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쓸쓸하기 그지없는 10월, 경춘선을 타다

춘천문화탐방기② 추억의 경춘선을 타고 떠난 기차여행

등록|2010.10.18 17:16 수정|2010.10.18 18:24
완연한 가을이다. 어떠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라도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계절이다. 쓸쓸함이 충만할 때 인간은 융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모든 여행이 사람을 들뜨게 하지만 기차여행은 탁 트인 통유리와 움직임이 용이한 특징으로 인해 여행객들의 객수를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 젊은 여행객들의 인기를 끄는 기차여행 프로그램으로는 <대전 -청주 - 충주 - 제천>의 충북선 코스와 <청량리 - 제천 - 아우라지 - 태백 - 정동진 - 강릉>의 강릉선 코스 그리고 <청량리 -대성리 -청평 -강촌 -남춘천>의 경춘선 코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경춘선에서 바라다 본 ‘북한강’- 아침에 살풋 안개 낀 모습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그대는 안개였나요? ⓒ 박태상



그중에서도 '경춘선 코스'는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40%가 살고 있는 수도권 서울-경기 지역 사람들이 거의 한 번 이상 다녀온 추억의 여행코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0대부터 60대까지 누구나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명품여행코스에 해당한다. 이용의 대중가요의 노랫말에도 나오듯이 쓸쓸하기 그지없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오기 전에 집을 떠나 길 위에 서 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은 낭만적 선택일 것이다.

특히 지금 계절은 가을철이라 만산홍엽(滿山紅葉)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가을 중에서도 단풍의 유혹이 가장 강한 주간이 10월 중순 아니겠는가? 산은 바람의 풍향에 따라 흔들거리고, 연인의 마음은 붉은 기운으로 물들고 있다. 내장산과 설악산의 단풍만이 아름다운가? 진짜 아름다운 것은 누구든지 길을 떠나서 선 자리에서 올려다보는 만산홍엽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진수인 것이다.

중국 고전인 유협이 지은 <문심조룡>이란 책에는 '지음(知音)'이란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자연의 원음'을 인지한다는 뜻이다. 가을여행에는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 자연의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럴 때 '단풍코스'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은 연인들의 의무가 아닐까? 모든 종류의 움직임이나 욕망은 마음과 관계된다. 마음은 욕망의 기관이다. 마치 상상적인 것의 영역 안에서 사로잡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여행을 떠나는 것도 소중한 인간의 욕망이다.

경춘선 타는 곳- 청량리역에서 남춘천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추억의 경춘선을 타고 가을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 박태상



지난 2일 청량리에서 아침 9시에 떠난 경춘선 기차는 소리도 없이 플랫폼을 빠져 나갔다. KTX 기차만 빠르게 박차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비록 10년 이상 운행되어 몸과 마음이 쇠락한 무궁화열차지만, 한때는 은하철도 999처럼 쌩쌩 달려갔던 힘찬 동력의 기차다. 무궁화열차의 외모는 마치 중년여인의 모습과도 같다. 그런대로 몸매는 날렵하고 준수하지만, 몸이 옛날 같지 않다.

그런데도 루즈를 칠한 듯한 앞 얼굴의 붉은 입술은 아직도 고혹적인 매력을 뽐낸다. 수많은 인파가 승차하면서 매혹적인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현대의 불감증 환자들이 감흥을 느끼기 위해 알코올의 향기에 젖어들 듯이 촉촉이 와인 잔에 젖어들게 된다. 붉은 와인은 바로 통유리 밖에 비쳐지는 경춘가도의 푸른 남한강의 물결 위에 반사된 붉디붉은 가을정경이다. 여심은 차창에 비친 퇴락한 얼굴에도 미소를 짓는다. 세월은 무시할 수 없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초한 소녀다.

‘청평역’에 내린 젊은 아베크족- 항상 경춘선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대성리역, 청평역, 강촌역의 세 곳에서 젊은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하차한다. ⓒ 박태상



중년의 여인을 바로 청순한 소녀의 마음으로 성형수술 해주는 공간이 바로 경춘선 안 풍경이다. 기차는 쾌속으로 달려간다. 갑자기 어지럽다. 술에 만취하여 기차의 승강장 쇠봉을 움켜쥐고 내렸던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덧 대성리역이 나타난다. 안내판이 어둠 속의 가로등마냥 서서히 다가온다. 기타를 손에 들고 배낭을 어깨에 맨수많은 남녀 대학생들이 숨 가쁘게 달려와 호흡을 고르고 있는 경춘선 열차를 빠져나간다. 열차 안은 대학축제의 전야제가 끝나고 공허만이 감도는 야외무대 같다. 열차 밖으로 내려 선 연인들은 살갑게 다정하다. 자연의 속삭임을 여자 친구의 귓불에 젊음의 경쾌한 멜로디로 쏟아낸다.

