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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무서운 비행기, 이륙할 때 눈 감았는데...

[중국 여행] 인천공항 -> 장춘 -> 연길

등록|2010.10.09 16:56 수정|2010.10.09 16:56

▲ 장춘공항. 한가로운 소도시에 온 느낌을 들게 한다 ⓒ 김현


비가 연일 내렸다. 비는 내리지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마음이 줄곧 심란했다. 해외나들이인 중국행은 설렘보다는 심란함이 더 나를 잡아맸다. 그래도 약속된 것이라 취소할 수도 없었다. 또 무엇보다도 우리의 옛 선조들이 고난의 삶을 일구었던 간도지역과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돌아본다는 생각이 날 강하게 이끌었다.

3박 4일 일정으로 떠난 여행은 비와 함께 시작됐다. 8월 17일 새벽 1시 30분. 비는 세차게 어둠을 때리고 있었다. 주섬주섬 여행 가방을 챙겼다. 아내는 새벽에 길을 떠나는 남편을 위해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겨주고 우산을 받쳐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열심히 기도했으니 괜찮을 거야."

나의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무척 컸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김포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난 고막이 깨지는 듯한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그 아픔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었다. 비행기에 내려서 2주일이 지났는데도 귀는 먹먹하고 두통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에 아내는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난 수없이 '괜찮을 거야'를 중얼거렸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혼자만 근심을 가득 가지고 공항으로 달리는 마음, 별로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세 시간 반을 달려 인천에 도착했다. 공항에 들어가지 전 아침으로 된장국을 시켜먹었다. 비는 그친 지 오래고 언제 비가 왔냐 싶게 태양빛이 따갑게 내리쬐었다. 인천에서 장춘으로 떠나는 비행기는 9시 30분발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 심호흡을 크게 했다. 함께 간 일행들은 이러저런 이야길 나누려 바쁜데 나 혼자만 속앓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 비행기 못 타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행기 이륙과 함께 난 눈을 감았다. 난 눈을 감은 채 내 신체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귀에도 머리에도 통증이란 놈이 찾아오지 않았다. 두 시간 가까이 날아가 장춘 공항에 도착할 때쯤에야 멍한 기운이 좀 들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때서야 새벽에 집을 떠날 때 괜찮을 거라는 아내의 말이 정겹고 고마운 소리로 들려왔다.

장춘 공항은 인천공항보단 작고 한적했다. 출국 소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첫 느낌은 우리의 작은 지방 도시의 느낌이랄까, 뭐 그런 거다. 며칠동안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길림성(지린성)의 성도인 장춘(창춘)에 머물면서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는데 그가 오기 전에 그곳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좀 색달랐다.

▲ 잉어요리가 유명하다던 교하의 음식점 ⓒ 김현


장춘에서 곧장 버스를 타고 연길로 향했다. 연변 자치주의 중심 도시인 연길까진 버스로 6시간 정도. 그 중간에 이름만 듣던 송화강이 있다고 하던데 뜨거운 태양빛을 막느라 차막(커튼)을 쳐놓고 졸은 탓으로 강은 보지도 못했다. 다만 조선족 가이드인 동훈 씨가 송화강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었다.

대신 송화강에서 잡아와 요리했다는 잉어의 맛을 봤다. 교화에서다. 교화는 장춘에서 2시간쯤 달리면 나오는 곳인데 가이드가 안내한 음식점이 송화강 잉어 요리도 유명하다고 한다. 잉어를 먹기 위해 부러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식당 안 벽면엔 송화강에서 그물을 쳐서 그물이 찢어지게 걸려드는 잉어들이 팔팔 뛰는 모습이 식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럼 고기 맛은? 밋밋하다고 할까. 얼큰하고 매콤한 맛에 길들여진 혀는 맛을 몰랐다. 그래도 다른 음식들에 비해 먹을 만했다. 혹시나 해서 강에서 직접 잡은 자연산이냐 물었더니 양식이란다.

▲ 교하에서 먹은 점심. 이곳 잉어요리가 유명하다 해서 여러 지역에서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 김현


▲ 잉어 ⓒ 김현


음식이야길 좀 더 해볼까 한다. 세계에서 요리하면 프랑스, 중국의 요리를 뽑는다. 중국의 요리 중심지에서 먹은 음식은 어떤지 모르지만 대체로 대부분의 음식이 짜다는 것이다. 느끼함과 향료맛, 그리고 짠맛이 4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맛본 중국의 음식 맛이다. 이건 일반 음식점뿐만 아니다. 호텔에서 나오는 음식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교하에서 점심을 먹고 연길 방향으로 가는 중에 보이는 건 끝없는 옥수수 밭이다. 교하에서가 아니라 장춘을 출발하면서부터 근 4시간, 5시간 동안 달리는 동안 차창 양쪽엔 끝없는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다. 언젠가 넓게 자리 잡은 보성 녹차 밭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이곳의 옥수수 밭에 비하면 보성 녹차 밭은 부처님의 손바닥 안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심고 거둬들인다고 한다.

▲ 장춘에서 연길까지 가는 동안 이런 옥수수 밭이 계속된다. 중간중간에 나락을 심은 모습이나 콩밭이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옥수수 밭이다 ⓒ 김현


"이게 다 강냉이 밭입니다. 중국에서 한족은 아이를 한 명만 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기계로 심었을까요? 손으로 심었을까요?"
"기계요."
"아닙니다. 다 사람의 힘으로 심었습니다. 아버지는 쟁기를 갈고 어머니는 고랑을 땁니다. 아들은 씨앗을 뿌립니다. 저거 거둘 때도 다 사람의 힘으로 합니다. 한 고랑 일구는데 하루가 걸립니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겁니다."

가이드인 동훈 씨의 말이다. 한 고랑 일구는데 하루 걸린다는 말이 얼핏 거짓말 같기도 하지만 옥수수 밭을 바라보면 거짓말 같지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밭고랑을 일구며 씨앗을 뿌리고 끝에 가다보면 해가 진다고 한다. 그만큼 옥수수 밭이 넓고 길게 펼쳐져 있다. 헌데 이 모든 옥수수가 식용이 아니라 사료용이라고 한다. 한번 상상해보라.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 양쪽으로 심어진 게 모두 옥수수라고. 물론 드문드문 메주콩과 벼들이 심어져 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옥수수밭을 일굴 때도 사람 손으로 하고, 거둬들일 때도 기계의 힘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모두 한다고 하는데 어찌 저걸 다하나 싶었다. 주변엔 인가도 드문드문 있을 뿐 마을을 찾기도 쉽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옥수수 대는 어찌될까. 대부분 겨울 땔감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연길 지역에 있는 아파트들 대부분 아직까진 석탄이나 옥수수 대를 겨울 난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연길 지역에서 나는 깨, 버섯, 장뇌삼 등 농산품과 벼농사가 유명하다고 하면서도 이곳 농민들도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1년 동안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한 해 동안의 수입이 우리 돈으로 400만 원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농사를 지으며 살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인 것 같아 괜히 농촌의 풍경을 차창 너머로 쳐다보게 한다.

▲ 길림성 부근의 지도 ⓒ 김현

덧붙이는 글 이 여행기는 지난 8월에 다녀오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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