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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은 LG 휴대폰 공짜라고요?

입국 초 이주노동자 상대로 제공 뒤 추후 계좌번호 요구...경찰 "조사중"

등록|2010.10.21 11:19 수정|2010.10.21 11:34

▲ 이주노동자를 노리는 핸드폰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자료사진). ⓒ 전용호



"이 서비스는 외국인 전용입니다. 이 핸드폰은 당신에게 공짜로 제공됩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후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하는 국내적응 교육을 사흘간 받았고 회사에 들어간 지는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아무 의지할 곳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그에게 배달된 우편물은 한국 생활에서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핸드폰이었다. 그것도 공짜란다. 일반적으로 한국 물정을 전혀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은 마냥 좋다고 그 핸드폰을 쓰게 된다. 과연 이 핸드폰을 "웬 횡재냐"하고 그냥 써도 될까?

외국인을 위한 공짜폰... 계좌번호 보내라?

인도네시아인 구나완(25)씨는 입사한 지 이틀 만인 지난주 수요일(13일), 택배를 받았다. 한국에 도착한 후 자신이 어디서 일하는지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이 전혀 없던 터라 택배가 뜬금없기는 했다. 택배를 뜯고 난 후 구나완씨는 고민에 빠졌다.

배달된 택배는 엘지 유플러스에 자신의 명의로 개설된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이 들어 있던 상자 안에는 인도네시아어와 한글로 적힌 안내문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어로 적힌 안내문은 이렇게 써있었다.

"이 핸드폰은 외국인을 위해 제공되는 외국인 전용 공짜 핸드폰으로, 국내는 일반 핸드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반면, 국제전화는 선불용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사용하면 됩니다."

또 핸드폰에는 이런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인도네시아 핸드폰 안내 센터입니다. 당신이 우리가 발송한 핸드폰을 이미 받아서 이용하고 있다면, 의문 나는 것에 대해 이 번호(010-****-***)로 연락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한 이동통신회사 명의로 발급된 가입확인서. 아궁도 모르는 사이 여권만으로 핸드폰이 개통됐다. ⓒ 고기복

구나완씨는 문자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해 봤다. 그러자 상대방은 인도네시아어로 "그 전화는 공짜니까 그냥 쓰고, 당신 계좌번호만 문자로 보내주면 됩니다"라는 답변을 하고는 끊어 버렸다. 정작 구나완씨가 궁금한 사항을 물어볼 수 없었던 것.

한편 구나완씨와는 달리 배달 받은 핸드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도 있었다. 구나완씨보다 일주일 먼저 한국에 도착한 인도네시아인 아궁(27)씨.

아궁씨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핸드폰을 받았지만,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핸드폰을 보낸 곳에서는 "좀 더 편리한 서비스를 위해 당신의 계좌번호를 가능한 빨리 이 번호(010-8***-****)로 문자를 보내주십시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궁씨는 핸드폰이 공짜라는 말만 믿고, 일종의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인 줄 알고 그냥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계좌번호를 보내달라는 문자에 의심을 갖고 계좌번호를 보낼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본인이 신청 안 했는데... 핸드폰 개설에는 여권 필요"

결국 두 사람은 지난 일요일(17일)에 이 일을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 상담했다. 쉼터에서는 핸드폰을 보낸 곳에서 동봉한 한글 안내문과 인도네시아어로 적힌 안내문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글 안내문에는 "이 핸드폰은 외국인들이 본국에서 신청한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을 뿐 '외국인 전용 공짜 핸드폰'이라는 안내가 없었다. 게다가 국제전화의 경우 선불용 국제전화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안내와는 달리 선불카드 없이 사용이 가능했다.

핸드폰을 받은 두 사람이 의아해 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일단 자신들은 핸드폰을 개통한다고 신청한 적이 없는데, 핸드폰이 배달됐다는 점이다. 또 핸드폰을 개설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한데, 이들은 아직 외국인 등록증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자신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여권뿐이다. 그런데 여권을 국내에서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이용하게 한 적은 최초 입국 당시 출입국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하는 국내적응 훈련 당시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뿐이었다. 현재는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여권을 사측에 제출한 상태. 하지만 핸드폰이 배달된 시기를 감안하면 사측에서 임의로 핸드폰을 신청했을 리 만무하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핸드폰을 개통하려면 반드시 외국인 등록증이 있어야 한다(여권 불가). 외국인 등록증은 국내에 3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이면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신분증이다. 그래서 외국인 등록증이 없거나 단기체류하는 외국인들은 선불제 카드를 이용한 핸드폰을 이용한다.

구나완씨와 아궁씨는 외국인 등록증이 없는 상태에서 핸드폰이 개통됐다. 과연 여권만으로 핸드폰 개통이 가능할까. 핸드폰을 발송한 ***정보통신㈜ 담당자는 "여권만 가지고 개통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놨다"고 했다. 단, 후에 외국인 등록증이 나오면 팩스로 사본을 보내는 조건으로.

이뿐만이 아니다. 핸드폰을 개통할 때는 외국인 등록증 외에도 자동이체로 요금을 납부할 통장 사본이 필요하다. 이때는 단순히 계좌번호가 아니라 외국인 등록증을 이용해 만든 통장 사본을 제시해야 한다. 구나완씨와 아궁씨는 통장 사본이 아니라 계좌번호만을 요청받았다. 이 또한 정식 절차를 어긴 것으로 통신사 측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 담당자는 "처음에는 회사 주소로 지로 발송을 하고 통장 사본을 보내주면 자동이체로 전환한다. 요금 납부는 근로자들의 양심에 맡긴다"고 밝혔다.

업체는 핸드폰 약정서도 보내오지 않았다. 가입사실 확인서만 달랑 있었을 뿐이다. 계약을 체결했는데 그것을 증명할 서류가 없는 거다. 업체는 "쓰기 싫으면 반품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따지고 들자 ***정보통신㈜은 "근로자의 본국에서 신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택배에 동봉한 '엘지 유플러스 가입사실 확인서'에 따르면 개통일자와 핸드폰 발송일자가 입사일자와 같았다. 해외인 본국에서 신청해서 개통 가능하다면(가능하지도 않지만) 입사일자보다 더 빨리 개통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용인경찰서 "외국인 상대 핸드폰 강매... 조사"

결국 이들은 이 사건을 관할 용인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 사건은 한국 물정에 어두운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악질적으로 핸드폰을 강매한 셈이다. 신분증인 여권과 근무처인 회사 주소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범죄"라고 봤다. 경찰은 이들이 국내 입국 이후 최초로 여권을 사용한 바 있는 국내적응 훈련 담당 기관과 핸드폰 판매회사 등의 커넥션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구나완씨와 아궁씨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같이 입국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과 같은 식으로 핸드폰을 받았다. 호의인 줄 알고 받았는데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핸드폰을 구매할 수밖에 없도록 판매하는 방식에 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은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들은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처럼 핸드폰을 강매한다면 엄청난 폭리를 취할 것은 뻔한 노릇이고, 이 과정에서 단순히 명의도용만이 아니라 계좌번호 등의 아주 중요한 개인정보까지 유출되어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어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번 사건은 핸드폰을 팔아서 재고를 없애야 하는 판매인과 그 판매를 용인하거나 협조(여권 등 개인정보 제공)하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챙기는 측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보인다. 참고로 구나완씨와 아궁씨는 공항에서 출입국 절차를 밟을 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하는 적응훈련 때만 여권을 타인에게 맡겼다고 증언했다. 자세한 상황은 경찰 조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 국내입국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고용노동부가 이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위가 어찌됐든 관리감독 기관인 고용노동부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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