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79회)

타짜 <1>

등록|2010.10.12 10:05 수정|2010.10.12 11:22
사내의 주검은 수표교 다리밑 물 웅덩이에서 발견됐다. 봄이 가는 시절이지만 살빛이 누렇고 희질 않았으며 눈을 감은 채 입을 다물었다. 양손 손가락은 약간 구부린 상태로 복부는 팽창하지 않았으나 몸엔 상처 흔적이 있었다.

중요한 건 뒷머리였다. 머리 뒷부분에 충격이 가해져 밑으로 던져졌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베개가 닿는 부분이 함몰된 상태였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정약용은 금줄을 쳐 잡인들이 가까이 오는 걸 막고 검안(檢案)에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사헌부 서리배들이 물에서 건져 올린 주검을 거적대기 위에 뉘고 있었다. 주검을 살피던 서과에게 정약용의 물음이 날아갔다.

"사내 몸에 결박당한 흔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상흔이 검붉거나 붉은 흔적은 없느냐?"
"그 점을 살피고 있사온데 이 사낸 무슨 일인지 죽은 후 결박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살았을 때가 아니다?"
"예에, 나으리. 결박당한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에 죈 듯한 흔적이 있습니다."

"이곳 수표교의 물은 한 달 전엔 개천이 넘칠 정도의 양이었으나 지금은 곳곳이 드러나고 물 웅덩이가 생겨났다. 사내 몸에 상흔이 여러 곳인 것은 이곳 돌무더기에 떨어졌을 때 얻은 상처일 것이다. 피가 흐르지 않은 건 이미 세상을 뜬 후 얻는 상흔인 탓이다. 서리들은 주검을 사헌부로 옮겨라! 죽음에 이른 여러 이유를 찾아볼 것이다."

수표교에서 아래쪽으로 치달아내리는 길을 정약용은 바라보았다. 길 건너 반대쪽에 말을 훈련시키는 사복시란 관청이 있는 곳이다.

근처에 말을 파는 가게가 있으므로 다리를 만들 무렵엔 마전교(馬廛橋)라 불렀으며 다리 아래엔 의미심장한 내용이 쓰인 수표(水標)가 있다.

'장통교 동쪽에 있으며, 다리 서쪽 중앙엔 석표를 세우고 그곳에 척촌을 새겨 무릇 빗물의 깊고 얕음을 알았다(在長通橋東橋西中央立石標刻尺寸之數 凡雨水以知深淺).'

선대왕 36년에 다리를 수리하며 물 높이를 4단계로 측정하는 경진지평(庚辰地平)이란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를 세우게 돼 이때부터 '수표교'라 불렀다.

선대왕은 준설공사를 마치고 다리 동쪽에 준천사(濬川司)란 관청을 두어 비가 오면 물의 수량이 불어나는 걸 한성판윤에게 보고하게 했는데 이것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한 조처였다.

정월 대보름날엔 다리밟기로 성황을 이루었고 수표교를 중심으로 청계천 위·아래에서 연을 날리던 명소였다.

준천사를 설치한 선대왕은 43년과 44년에도 다시 준설공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수표교에 '정해개조(丁亥改造)'란 글귀가 이를 알리고 있다.

수표교는 여섯 모로 된 큰 다리 기둥에 길게 모가 난 도리를 얹고 그 사이에 판석을 깔았으며, 아래 돌기둥은 2단으로 만들어 윗단의 돌은 물의 흐름과 마주했다. 이것은 물의 흐름을 덜 받도록 한 조처였다.

사헌부에 주검이 들어오자 사내의 신원이 밝혀졌다. 그는 삼칠(三七)이라 부르는 자로 나이는 서른셋이며 가끔 도박판에 얼굴을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형조에서 지난 해 이첩되어 온 서감찰(徐監察)이 눈썹에 패인 죽은 자의 상처를 보고 단숨에 알아보았다.

"이 자는 돌려대기의 명수인 '타짜'가 아닌가."
서과가 얼굴을 든 채 물었다.
"돌려대기라니오?"