뒷자리의 중년여인이 책을 꺼내 읽고 있다. 눈이 예전 같지 않은지 돋보기를 꺼내 쓰고 책을 읽는다. 정비석의 여행기 '산정무한'에 나오는 산사에서 '옥단춘전'을 읽고 있는 여인처럼 제법 진지하다. 아마도 서울의 아들네에서 손자를 봐주다 영감이 있는 춘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갑자기 청평역에서 소란하다.

예쁘게 차려입은 선생님이 노란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 30여 명을 인솔하고 기차에 오르고 있다. 피천득은 그의 수필집에서 여자대학교 근처 버스 안에서 재잘거리는 학생들의 소리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썼던가? 그것처럼 유치원 병아리들의 재잘거림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이들은 어디론가 가을 소풍 가는 길일 것이다. 아마도 김유정 역에서 모두 하차하는 것은 아닐까?

강원도의 들판- 경춘선 차창에서 접한 강원도의 논은 아직 벼베기를 안한 곳이 있어서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 박태상



차창에서 바라본 철로 변은 노란 물결의 연속이다. 그것은 저 멀리 산과 구릉의 초록물결과 조화를 이룬다. 일손이 부족하여 아직 벼 베기를 못한 탓일까? 듬성듬성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진다. 간혹 비닐하우스도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요즈음 야채 값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농심은 이럴 때가 오히려 부풀어 오를 것이다. 배추 한 포기가 추석 직후 1만 5천 원까지 치솟았다는 소식이 있은 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가격이 폭락하여 가락시장 도매 공판가격이 1포기에 5000 ~ 6000원 정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앞으로 더욱 내려갈 전망이라고 하니 이제 가격폭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참을 달려서일까? 경춘선 열차 안은 잠을 청하는 사람으로 조용하다. 춘천의 제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경춘선에서는 눈을 감으면 절대 안 됩니다. 도도한 북한강의 물결이 그대로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잠을 설쳐서 몸은 피곤했지만 자꾸 문자의 내용이 떠올랐다. 한강은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강원도·충청북도·경기도·서울특별시를 지나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는 514㎞이고, 유역면적은 2만 6219㎢으로 한국에서 네 번째 긴 강이다. 상류부는 남한강과 북한강 둘로 나뉘며 남한강을 본류로 본다.

북한강은 강원도 금강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면서 금강천·수입천·화천천과 합류하고 춘천에서 소양강을 합류한 뒤, 남서로 흘러 가평천·홍천강·조종천을 합친 다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한마디로 금강산에서 흘러온 물이 소양강을 거쳐 가평천으로 흘러내린 것을 경춘선 차창을 통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김유정역에 도착했다. 내리는 승객은 많지 않았다. 승강장에서 보니 멀리 금병산 자락이 보인다. 갑자기 <동백꽃>과 <봄.봄>에 나오는 봉필영감과 점순이가 떠오른다. 20여 년 전 김유정에 미쳐서 당시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실레마을('떡시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부쳐진 이름)에 있는 김유정의 생가 마을을 몇 차례나 오르내렸다. 탐문 하던 중 마을에서 소설의 여주인공 점순이의 아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금병의숙 시절의 제자 조문희옹도 만나 금병산 자락에 귀족 능처럼 조성되어 있는 일제 강점기 '마름'으로 세도를 누리던 김종필 영감의 무덤도 찾아냈다. 이러한 이야기를 당시 문학잡지 <현대문학>에 전재하여 여러 언론에 특종으로 보도됐던 추억이 떠오른다.

몇 년 뒤 200여 명의 문인제자들을 관광버스로 인솔, 실레마을을 다시 찾으니 점순이의 아들은 오토바이사고로 사망하고 없었다. 그에게서 어머니 점순이의 결혼 때 찍은 흑백사진을 빌렸는데 돌려줄 방법이 없어졌다.

기차는 청평역을 거쳐 강촌역에 도착했다. 대성리역과 청평역 다음으로 많은 승객이 내렸다. 강촌역에서는 등산객들이 많이 내렸다. 등선폭포 쪽으로 삼악산의 단풍을 만끽하러 주말에 집을 나선 사람들이다. 삼악산의 중턱에만 올라도 의암호가 내려다 보이고 북한강 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어 산수의 절묘한 조화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강촌역 기차 승강장 앞에는 젊은 청춘남녀들이 교각에 새겨놓은 사랑의 하트와 각종 연서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강촌역 앞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면 유명한 구곡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736m의 봉화산을 오르다보면, 50m 길이의 구곡폭포가 등반 객들을 맞이한다. 물론 큰 기대를 하고 가면 실망감이 크다. 제주도의 정방폭포나 천제연폭포 그리고 개성의 박연폭포 등을 감상한 관광객들에게는 너무나 작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깔딱 고개를 넘으면 자연부락인 문배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도토리묵 등 토속음식 안주에 막걸리를 한잔 걸치면 무릉도원에 온 느낌이 들게 된다.

