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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만 부는 지야이지스고 역

[영웅 안중근 30] 셋째 마당 - 침략자의 심장을 꿰뚫다

등록|2010.10.29 16:53 수정|2010.10.29 16:53

▲ 오늘의 지야이지스고 역 ⓒ 박도






지야이지스고 역

14: 40, 열차가 지야이지스고 역에 도착하였다. 중국 승객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플랫폼에 내렸다. 칼바람이 몰아쳤다. 지야이지스고 역은 만주 벌판 한복판에 세워진 조그마한 역으로 그 언저리에는 건물들이 거의 없었다.

▲ 역으로 가는 길을 막은 화물열차 ⓒ 박도


플랫폼에서 역사로 나가려는데 꼬리가 긴 화물차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화물차 밑으로, 또는 화물차 꼬리로 돌아서 역사로 나가는데 나는 짐이 너무 무거운 데다가 차마 화물차 밑으로 건널 수 없어 두 손으로 귀를 에워싼 채 플랫폼에 서 있었다.

그랬더니 젊은 역원이 빨리 역으로 나가라는 손짓과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로 고함을 쳤다. 하는 수 없이 무거운 가방을 끙끙 들고서 화물차 꼬리로 돌아 개찰구로 나갔다.




2000년 8월 20일 2차 항일유적지 답사 때 하얼빈에서 창춘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서 지야이지스고 역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 지야이지스고 역원 ⓒ 박도



그때는 이 철도 부설 당시에 지은 듯한 자그마한 역사였는데 그새 그 역사는 사라지고 새 역사가 황토색 페인트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두 동(棟) 나란히 붙어 있었다.

나는 역장인 듯한 역원에게 김우종 선생의 소개장을 보이면서 사진 촬영 여부를 물었다.

그는 안중근 의사와 지야이지스고 역의 지난 역사를 이미 알고 있는 듯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마음대로 찍으라고 했다.

안 의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유적지

역사 안팎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1909년 10월 25일 우덕순과 조도선이 오들오들 떨면서 이틀 밤을 새운 역 구내 매점과 식당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새 역사를 지으면서 모두 헐어버린 듯했다.

다만 역사 뒤 한 모퉁이에 옛 창고 같은 공간이 있기에 그곳이 구내매점과 식당으로 우덕순, 조도선 두 사람이 이토를 태운 열차가 지나갈 때 전후로 러시아 병사에게 연금된 곳이 아닐까 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 안 의사 일행의 유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야이지스고 역 ⓒ 박도




지야이지스고 역은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의 접도 지역으로 지린성 부여시에 속한 우리나라 읍에 해당하는 지야이지스고 진(鎭)의 나들이 역이다. 드넓은 만주 평야에 한 점처럼 역사가 서 있을 뿐 허허벌판이었다.

역사 언저리는 옥수수 밭으로 이미 추수가 모두 끝나 들판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지야이지스고 역 철로에 머물고 있는 화차에 트럭에 싣고 온 옥수수 부대를 화차에 옮겨 싣는 몇 인부들만이 분주할 뿐이었다.

혹이나 옛 흔적을 찾아보려고 역사 언저리를 몇 바퀴 돌았지만 썰렁한 바람만 일어날 뿐이었다. 마침 역 앞에 일백년은 더 묵었을 버드나무가 두 그루 서 있기에 아마도 이 나무는 그날의 일들을 알듯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 역 대합실로 가 창춘으로 가는 남행열차 시간을 보니까 16시 37분에 있었다. 지야이지스고 역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만 열차가 서는데 만일 다음 차로 내려왔다면 이 벌판 역 대합실에서 나도 우덕순, 조도선 두 사람처럼 오들오들 떨면서 꼬박 밤을 새울 뻔했다.

역사 안팎의 답사와 촬영을 마치자 15시 10분으로, 다음 열차 출발 시간까지 한 시간은 더 남았다. 요기나 할까 하고 언저리를 살폈더니 역 앞에 서너 집이 있었는데 찬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한 가게가 보여 들어갔더니 상품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기에 포장된 비스킷 한 개와 음료수 한 병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역 앞 화장실을 들렀더니 그곳은 아직도 한 세기 전 화장실로 아침 먹은 것까지 토할 뻔했다.

사실 그들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지난날 그와 같지 않았든가. 10년 전 첫 중국대륙 답사 때만 해도 웬만한 곳의 화장실은 개선되지 않았으나 두 번째, 세 번째 갈 때마다 많이 개선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넓은 나라이기에 아직도 지야이지스고와 같은 시골까지는 화장실 문화 개선이 더딘 듯했다. 눈도 감고 호흡도 멈춘 채 용변을 재빨리 보고 대합실로 돌아왔다. 썰렁한 의자에 앉아 참선을 하듯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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