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놓고...신중한 손학규, 몰아붙이는 정동영
FTA 둘러싸고 노선 투쟁 활발... "당내 주도권 장악용" 시각도
▲ 민주당 손학규 신임 대표가 지난 4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남소연
출범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민주당 새 지도부 내 노선투쟁이 뜨겁다. 전선은 한미 FTA 재협상 여부를 놓고 갈려 있다. 손학규 대표의 '신중론'과 정동영 최고위원을 필두로 한 '강경론'이 가파른 대치 국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손 대표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로 체결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를 언급하면서 "FTA와 관련해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한-EU FTA는 물론 한미 FTA 재협상 문제를 논의할 당내 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손 대표는 "한-EU FTA는 과정 자체도 G20 정상회의를 겨냥해 무리하게 협상을 추진했고 가장 큰 쟁점이던 관세환급 제도에 대한 양보가 이루어졌다"며 "이는 한미 FTA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손 대표는 "미국에서 자동차, 쇠고기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사실상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재협상을 원하고 있다"며 "한-미, 한-EU FTA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를 통해 국익을 추구하고 피해 산업 보호 및 국민 행복 추구를 민주당의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가 재협상 착수에 대한 뚜렷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당내에서 터져나온 한미 FTA 재협상 요구에 대해 '불가'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던 것에 비하면 전향적인 태도 변화라는 평가다.
손학규 대표는 전당대회 전 열린 여러 차례 토론회를 통해 "한미 FTA에 포함된 독소 조항은 고쳐야 하지만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져오지도 못하면서 불리한 부분만 내줄 우려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랬던 그가 태도를 바꾼 것은 그만큼 나머지 최고위원들의 공세가 거셌다는 방증이다.
손 대표가 재협상 반대에서 신중 모드로 한발 물러섰음에도 그와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최고위원들은 압박 수위를 더 높였다.
압박 수위 더 높인 '넘버 2' 정동영
연일 손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넘버 2' 정동영 최고위원은 "어제(7일) 인사청문회에서 외교부 장관 내정자는 부인했지만 한미 FTA와 관련해 비밀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도 독소 조항이 있는데 미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쇠고기, 섬유까지 일방적으로 들어준다면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위 구성에 대해서도 "이미 야 4당과 시민사회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민주당을 바라보고 있다"며 "오늘이라도 특위가 구성돼 당의 명백하고 명료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인영 최고위원도 "관료들의 밀실협상으로 자칫하면 재협상 문제가 대미 퍼주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당내 특위가 구성돼 당론을 모으는 과정에서 투자자-국가 분쟁 제도(ISD) 등 대표적인 불공정 조항들이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 재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천정배 최고위원은 "개인적으로 참여정부 출범에 앞장 섰고 참여정부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한미 FTA는 '이명박식'으로 추진됐고 내용에 잘못이 있었다"며 "민주당이 한미 FTA 재협상을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최고위원은 "나라의 주권과 공공정책권을 반신불수로 만드는 투자자-국가 분쟁 제도(ISD)는 주고 받을 문제가 아니다"라며 "ISD가 한국을 위해 필요하다는 턱도 없는 생각을 한 넋 빠진 관료들이 처음부터 제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위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은 물론 통상절차법을 이번 회기 내에 통과시켜 밀실 협상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내 노선 싸움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이 같은 민주당 내부의 노선 경쟁에 대해서 당 안팎의 시각은 엇갈린다. 당의 정책 방향을 놓고 지도부 내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게 신선하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가 하면, 당내 주도권 장악용 아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한미 FTA에 대한 그동안의 논쟁을 바탕으로 특위 구성이라는 작은 결실을 맺지 않았느냐"며 "민주당이 당헌과 강령에 명시한 진보 노선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FTA 등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현안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486 그룹의 한 원외 인사는 "재협상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며 "정치·경제적 상황이 변했다고 하지만 한미간 협상 당시에도 명백히 드러났던 독소조항에 대해 의도적 침묵을 택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재협상을 외치는 것은 그 의도가 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재협상을 반대하는 손 대표를 몰아붙여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노선 싸움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든 간에 민주당의 변화와 지도부 개개인의 태도 변화의 진정성이 보이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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