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도 안 달면서 '독도사랑' 말이 되나요?"
[인터뷰] 태극기 전도사 20년 김유평씨... 20년간 4만장 보급
지난 4월 독도함에서 평택 제2함대사령부로 옮겨진,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천안함 희생자들을 맞는 유가족들의 눈물은 안타까움을 넘어 비통함 그 자체였다. 사고 원인을 놓고 아직까지 논란이 일고 있지만 어쨌든 불행한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경기도 평택의 B아파트 입주자협의회. 이 비통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 아파트 주민들의 추모하는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태극기 보급을 하고 있다는 김유평(전남 광양)씨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바로 연락을 했다.
"혹시, 여기 평택에도 태극기를 무료로 보내줄 수 있나요?"
"같은 하늘 아래 사는 한 가족이 '가족의 상징'이 필요하다는데 안 될 것이 있겠어요?"
낯선 곳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도 김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곧바로 태극기 270매(80×50㎝)를 제작하여 아직 태극기가 없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이후 국경일이면 전 아파트 주민들이 추모의 마음까지 담아 태극기를 게양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태극기를 나눠주는 이유
"어둡고 암울했던 역사를 딛고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조상들의 얼과 혼이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펄럭이는 태극기에 그 얼과 혼이 분명히 살아 숨쉰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김씨가 태극기 보급에 나선 것은 1991년.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 곳이 너무 많은 것에 가슴이 아파 보급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태극기를 달지 않는 곳을 위주로 조금씩 보급하던 것이 1996년부터 사업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지난 1996년 3·1절을 앞두고 전남 광양시에 태극기 500매를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국경일이 되면 여수, 고흥 등 인근 지역은 물론 전국에 태극기를 보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재를 털어 보급한 태극기만 모두 4만 매가 넘는다.
김씨는 "1987년 여수해양경찰서장으로 공직생활을 마치고 보니, 어선에 태극기가 달려 있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태극기도 달지 않는 어선이 일본에게 독도 망언에 대해 뭐라고 반문하겠어요"라며 "어민들의 게양을 유도하기 위해 특히 어선과 해양경찰서에 태극기를 많이 보급하고 있지요"라고 소회를 밝힌다.
추자도, 백령도, 서해안 군부대, 학교, 교회, 아파트, 어선, 군함, 경비정……. 전국 어디든 그의 태극기가 걸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태극기는 우리의 얼굴일 뿐만 아니라 '자존심, 그이상의 가치'라고 말하는 김씨는 태극기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태극기는 우리의 얼굴, 그 이상의 가치"
"우리의 얼굴인 태극기는 어쩌면 초인적인 힘과 믿음을 주는 존재인지도 모르죠. 80년도 초반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전남영광 해상에서 항해중 기상악화로 전복된 선박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요.
폭풍우에 어선은 이미 전복이 되었지만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일단 출동을 했습니다. 악화된 기상과 열악한 구조장비에 수심까지 낮았습니다. 함정 접근이 정말 어려웠지요. 문득 함정의 태극기를 바라보니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솟더라고요. 결국, 구조작업 10시간 만에 생존자 2명을 구조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태극기의 보이지 않는 힘이 조난당한 지 50시간 만에 이미 포기했던 사람을 살려낸 것이지요. 특히나 구조된 선원 가운데 한 사람은 3대 독자에 마침 그날이 돌아가신 부친의 기일이었어요."
태극기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씨의 독도사랑도 남다르다.
"독도는 엄연한 한반도의 부속 도서입니다. 역사적으로 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명확한 대한민국의 영토이지요.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독도망언에 우리 국민은 감성보다도 냉철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정부가 노력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기상관측 시설과 해상교통 확대, 어업전진 기지화, 관광시설(헬기 착륙장등)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사수해야 합니다."
그는 또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겪은 쓰라린 통곡의 역사를 잊지 말고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집집마다 게양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전 국민이 태극기를 다는 그날, 독도사수는 물론 통일도 문제없다는 그의 힘 있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경기도 평택의 B아파트 입주자협의회. 이 비통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 아파트 주민들의 추모하는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태극기 보급을 하고 있다는 김유평(전남 광양)씨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바로 연락을 했다.
