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공제회 안에서도 태광 '이면계약' 의심"
최문순 의원, 큐릭스 지분 우회 인수 당시 이사회 회의록 공개
▲ 군인공제회 홈페이지 ⓒ
"군인공제회가 10% 수익 보고 투자하나, 다른 말 못할 사정이 있는가?"
태광그룹(대표 이호진 회장)의 '성공한 로비'로 꼽히는 큐릭스 인수 과정에서 '이면계약' 존재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6년 12월 태광그룹의 큐릭스 지분 편법 인수를 도운 군인공제회 내부에서도 태광 협조에 대한 우려와 10% 수익의 현실성을 거론하며 '이면계약' 여부를 추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20일, 2006년 12월 19일 큐릭스홀딩스 지분 인수 건으로 열린 군인공제회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했다. 최 의원은 지난해 4월 군인공제회 '큐릭스홀딩스 지분인수(안)' 문건을 공개하며 태광그룹의 큐릭스 지분 편법 인수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2006년 당시 국내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를 계열사로 거느린 태광그룹은 방송사업 확장을 위해 경쟁 MSO인 큐릭스 인수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방송법상 권역 규제에 묶여 인수가 불가능하자 2006년 12월 군인공제회와 화인파트너스를 통해 큐릭스홀딩스(큐릭스 지주회사) 지분 30%를 900억 원에 확보하게 한 뒤 이들과 2009년 1월까지 복리 10% 이자에 태광 계열사인 태광관광개발에 되팔 수 있는 옵션 계약(주식을 매수-매도할 수 있는 권리)을 맺었다.
당시 IPTV 도입에 따른 규제 형평성 차원에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권역 규제 완화가 논의되고 있었지만 2년 내 법 개정과 태광의 큐릭스 경영권 확보를 확신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계약이었다. 이 때문에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위해 태광그룹이 청와대, 방송위(현 방통위) 등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낳았다.
▲ 2006년 12월 19일 큐릭스홀딩스 지분 인수 건으로 열린 군인공제회 이사회 회의록 표지 ⓒ 최문순 의원실 제공
이사회 "편법증여 의혹 회사에 협조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 없나"
마침 2006년 12월 당시에도 장하성 펀드(라자드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가 2001년 태광산업이 방송법 규제를 피하려고 SO인 천안방송 지분을 홈쇼핑 3사에 팔았다가 2004년 되사는 과정에서 발생한 걸로 추정되는 차액 1079억 원을 이호진 회장과 아들에게 편법 증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군인공제회 이사회에서도 관리이사는 "태광그룹과 장하성 펀드의 갈등, 이호진 회장의 편법증여 의혹이 있는 기업에 대해 협조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없는가"라고 우려했다. 이에 군인공제회 금융전략팀장은 "태광측과 장하성 펀드측이 상호 합의하여 추가적인 문제점은 없다"고 보고했다.
그 무렵 티브로드는 이미 14개 권역 SO를 확보하고 있어 단일사업자가 77개 방송 권역 중 15개 권역(20%)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 당시 방송법에 따라 6개 권역 SO를 가진 큐릭스 인수가 불가능했다.
이에 군인공제회 감사는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송통신통합법 개정에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되는데 어떻게 2년 내에 개정이 될 것으로 판단하는가"라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금융전략팀장은 "방송통신통합법 개정 관련 쟁점사항은 방송통신융합 여부가 아니라 융합된 규제기구(방통위)와 관련하여 위원 임명을 누가 하는 것인가의 문제"라며 "방송통합법 개정은 큰 무리 없이 처리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그 당시에 태광그룹과 군인공제회에선 2년 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SO 권역 규제 완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2008년 12월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SO 권역 규제를 풀었고, 티브로드는 이듬해 큐릭스 대주주 원재연씨 지분 70%에 이어 군인공제회와 화인파트너스가 갖고 있던 지분 30%를 인수했다.
▲ 2006년 12월 19일 군인공제회 이사회 회의록 본문 ⓒ 최문순 의원실 제공
"다른 말 못할 사정 있나?"... 감사도 '이면계약' 의심?
2009년 3월 태광 직원의 청와대-방통위 간부 성로비 사건이 불거진 데 이어 최문순 의원이 태광의 큐릭스 지분 편법 확보 문제와 함께 태광이 큐릭스 경영권 인수를 약속한 '이면 계약'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그해 5월 18일 옵션 계약은 직접적인 주식 소유가 아니어서 방송법 시행령 위반이 아니라며 큐릭스 인수를 승인했다.
이번 회의록에는 당시 군인공제회 내부에서도 '이면 계약'을 의심했던 정황이 드러나 있다. 당시 군인공제회 감사가 "본회가 10%의 수익을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말 못할 사정이 있는가? 여기서 확실히 밝히고 가자"라고 추궁한 것이다.
이에 금융전략팀장이 "수익 10% 이외에 다른 이유나 사정은 없다"고 답했지만 감사는 "확약을 하는 건가, 이런 구조 하에서 10% 수익률은 너무 낮다고 생각하지 않나"고 재차 캐물었다.
이에 앞서 감사는 "상환 능력 강화를 위해 태광관광개발 외에 태광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연대보증 등 방법으로 포함시킬 수 없나"라고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군인공제회 이사회 내부에서 보기에도 표면적인 내용 이외의 다른 숨은 약속(이면계약) 없이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계약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최문순 의원실 관계자는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군인공제회 이사회에서도 태광에 협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면서 "10% 수익 외에 다른 말 못할 사정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 것은 이사회에서 '이면계약'을 의심했다고 볼 만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군인공제회는 지난 15일 "본 사업과 관련 수사당국 및 해당기관이 2009년 4월 태광관광개발과의 주식옵션 계약의 합법성 여부에 대해 확인하였으나 주식인수 절차상 법적인 문제점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 지난해 티브로드의 큐릭스 편법 인수 의혹에 대해 조사를 벌였던 검찰은 '이면계약' 여부를 확인하진 못한 채 지난 4월 무혐의로 수사를 마쳤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비자금 수사를 계기로 정관계 로비를 포함해 큐릭스 인수 과정을 재조사하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