남춘천역에서 ‘군밤 파는 할머니’- 군고구마 파는 장사는 없지만 군밤을 팔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겨울이 일찍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 박태상



기차에서 여객전무의 낭랑한 멘트가 나왔다.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곧 도착한다는 반복된 내용이었다. 남춘천역을 빠져나오니 역 장면 입구에서 군밤을 구워 파는 할머니가 몇 명 나와 있었다. 겨울도 아닌데 군밤장사가 있어 신기해서 다가갔다. 할머니는 "오늘 개시도 못했으니 팔아 주세요"라고 하소연했다.

한 봉지에 3000원 하는 군밤을 사서 마중 나온 제자들과 나눠 먹었다. 군고구마 장사는 아직 없었다. 지구 온난화로 가을은 짧아지고 겨울은 길어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음을 군밤장사 할머니의 까칠한 손을 통해 인식하게 되었다.

‘소양강 처녀상’-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의 대중가요 <소양강 처녀>는 1970년 크게 인기를 끌어 가수 김태희에게 신인가수상을 안겨주었다. ⓒ 박태상



대기해 있던 자가용을 타고 의암호에 자리 잡은 소양강 처녀상을 향해 갔다. 해 지는 석양 소양강에서 떠나간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소녀의 모습이 노랫말에 담겨 있다. 지난 10월 1일 밤 7시부터는 GBN 강원방송이 주최하는 '제7회 소양강처녀가요제'가 열려 300여 팀 중 예선을 통과한 13팀이 결선을 펼쳤다.

대중가요 <소양강처녀>는 1970년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으로 작곡가 박시춘의 먼 친척인 김태희가 불러서 그해 연말 가요결산에서 인신가수상을 받은 곡(가수왕은 남진의 「님과 함께」)이다. 2005년 11월 춘천시는 18살 청초한 그녀의 형상을 동상으로 제작하여 소양2교 앞에 세워 춘천 최고의 명물로 만들었다.

작사가 반야월은 <소양강처녀>의 실제모델이 있다고 증언하여 화제를 모았다. 1968년쯤 명보극장 앞 네거리에서 을지로 3가 방향으로 한 10여m 내려가다 보면 '한국가요 반세기 가요작가동지회'라는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 사무실에 윤기순이라는 18세 소녀가 여사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윤기순은 장차 가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가수의 화려한 꿈을 안고 강원도 촌구석에서 올라왔던 것이다. 윤기순의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민물고기(주로 빙어·잉어·붕어·장어 등)를 잡아 생계를 꾸려 가는 어부였다.

어느 날 그녀는 반야월을 초대하였고, 윤기순의 아버지는 건너편 갈대숲이 우거진 섬으로 나룻배를 타고 그를 안내하였다. 멋진 경치에 반한 반야월은 메모지를 꺼내 시상을 정리하여 1969년 봄, 오아시스레코드사를 방문하여 신곡으로 쓰라고 내어 놓았다. 그때 회사 문예부의 상담역이던 작곡가 이호는 자기가 작곡하겠다고 자청하여 드디어 운명의 <소양강 처녀>가 완성된 것이다.

‘중도유원지’의 배용준 ? 최지우- 청소년야영지로 유명한 중도유원지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이곳과 남이섬에서 주로 <겨울연가>가 촬영되었다. ⓒ 박태상



'소양강 처녀상'을 지나 강변도로를 따라가면, 중도유원지로 들어가는 선착장이 나온다. 중도는 빈번하게 TV에서 비쳤다. 올해 MBC TV 인기 예능프로 <무한도전>에서도 중도가 등장했고 가을에는 재즈페스티벌도 열려서 오래 전부터 중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지난 8월 춘천 남이섬에 놀러왔다가 중도유원지로 들어가는 배를 탔는데, 웬일인지 자가용을 가득 태워 사람이 서있을 공간은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자가용을 태우는 선착장이고, 사람들을 위한 선착장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중도에 들어가 보니, 유원지로 가는 길은 매우 멀었고 모두 자가용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별도의 교통편이 없었다. 논두렁 옆의 길만 있고, 제대로 안내판도 없었다. 거의 2 ~ 3Km를 걸어야 하는 먼 길이라 날씨는 몹시 덥고 난감했다. 겨우 30분을 기다려 다음 배로 들어오는 자가용 운전자에게 사정을 해서 중도유원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도유원지로 들어가니 별천지가 펼쳐졌다. 푸르른 나무 밑에 드넓은 잔디밭이 전개되어 있어서 청소년야영지로 인기가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이러한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에 중도유원지에서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다. 대표적인 영화로 <겨울연가>, <와니와 준하>, <오남매> 등이 있다. 또 낭만의 섬, 중도유원지에는 연인끼리 탈거리도 많아서 인기가 높다. 자전거는 기본이고, 전통카 및 러브카도 있다.

