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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니다,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떠났다

'행복전도사' 부부의 동반자살을 보고

등록|2010.10.09 16:35 수정|2010.10.09 16:35
'행복 전도사' 부부의 동반여행

▲ 최윤희씨 ⓒ 이데일리

지난 7일 오후 8시30분 경기 고양시 장항동의 한 모텔 방.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날 아침 7시15분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투숙했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 들여다보니 숨져 있었다는 종업원의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침대에 단정히 누운 채, 남자는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였다. '행복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최윤희(63)씨와 남편 김모(72)씨였다.

방 안에는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 한 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겉봉에는 "완전 건강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라고 적혀 있었다. 전날 오붓하니 여행 다녀오겠다기에 지방에 요양이라도 간 줄 알았던 자식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라고 하니…. (서울신문 2010. 10. 9.)

이 보도를 보고 내도록 마음이 심란했다. 이들 부부가 나와 동년배 세대이기도 하거니와 이런저런 까닭으로 자살이 늘어가는 이즈음 세상에 결코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새삼 불가에서 말한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깊이 되뇌게 한다.

사실 남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이런 말 저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그래도 전직 훈장으로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잘못된 행위들이 혹시나 우리 사회에 유행병처럼 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당사자들의 심적 육체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하고 동정이 가기도 하지만, 하늘이 준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버리는 일만은 결코 미화할 수 없는, 한참 잘못된 일이다.

육신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떠나는 글...
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된 거래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려 갔고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선고.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 이상 입원해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 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한국경제. 2010. 10. 9.)

그가 남긴 유서에 보면 자신의 신병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고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싶지 않다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말들을 쏟아놓았다. 차마 유서에도 밝힐 수 없는 간곡한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서 문맥으로 볼 때, 그는 예순을 넘긴 노인이나 여태 10대 문학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철부지에 불과했다. 또 저 세상에 가면 혼자 갈 것이지 착한 남편은 왜 동반하였는가.

인생에는 흐린 날이 더 많다

사실 인생을 살아보면, 일기가 화창한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듯이, 좋을 때보다 나쁠 때가 더 많다. 60을 넘게 살았다면 남은 날은 좋았던 때의 빚을 갚는 날이요, 다시 찾아올 좋은 그날을 묵묵히 기다리며 열심히 사는 게 바른 삶이다. 아마도 이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사는 삶의 자세일 것이다.

그에게는 '행복 전도사', '행복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런 그도 2년여의 투병생활 앞에서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최씨는 유서에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700가지 통증에 시달려 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했다"고 적었다. (서울신문 2010. 10. 9.)

더욱이 그가 '행복전도사'로 '행복'에 대한 수많은 말을 여러 독자나 시청자에게 쏟아놓았던 이라면 당신이 결코 해서는 안 될 반인륜적인, 뭇 생명체보다 못한 치졸한 행동을 했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의 바른 자세는 자기 글에 족쇄가 되어 평생을 산다. 

▲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그곳이 바로 '극락'이라고 쓴 유묵 ⓒ 안중근 기념관

행복은 풍요와 편암함 속에서만 누리는 게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영하의 감옥 안에서 일제의 개가 된 밀정들에게 침을 뱉으며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고통의 현실을 초극하는 이육사와 같은 독립지사가 있었는가 하면, 사형집행을 기다리면서도 감옥 안에서 그곳이 '극락'이라고 쓴 안중근 의사도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한 부부의 죽음 앞에 삼가 명복을 빌며, 또한 유족의 아픈 마음을 달래드린다.

자식을 둔 부모, 부모를 둔 자식이 차마 생각지 않는 것은 자식에게 부모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자식 사랑의 알파요, 부모 효도에 오메가다.

누구나 인생은 결코 쉽지 않다. 고관도, 재벌도, 거지도 마찬가지다. 행여 죽음을 생각하는 이에게, 고인에게 늦었지만 시 한 구절을 전해 드린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에서)

부부 동반 자살, 이건 아니다. 그들 스스로 행복하게 살았다면 이 세상에 잔뜩 빚만 지고 야반도주하는 못난 이들이다. 정말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우리 곁을 떠났다.

▲ 황량한 벌판의 억새와 갈대....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은지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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