"혹시, 여기 평택에도 태극기를 무료로 보내줄 수 있나요?"
"같은 하늘 아래 사는 한 가족이 '가족의 상징'이 필요하다는데 안 될 것이 있겠어요?"
낯선 곳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도 김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곧바로 태극기 270매(80×50㎝)를 제작하여 아직 태극기가 없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이후 국경일이면 전 아파트 주민들이 추모의 마음까지 담아 태극기를 게양했음은 물론이다.
▲ 김유평씨가 무료로 보급하기 위한 태극기를 준비하고 있다. ⓒ 김유평
내가 태극기를 나눠주는 이유
"어둡고 암울했던 역사를 딛고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조상들의 얼과 혼이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펄럭이는 태극기에 그 얼과 혼이 분명히 살아 숨쉰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김씨가 태극기 보급에 나선 것은 1991년.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 곳이 너무 많은 것에 가슴이 아파 보급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태극기를 달지 않는 곳을 위주로 조금씩 보급하던 것이 1996년부터 사업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지난 1996년 3·1절을 앞두고 전남 광양시에 태극기 500매를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국경일이 되면 여수, 고흥 등 인근 지역은 물론 전국에 태극기를 보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재를 털어 보급한 태극기만 모두 4만 매가 넘는다.
김씨는 "1987년 여수해양경찰서장으로 공직생활을 마치고 보니, 어선에 태극기가 달려 있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태극기도 달지 않는 어선이 일본에게 독도 망언에 대해 뭐라고 반문하겠어요"라며 "어민들의 게양을 유도하기 위해 특히 어선과 해양경찰서에 태극기를 많이 보급하고 있지요"라고 소회를 밝힌다.
추자도, 백령도, 서해안 군부대, 학교, 교회, 아파트, 어선, 군함, 경비정……. 전국 어디든 그의 태극기가 걸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태극기는 우리의 얼굴일 뿐만 아니라 '자존심, 그이상의 가치'라고 말하는 김씨는 태극기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태극기는 우리의 얼굴, 그 이상의 가치"
▲ 전 국민이 태극기를 다는 마음이라면, 독도사수는 물론 통일도 문제없다는 김유평씨. ⓒ 김유평
"우리의 얼굴인 태극기는 어쩌면 초인적인 힘과 믿음을 주는 존재인지도 모르죠. 80년도 초반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전남영광 해상에서 항해중 기상악화로 전복된 선박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요.
폭풍우에 어선은 이미 전복이 되었지만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일단 출동을 했습니다. 악화된 기상과 열악한 구조장비에 수심까지 낮았습니다. 함정 접근이 정말 어려웠지요. 문득 함정의 태극기를 바라보니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솟더라고요. 결국, 구조작업 10시간 만에 생존자 2명을 구조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태극기의 보이지 않는 힘이 조난당한 지 50시간 만에 이미 포기했던 사람을 살려낸 것이지요. 특히나 구조된 선원 가운데 한 사람은 3대 독자에 마침 그날이 돌아가신 부친의 기일이었어요."
태극기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씨의 독도사랑도 남다르다.
"독도는 엄연한 한반도의 부속 도서입니다. 역사적으로 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명확한 대한민국의 영토이지요.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독도망언에 우리 국민은 감성보다도 냉철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정부가 노력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기상관측 시설과 해상교통 확대, 어업전진 기지화, 관광시설(헬기 착륙장등)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사수해야 합니다."
그는 또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겪은 쓰라린 통곡의 역사를 잊지 말고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집집마다 게양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전 국민이 태극기를 다는 그날, 독도사수는 물론 통일도 문제없다는 그의 힘 있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지난 74년 국립경찰 경정특채로 경찰에 투신한 김 씨는 여수해양경찰서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광양제철소 항만관련협력사인 HR-PORT를 운영하고 있다. 김 씨는 재직시절 인연으로 2000년부터는 한국해양소년단 광주, 전남 연맹장을 맡아 매년 5천여만원의 사비를 들여 미래 해양 꿈나무 양성에도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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