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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밥 안 먹어" 지켜본 적 있나요?

[기사공모-지키지 못할 약속] 부모에게 관심 끌려 공수표 남발했던 어린 시절

등록|2010.10.20 15:54 수정|2010.10.21 10:32
"빨리 먹어!"
"싫어! 나, 밥 안 먹을 거야"

우리 집에서 일주일이면 서너 번 들려오는 일상적인 대화다. 뭐가 심술이 났는지 한 번씩 꿍한 얼굴의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엄마의 협박에도 "나, 밥 안 먹어! 절대 안 먹을 거야!"
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어지간히 익숙해진 터인데, 이번에는 진짜로 두 끼나 밥을 안 먹고 버틴다. 말을 걸때마다 강력히 고개를 흔들면서 "밥, 안 먹어!"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속이 터지며, 슬슬 걱정스럽다. 하지만 아내는 요동도 않는다.

"놔둬, 저러다 배고프면 지가 먹겠지…."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웃음부터 나온다.

'어? 엄마가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속 터지게…….'

▲ 원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뤄지지 않으면 밥 안 먹는다고 협박하는 아들은, 아마도 나중에 크면 투쟁현장의 선봉(?)에 서고도 남으리라. ⓒ 김학용


조금이라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밥 안 먹는다고 협박하는 장면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투쟁'의 방식이다. 그게 부모에게 투쟁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나, 밥 절대 안먹어!"...부모 향한 '최대의 무기'

"나 밥 안 먹어!" 하고 방구석에 틀어 앉아 안 나온다면?

이때 부모의 행동은 둘로 나뉜다. 안쓰럽고 걱정되어 무작정 달래고 보는 전략이 있고,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무시하는 전략이 있다. 보통은 지친 부모들이 협상카드를 들이밀며 '휴전'을 제안함으로써 막을 내리지만, 후자에 속하는 아내의 전략은 시간이 더디지만 항상 승리로 끝난다. 그야말로 백전백승이다.

"밥 안 먹어!"하며 위세를 부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식탁 앞에서 벌이는 초등학생 아들의 가열찬 투쟁(?)은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꼭 빼다 박았다. 그러니까 벌써 40여 년 전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들만 셋을 둔 엄마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엄마가 다른 일에 정신을 빼앗겨 그만 밥을 태우고 말았다. 부랴부랴 새로 밥을 지어 도시락을 준비해서 나를 찾은 엄마는 교실 밖을 기웃거린다. 부엌에서 몸빼를 입은 차림 그대로 보자기에 도시락을 싸서 찾아온 엄마를 보고 교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헉! 바로 우리 엄마였다. 나는 교실 밖을 살며시 나와 작은 소리로 "창피하게 학교는 왜 왔어. 다시는 오지 마!"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락을 잽싸게 낚아챘다. 돌아서는 나의 귓가에 아이와 친구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누구니?"
"……."

몸빼 입은채로 도시락 들고 나타난 엄마

역시, 그날 엄마가 들고 온 도시락의 반찬은 볼 것도 없이 모조리 김치였다. 배추김치, 부추김치, 무김치... 주위 친구들은 손으로 코를 막으며 "아~! 이 냄새, 무슨 냄새야, 너희 엄마가 김치 가져왔냐?"라고 구시렁 거린다.

늦게 가져온 도시락에 분홍빛을 띤 소시지반찬이나 계란말이라도 들었으면 좋으련만…. 내 앞에 놓인 현실은, 저 먼 나라에서 가져온 듯 한 원망스런 도시락이었다.

'학교 찾아오는 것도 창피해 죽겠는데,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그렇지 않아도 내 가방속의 책이며 새로 산 공책이며 필통에도 온통 김칫국물이 흘러 배인 흔적이 가득한데, 원망스런 김치가 또 나를 반기다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도시락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결국 그날 점심은 굶고 말았다. 드디어, 집에 돌아온 나는 도시락을 내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왜 쪽팔리게 학교까지 찾아와서 창피를 줘?"
"어? 너 밥 안 먹었니?"
"그래 엄마 때문에 창피한 도시락 열기 싫어서 안 먹었다. 왜... 김치는 엄마나 많이 먹어!"
"김치가 어때서…."
"친구들은 맛있는 반찬 싸오는데…. 앞으론 나 밥 안 먹어, 절대 안 먹을 거야!"

문을 쾅 닫고 방으로 간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굳은 결심을 하기 시작한다.

'아, 하필이면 이런 집에 태어나서…. 그래, 나중에 기필코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진짜 많이 사 먹을 거야, 하루 종일 먹을 거야. 식구들은 주나 봐라'

그렇게 한참을 방에 쪼그리고 있는데 배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아, 열 받아…. 짜증나게 이럴 때 배가 고플 게 또 뭐람…….'

이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린다. 헉! 엄마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태연한 척 다시 표정을 가다듬는다.

"밥 먹어, 배고플 텐데…."
"......."
"엄마가 미안해, 다음부터는 학교도 안 찾아가고 반찬도 맛있는 걸로 해줄게"
"싫어! 절대 안 먹는다고 했잖아! 나가란 말이야!"
"......."

천원 한장에 물거품이 되고 만 굳은 맹세

눈물을 훔치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데, 두 끼나 굶은 외손자가 짠했는지 외할머니가 자꾸만 따라 나선다. 그랬다. 할머니가 몰래 손에 쥐여준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는 절대 밥 안 먹겠다는 맹세를 반나절만에 접고 말았다. 천 원에 물거품이 되고 말아버릴 굳고 빛나던 맹세는 왜 했던가.

나의 철 없는 투정 때문에 엄마는 상처받고 서운했을텐데...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투정만 부리던 마냥 철 없는 아들이었다.

명태대가리와 그 가시에 붙은 얄팍한 살점, 쉬어 빠진 나물로 비빈 밥, 먹다 남은 시래깃국, 알맹이는 다 깎고 남은 과일 꼬투리…….

나는 오랫동안 그것들이 정말로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인 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 흔한 천 원짜리 '홍시' 하나 사 드리지 못하고,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내가 오히려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지키지 못할 맹세를 남발하여 관심을 끄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정도는 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자신에게 애정을 베푼 사람에게 기어이 상처를 만들어 자신을 보상 받으려했던 나 자신을 이제는 반성한다. 제발 밥 안 먹는다는 지키지 못할 맹세는 하지 마시라. 지나가는 개도 웃는다.

그거 아는가, 사람이 열 받으면 혈액순환이 빨라져 배가 더 빨리 고프다는 사실을? 밥 절대 안 먹는다는 맹세는 다이어트 하는 소녀들이나 하는 맹세다.

오늘따라 스포츠신문의 오늘의 운세가 유달리 빛난다.

-2010년 10월 20일 오늘의 운세
OO띠 : 금전운: 中, 애정운: 中 , 건강운: 中, 여행운: 下
OO년생, 한 템포만 늦게 움직여라,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 것.
덧붙이는 글 '지키지 못할 맹세 왜 했어?'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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