자전거도 일인용 이외에도 2인용 자전거도 있어서 좁은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2인 자전거를 타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도 중도유원지에는 선사시대 유적이 있어서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적석총과 지석묘군 그리고 수혈식 주거 등이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어서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문화를 골고루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의암 류인석 역사 유적지 - 항일 의병투쟁을 이끌었던 민족주의자 류인석은 영월과 제천, 충주에게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 박태상



중도유원지 선착장에서 멀리 떨어진 남면의 의암(義菴) 유인석 유적지로 갔다. 사실 춘천시에는 향교를 빼고는 조선조나 구한말과 연관되는 역사유적지가 별로 없다. 그런 측면에서 류인석의 항일유적지는 강원도와 춘천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의암 유인석 선생은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출생했다. 류인석은 화서 이항노학파의 위정척사 사상을 계승한 화서학파의 대유학자이자 한말의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저서로는 <동국풍화록>, <칠실분담>, <서악문답>, <우주문답> 등이 있다. 그는 55세 때인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운동을 시작하여 중부 지방 일대에서 크게 활약했다. 1896년 영월에서 호좌창의대장에 올라 제천, 충주 등지에서 항일 의병전쟁을 이끌었다. 1908년 국내에서 활동하기가 여의치 않자 해외로 망명하여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여 13도 의군도총재로 추대된 한말 항일의병운동의 선각자였다. 불행하게도 그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15년 74세를 일기로 중국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춘천의 마지막 여행지로는 남이섬을 선택했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2002년의 KBS TV 드라마 <겨울연가>(2002. 1. 14 ~ 3.19 방영, 총 20부작)의 여운이 남아 있다. 2005년에도 KBS는 <겨울연가>를 다시 틀었다. 일본에서의 폭발적인 인기가 다시 한반도로 넘어왔기 때문이었다. 여름에 보는 남이섬의 풍경은 어떨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민형과 유진 그리고 상혁으로 분장한 배용준·최지우 그리고 박용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요즈음 제주 올레로부터 슬로우 워킹이라는 느림의 미학이 북상하고 있지만, 사실 슬로우 워킹의 원조는 남이섬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이섬의 명물 ‘메타세콰이어길’- 남이장군의 무덤이 있는 남이섬은 소나무길, 포플라길, 메타세콰이어길 등이 서로 얽혀서 슬로우 워킹의 명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 박태상



선착장에서 내려서 처음으로 맞게 되는 소나무 오솔길을 비롯하여 청평호와 접하게 되는 메타세쿼이아길. 그 사이의 밤나무와 포플러나무 길 등 실로 다채로운 좁은 길로 남이섬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63Km 지점에 청평호수 위에 떠 있는 남이섬은 면적이 46만 평방미터에 이르고 둘레는 약 5Km에 달한다.

강물로 에워싸인 자연생태문화 청정 정원인 남이섬이 사실은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호협한 영웅 남이장군(1441 ~ 1468)의 묘 때문에 이름이 정해진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이장군은 이시애의 난 때 우대장으로 출전하여 반역을 진압하여 28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오르지만, 유자광으로부터 역모를 꾀한다는 모함을 받아 정승 강순과 함께 거열형을 받아 처형당했다.

남이는 죽었지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백두산에 올라 세운 평정비에 새겨놓은 호쾌한 한시 <북정가(北征歌)>는 아직도 우리들 귓전에 들려온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의 돌은 칼 가는데 쓰이고
두만강의 물은 말 먹이는데 쓰인다.
남아 이십 세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는가?
덧붙이는 글 얼마전 추석특집프로그램으로 추억의 통기타 듀엣 가수 트윈폴리오, 윤형주, 송차식이 나와서 전설적인 <웨딩케익>, <하얀손수건>을 불러 향수에 젖게 했다. 통기타를 두드리며 고성방가하는 대학생들의 떠들석한 소음이 사라진 경춘선은 공허속에 잠들고 있었다. 아! 옛날이여~~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