"투전의 일종으로 40장이나 60장을 쓰는 데 돌려대기에 참가하는 다섯 명의 선수에게 각기 다섯 장씩 패를 나눠주면 판꾼들은 세 장으로 10이나 20, 30을 만들고, 나머지 두 장으로 승부를 결정짓네. 세 장을 모아 수를 짓지 못하면 당연히 실격이고 두 장의 수자로 겨루는데, 숫자가 같으면 '땡'이며 이중 가장 높은 건 '장땡'이고 그 다음 9땡, 8땡 순서로 이어지네."

서과가 도박에 관해 잘 아는 눈치가 아니므로 그의 설명이 가볍게 이어진다.
"땡이 아닌 경우엔 두 장을 합한 게 아홉이 되면 가보라 하고 점차 여덟, 일곱으로 내려가네."

서감찰은 힐끔 서과를 바라보며 흥미로운 말을 던졌다, 그것은 가보에 관한 것으로 1과 8은 알팔, 2와 7은 비칠이라 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삼칠이라는 사내는 어쩐 일인지 '가보잡기'라는 놀음이 강해 388이 합해진 '삼팔 돛대가보'로 판을 자주 휩쓸었다.

반드시 판마다 나오는 건 아니지만 1과 8이 합해서 가보가 되는 '섰다 벗었다 안경 가보'가 되는 것보다 '아이고 일장 통곡하는구나'의 1과 10이 자주 나와 돈을 잃은 사람이 많고 보니 '삼팔돛대가보'라 하면 삼칠이의 특허마크라 할 수 있었다. 단원의 스승 표암 강세황의 손자 강이천의 <한경사(漢京詞)>를 살펴보자.

길게 자른 종이 날아갈 듯 꽃 모양 그려
둘러친 장막 속에 밤도 낮도 모를레라
판 맛을 거듭보자 어느새 고수가 되어
한 마디 말도 없이 천금을 던지구나

도박이 돌려대기에 물들기 시작하면 점점 간뎅이가 부푸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삼칠이는 가보잡기 외에 '동당치기'에도 고수였다. 이것은 투전 40장을 여섯 장씩 나눠 같은 자를 두 장 또는 석 장씩 나누는 놀음이다. 서과가 묻는다.

"그런데 이름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삼칠(三七)이라니오."
"도박판에서 구른 놈이라고 들었는데 그 놈의 애빈 역관 장현(張炫)의 하인인데 주인을 따라 북경을 오가던 길에 투전(鬪牋)을 들여왔다 들었네. 성이 조씨여서 '새 대가리'라 불린다더구만."

그 말을 듣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장현이 투전을 들여온 것은 사실인데 이것이 어느 도박에 기인하는진 몰랐었다. 나중에 중국의 여러 도박을 뒤적거리자 눈이 띄게 드러난 건 '마조(馬弔)'였다. 이것은 원나라 시대 때 시작된 것으로 중국의 역대 인물을 120장으로 등급을 매긴 것으로 그걸 간소화시킨 게 투전이란 것이다.

투전은 80장이나 60장의 종이쪽지로 구성되는 데 손가락 굵기 의 폭에 길이는 15센티 정도다. 한 면엔 사람을 비롯해 물고기, 새, 꿩, 노루, 별, 토끼, 말 등이 그려져 있고 글을 흘려 끗수를 표시했다. 같은 그림이 열 개씩 모여 80장을 이루니 팔목(八目)이라 부른다.

어디 그뿐인가. 각각의 명칭도 다르다. 인장(人將)을 황, 어장(魚將)을 용, 조장(鳥將)을 봉, 치장(雉將)을 응, 성장(星將)을 극, 마장(馬將)을 승, 장장(獐將)을 호, 토장(兎將)을 취라 한다. 기름을 먹인 투전목에 사람, 물고기, 새, 꿩은 노(老)로 별, 말, 노루, 토끼는 소(少)로 사용된다. 잠시 사이를 두고 서감찰은 뒤를 잇는다.

