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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애가를 아시나요?

구례동편소리축제에 처음 올려진 창극 <산수유>

등록|2010.10.18 18:35 수정|2010.10.18 18:35
전남 구례는 노오란 산수유꽃이 만발하오. 이 곳에 삼키고 삼킨 눈물을 토해내듯 터트린 창극 <산수유> 초연 무대가 올랐소. 산야에 오곡백과 무르익어 풍성하니 절로 흐뭇해지는 계절. 흥겨워 덩실 춤이라도 추어야 할 판에 웬 눈물들인가?

창극 <산수유> 구례동편소리축제 둘째 날 올려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창극 <산수유> 한 장면 ⓒ 구례동편소리축제


동편제 판소리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 구례에서 지난 해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구례동편소리축제는 10월 8일부터 10일 3일간 열렸는데 둘째 날인 9일 밤이었소. 중앙무대서는 '반 세기동안 숨죽여 온' 탄식과 '단단히 맺혀진 산수유 같은' 눈물이 서시천을 타고 섬진강으로 흘러가듯 했지요.

금지곡이기도 했던 '산동애가' 사연으로 첫 개봉한 창극 <산수유>는 유영대 예술감독, 박성환 작/연출, 이용탁 음악감독, 염경애 작창으로 만들었는데 반공 이데올로기와 냉전체제로 삼엄한 시대, '부전'네 가족의 비극사를 그려낸 작품이었소.

창극 <산수유> 구례동편소리축제 둘째 날 올려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창극 <산수유> 한 장면 ⓒ 구례동편소리축제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백씨 집안의 5남매 중 둘째 딸인 백순례(애칭 부전). 아들 둘을(큰오빠 백남수 일제 징용 이후 사망, 둘째 오빠 백남승 여순사건으로 처형) 잃은 어머니 고선옥(1987년 사망)은 순례에게 당부했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셋째 오빠(백남극·여순사건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대신 죽어야 한다고 여순사건 부역혐의로 경찰에 끌려갔지.

창극 <산수유> 구례동편소리축제 둘째 날 올려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창극 <산수유> 한 장면 ⓒ 구례동편소리축제


"열 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갈 길마다 눈물 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열 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에 나는 간다.
노고단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백순례 작사·작곡 '산동애가' 전문 '산동애가'

창극 <산수유> 구례동편소리축제 둘째 날 올려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창극 <산수유> 한 장면 ⓒ 구례동편소리축제


구례군민, 전남광주 이웃지역 주민들 그리고 외지 관광객 2천여명이 자리한 이 곳이 <국악챔버오케스트라 아홉>의 비장한 서곡이 깔리자 갑자기 반세기전 산동마을로 탈바꿈되었소.

창극 <산수유> 구례동편소리축제 둘째 날 올려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창극 <산수유> 한 장면 ⓒ 구례동편소리축제


비극의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의 소박하고 평범했던 삶은 극의 <1장 장터> 풍경에서뿐. <2장 산골>부터는 그칠 줄 모르는 전쟁과 전쟁이 부른 또 다른 전쟁의 악취가 흉흉하게 마을을 휩쓸고, 무대 곳곳에서는 총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 마을 주민이 밤 사이 하나 둘 사라지고 대낮에도 버젓이 살육이 자행되고. 남자라면 노소를 구별 않고 징용대상으로 지목되자 대를 이어야 하는 오빠를 대신 여동생 '부전'이 죽음의 징용길을 자처하는구려. 

창극 <산수유> 구례동편소리축제 둘째 날 올려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창극 <산수유> 한 장면 ⓒ 구례동편소리축제


꽃다운 나이 열아홉 '부전'은 그렇게 산수유 꽃 흐드러진 돌담길을 돌아 나서며 '산수유 개나리 노오란 꽃그늘 속으로 쑥 캐고 나물 뜯으러 갔다더라'고 전해 달라 하지 않것소.

산수유 꽃에 맺어둔 설운 정을 풀어내며 '부전'이 부르던 노래 '산동애가'가 공연의 절정에서 불리워지자 객석에선 훌쩍훌쩍 눈물 훔치는 소리가 들려왔지. 그들은 비가(悲歌)가 불리워진 처참한 당시를 살아본 적 없는 젊은 후손들이오.

무대 위 배우들은 실제 역사의 현장과 그 속의 인물들, 즉 '부전'을 중심으로 한 그녀의 가족과 마을 주민들, 마을의 역사와 당시 시대 속에 사느라 쉼 없이 불끈불끈 끓어오르는 눈물을 훔치기에 바빴는 걸.

객석의 관람객들은 '산동애가' 속의 비운으로 피멍든 상처와 옷섶에 감추어 둔 눈물 자국들과 조우하게 되면서 그 속의 눈물과 탄식들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나서지 마라, 맞서지 마라. 그저 스치고 지나갈 바람이려니.
저 들판 억새덤불 휘어지고 구부러져도
뿌릴랑 대지를 더 힘껏 그러쥐고 피눈물을 삼키나니
그저 한철 스치고 지나갈 바람이려니...
나서지 마라, 맞서지 마라. 그저 스치고 지나갈 바람이려니

- 창극 <산수유> 중 일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 적과 적으로 맞서야 하는 시대 속에서 그저 살고자, 살아내고자 했던 한 어머니는 그의 아들(정식), 딸(부전)에게 위와 같이 당부하고 당부했지.

그저 한철 스치고 지나갈 바람이려니 저 들판 억새처럼 휘어지고 구부러져 살라고 한다. 그러나 이쪽에서 부는 바람이 저쪽으로 사라질 적까지 낮게 엎드려 바짝 숨 죽이며 살려고 했던 부전의 어머니와 부전도 결국 그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부전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원진주양은 "연습하는 내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오. 내게는 낯설기만 한 먼 과거의 일이었지만 내 어미의 어미, 내 아비의 아비가 부전이었고, 민철이었다. 그들로 환생하여 무대에 서니 그들이 못다 흘린 눈물까지 대신 흘리게 되는 것 같았다"고.

창극 <산수유> 구례동편소리축제 둘째 날 올려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창극 <산수유> 한 장면 ⓒ 구례동편소리축제


공연 내내 눈물을 훔치던 초로의 관람객 한 분은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 속에 숨겨 둔 이야기와 섬진강 깊은 강바닥과 모래톱에 묻어 둔 눈물과 탄식은 이번 한 번만의 공연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우리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뿌리였던 조상들의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이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러데.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쏟아졌소.

우연한 여행길에 이번 공연을 관람하게 된 한 여행객은 "인구도 많지 않은 시골마을에서 이런 완성도 높은 공연이 올려지는 것도 놀랍고 그 공연을 보는 관람객들의 반응 또한 대단했다. 마지막에 기립박수가 나올 때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며 흥분과 감동을 감추지 못했고.

객석으로도 노오란 꽃송이들이 점점이 나비처럼 훨훨 날개짓하며 날아들었소. 푸르른 지리산과 섬진강 또한 오늘밤만은 노오랗게 노오랗게 물들어갔지. 이 가을 구례의 밤은 노오란 산수유 꽃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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