에 어렵게 합격해 검사가 됐는데 미국에서 유학중인 아내를 돕기 위해 검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2년을 일한 이력은 한국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의외의 '이야기'다.

김 교수는 자신이 장애인 특수교사를 하는 아내를 만나면서 어떻게 변화했고 그 후 자신이 인권도서를 쓰고 공개적으로 동성애자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커밍아웃'하기까지 어떤 만남들이 자신의 인생 방향을 틀어놓았는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만들어 청중들에게 선보였다.

김 교수는 "주변 사람들에게 빚진 것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은 헌신들은 늘 그 자체로 기쁨이었지만 때때로 생각지도 않은 보상이 주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업주부로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잡지에 보내면서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중매체에 기고하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김 교수가 느꼈던 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때로는 통계보다 훨씬 의미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자신이 한국의 사법시스템과 관련된 23명의 이야기를 듣고 분석한 <불멸의 신성가족>을 그 예로 소개했다. 이 책 속에는 사법연수원생들에게 중매를 서는 '마담뚜'나 로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한 여직원 등 사법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담뚜'가 이런 얘기를 해요. 사법 쪽 사람들은 (결혼 상대로) 일단 얼굴이 예뻐야 하고, 학벌은 어느 여대 이상, 집안은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그전까지는 눈에 띄지 않았던 흐름들이 들어오죠.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는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사형폐지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눈으로 따라간 사람들에게 사형제도가 문제 있는 제도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지요."

그렇다면 이야기와 기부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까? 김 교수는 "기부와 나눔을 막는 최대의 적은 '지름신'"이라며 "욕망을 조금씩만 줄이면 누구든지 나눔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욕망을 줄이는 것은 혼자 하기 어려운데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타인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조금 더 쉽게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잘사는 사람들은 과시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경쟁적으로 더 좋은 물건을 사들이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5년 동안 집과 가구를 바꾸지 않기로 약속한 어느 강남 아줌마들 얘기를 아는 분이 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분 말로는 이 아줌마들이 가구 바꾸는 걸로 경쟁 안 해도 되니까 5년 동안 너무 행복했대요. 저는 기부나 나눔도 같다고 봅니다. 함께 나누면서 서로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있으면 나눔이 좀 더 쉽지 않을까요?"

▲ 지난 9월 30일 저녁 서울 충무로 CJ인재원에서 열린 CJ도너스캠프와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나눔특강'에서 <불편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커밍아웃 인생'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권우성


"'스펙'보다 '이야기' 중요한 시대 올 것"

김 교수는 개인 '이야기' 자체의 가치도 강조했다. 가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야 타인과의 나눔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스펙'보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 하면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세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요. 2007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를 생각하면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세요. 별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가치판단을 떠나서 '이명박' 하면 떠오르는 '자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스펙'이 중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김 교수는 "인사 담당자가 입사지원서 한 부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이라며 "우리는 대학 신입생을 뽑을 때도, 회사 면접을 할 때도, 애인을 고를 때도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말했다. 좋은 '이야기'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누구나 노무현 같은 이야기를 가질 수는 없지만 우선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고, 그게 없다면 남의 이야기(책)라도 읽고서 이야기 나눔을 시작해야 한다"며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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