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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다는 이유로 잊었던 모교에 용서를 구합니다

40년 만에 찾은 모교에서의 동문 체육대회 참가기

등록|2010.10.18 14:28 수정|2010.10.18 14:28

어언 40년 만에야 비로소 찾은 고향 초등학교 모교입니다. 그래서 미안하기 짝이 없던 어제였습니다! ⓒ 홍경석


높고 푸른 가을하늘에 걸맞게 삼삼한 미풍은 나들이를 하기에도 딱 맞는 최적의 기상이었습니다. 어제(17일)는 발걸음도 가벼이 집을 나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두 친구를 만나 천안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약 1시간 뒤 천안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들어선 곳은 지난 40년 전에 졸업한 모교인 천안 성정초등학교였지요.

천안성정초등학교 총동창회 주최의 <제 8회 총 동문 체육대회>가 모교 운동장에서 열렸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니 우측으로 커다란 체육관 건물이 최근에 준공된 듯 그 모양이 자못 웅장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시작된 개회 선언 뒤에 맨 먼저 연단에 오른 천안시의회 의장님께서는 그 체육관 건물이 우리 동문회의 선배님 기부에서 기인한 고마운 선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축사를 하신 천안시의회 의장님은 대전서 함께 참석한 친구(동창생)의 오빠이자 모교의 2년 선배님이셨기에 그를 보는 저의 마음은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교차했습니다. 왜냐면 그 선배님은 정치인으로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불과 2년 후배인 저의 입지는 왜 늘 이 모양 이 꼴인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이 불끈 발동한 때문이었지요.

이어진 체육대회는 몸 풀기 체조를 필두로 전원달리기와 폭탄 제거 놀이, 그리고 낙하산을 펼쳐라, 줄다리기와 청백계주 노래자랑 등 그 짜임새가 대단히 풍성하고 다양해서 한시도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13회 동창회의 회장과 총무, 그리고 운영진들은 고기를 굽고 음식을 끓이고 지지는 따위로 온갖의 산해진미를 잔뜩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운동장의 깔판 위 다담상에 펼쳐내니 선·후배님들은 물론이고 좋은 날씨에 편승하여 놀러 나오신 어르신들께서도 고개를 쭉 빼며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그러자 평소 손이 크고 인심도 넉넉한 회장과 총무는 그런 할머니들께 따로 상을 내어 대접하는 실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초엔 제가 떡볶이를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먹을거리가 너무나 요란뻑적지근하였기에 '그깟 것'을 만들어봤자 치지도외의 허투루 음식이 될 게 뻔하여 친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어쨌든 취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왁자지껄하면서 술과 음식과 더하여 살가운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덕담을 교류하던 중에 아까 축사를 마치신 의장님이 우리에게도 오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 형을 와락 껴안았지요.

"형, 제 술 한 잔 받으세요!" 그리곤 근황을 물으시기에 제 명함을 꺼내 드렸더니 "13회가 빵빵하게 잘 나가니 나도 기분이 좋다"며 괜스레 허풍을 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닙니다, 11회 선배님들이 더 대단하시지요! 그나저나 저 웅장한 체육관을 선배님의 기증으로 지었다고 하니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앞으론 저도 우리 초등학교 총 동문 장학회에 조촐하나마 기금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각오를 피력했더니 선배님께선 더욱 고무되시어 이번엔 아예 양복 저고리까지를 벗으시곤 한 잔을 더 달라고 하여 제 마음을 더욱 흡족케 하셨습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노래자랑엔 13회를 대표하여 제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만취하는 바람에 그만 <백마강>노래를 중간에 가사를 잊어 그만 입상권에선 탈락하고 말았지요. 그랬음에도 우리 동창생들은 물론이고 후배들도 대거 운동장으로 몰려나와 저의 노래와 음악에 맞춰 '난리블루스'를 보여줘 저를 더욱 높은 행복의 구름 위에 두둥실 올라타게 하였지요.

제가 졸업한 천안성정초등학교의 역사는 현재의 제 나이와 똑같습니다. 즉 지난 1959년에 개교를 하였으니까 같은 해에 출생한 저의 나이 52세와 그 궤(軌)와 역사까지를 함께 하는 셈이죠. 그러하기에 우리들 13회 졸업생들이 느끼는 감회와 어떤 자부심의 무게는 다른 졸업생들과는 달리 묵직한 것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지도 40년이란 세월의 강이 무심하게 흘렀습니다. 그랬음에도 그간에 왜 그렇게 먹고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어려웠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바람에 사실 모교와 저의 관계는 버성기는(버성기다=벌어져서 틈이 있다) 어떤 불협화음의 관계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랬으니까 장장 40년이나 되는 세월이었음에도  모교를 찾아보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젠 그같이 무정하고 야박한 세상사에 대한 뜸베질(화가 난 소가 뿔로 물건을 닥치는 대로 들이받는 짓)을 멈추렵니다. 대신에 모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차원에서 비록 얼마 안 되나마 장학금의 용도로 기부라도 할 요량입니다.

끝으로 작년 말부터 겨우 참석하는 동창회의 말석(末席)임에도 늘 그렇게 따뜻한 사랑과 배려의 식사 대접을 아끼지 않은 13회 동창생들 모두에게 심심한 고마움을 전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우리 13회 동창생 중에서 그래도 꽤 튼실하고 괜찮은 친구!"라는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고자 더 노력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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