"그 자가 부친의 성을 받았다면 조씨란 성을 쓰겠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걸 보면 자신이 도박판을 기웃거린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구만."

"그런데 왜 삼칠(三七)이란 이름을 썼을까요? 본 이름은 아닌 것 같은데···."
"아, 그건 이유가 있네."
"이유?"

"그 자가 형조(刑曹)의 정보통 노릇을 했네. 도박은 서민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양반이나 기생들도 기를 쓰고 달려들지. 그러다 보니 시답잖은 꼴들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거나 궁색한 여러 모양도 생기네. 내 생각엔, 그런 점을 알게 된 왈자패들이 손을 쓰지 않았나 생각해보네."

"제가 본 관점은 좀 다릅니다."
"달라?"

"그 사내는 백회의 뒤쪽 뇌후(腦後)와 목과 두발이 만나는 발제(髮際)를 타격 당했습니다. 이곳은 약간 패인 데다 은밀한 곳이므로 수표교 다리 위에서 주검이 발견된 아래쪽에 떨어뜨렸다 해도 상처가 쉬이 생길 곳은 아닙니다. 그런 점으로 보면 누군가가 얘기하는 중에 가까이에서 충격을 줘 목숨을 빼앗았을 것으로 봅니다."

"흐음."
"그 자가 삼칠이란 이름을 쓴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얼마 안 된 일이네. 오경한이 형조좌랑으로 도임한 후 형조의 정보꾼들을 은밀히 불렀는데 그가 도박판을 기웃거린다는 말을 듣고 삼칠이라 불렀지. 형조나 사헌부에서 범인을 추달할 때 쓰는 말에 '도삼칠(倒三七)'이란 게 있지."
"도삼칠?"

"특별한 건 아니네. 자네같은 이가 독극을 사용한 자를 추려낼 때 은비녀같은 법물을 사용하잖아. 예전과 달리 은비녀도 시장이나 공장에서 제조해 은기(銀器)들이 위조된 것이 많아 진품을 구하기 힘들지. 은비녀를 볼때 30푼이 은이고 70푼이 동이면 금방 변해 판명이 어려워 억울한 일이 생기게 되지. '도삼칠'은 그런 뜻이야. 비록 형조에서 정보통 노릇을 한다 해도 언제 변할 지 몰라 믿음이 떨어진다는 우스갯말이지."
"···."

"더구나 그 자는 돌려대기를 잘하는 '타짜'야. 사기도박에 앞장 설 인물이니 더욱 그렇단 것이지. 지금 정수찬 나으리께서 은밀히 조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지."
"나으리가 조사를 해요?"

"요근래 한양엔 투전이 부쩍 사대부가에 침입했는데 아주 조직적이란 게야. 삼칠이가 '돌려대기'나 '가보잡기'를 하면 부르는대로 떨어지니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 믿지. 아, 그러지 않겠어. 가보잡기를 하면 '알팔귀 홀오마니 쌍불알 가보'나 '새칠팔 떡장수 가보'고 그게 자주 나온다 싶으면 어느새 '오륙팔 앉은뱅이 가보'가 나오니 돈냥이나 챙기고 떠억 안면을 바꿔도 어느 누가 시비를 걸겠어. 어느 누구건 붙었다 하면 잃을 건 뻔하고 본전 생각나 날밤을 까면 집구석이 해산하는 건 벌써 정해진 노릇이지. 사헌부에 들어온 고변에 의하면, 그 자가 마른내골에 사는 홍진사와 자주 어울린다 했으니 나으리가 가만있을 수 없잖아!"

[주]
∎돌려대기 ; 다섯 장의 투전으로 하되, 먼저 세 장으로 10, 20, 30을 맞추고 남아있는 두 장으로 끗수를 보는 것
∎가보잡기 ; 가보치기라고도 함. 투전 세 짝을 가지고 끗수를 보는 것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