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근대역사관 정문. ⓒ 조을영
▲ 부산근대역사관 정경. ⓒ 조을영
근대 개항기의 부산 1876년 근대 개항 후 부산에는 새로운 변화가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부산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조선의 질 좋은 쌀을 그들 나라로 가져가서 팔고, 더불어서 조선 시장에 일본 공산품을 팔았다. 이들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초량동 왜관에 전관거류지를 만들어 살면서 조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무역 활동을 했다. 일본 정부는 부산에 체류하는 이들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지배기구를 만들어서 그들의 편의를 도왔다. 이에 조선에서 재산을 모은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보금자리를 조금씩 빼앗으며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조선 상인들은 일본상인과 경쟁하면서 성장을 도모했지만 일제의 침략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가운데 조선인들이 모여 살았던 동래는 일본인들이 지배하는 부산으로 편입되었고, 일제는 부산을 대륙침략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갖춘 근대도시로 만들어 갔다.
▲ 부산근대역사관2. ⓒ 조을영
일제의 부산 수탈 과정 일제는 부산을 행정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부산부청을 설치하고 그 아래 최소 행정 단위까지도 지배력을 침투시키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조선 쌀 수탈과 일본 공산품 판매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쌀 수탈을 위해 낙동강 둑을 쌓아 김해평야 조성, 조선인 소작농 수탈등으로 부산을 장악해 나갔다. 1930년대부터 일제는 대륙침략정책과 값싼 노동력 수탈을 목적으로 부산의 공업화를 적극 추진했다. 그리고 우수한 어업 기술과 도구로 수산업도 잠식했다. 또한 일본 자본가들에게 금융지원을 하기 위해 많은 일본 은행이 설립되었다. 나아가 전시 체제기에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수탈을 서슴지 않았다. 근대 도시 부산 한산한 어촌이었던 부산은 일제에 의한 개항과 함께 근대도시로 변했다. 일제는 부산을 한반도 및 대륙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조성하여 시가지 확대와 항만설비를 위해 해안을 매립하고, 그 매립지에는 교통, 항만, 창고 등 근대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잘 갖춰진 도로망으로 조선인 마을을 부산에 더욱 가깝게 만들었고, 잘 정비된 항만시설로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였으며, 일본인들을 위한 병원, 상수도, 신문 등 사회기반 시설도 늘여갔다.
▲ 일제시대 엽서. ⓒ 조을영
▲ 일제 시대 '인단'광고. ⓒ 조을영
▲ 일제시대 북선항로 약도. ⓒ 조을영
▲ 일제 시대 지폐. ⓒ 조을영
▲ 일제가 학도병들에게 품고 다니도록 강요했던 일장기.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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