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유령도시에서 못나가는 심정 아세요"
[현장] 뉴타운·강남 지역 전세난 이어져... "서민주택 늘리고 집값 떨어뜨려야"
▲ 오세훈 서울시장(자료사진). ⓒ 유성호
"'전셋값 폭등'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지난 18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이날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무분별한 뉴타운(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전세난이 심해졌다고 지적하자, 오 시장은 "(전셋값은) 예전과 비교해 안정된 상태"라고 맞받았다.
하지만 오 시장의 발언에 뉴타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직접 이곳에 와서 보면,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곳의 부동산 중개업자들 역시 "뉴타운이 전세난을 가중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뿐만 아니라 강남의 중산층 세입자도 전세난에 고통 받고 있다. 이들은 "전세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20, 21일 찾은 서울의 뉴타운 지역과 강남 지역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전세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세입자의 모습은 비슷했다.
[뉴타운] "싼 집이 나올 때까지 유령도시에서 기다리고 있다"
▲ 지난해 12월 뉴타운 지역인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한 주민이 철거가 진행 중인 주택가를 걸어가고 있다. 당시 사업이 중단돼 현재까지 이곳은 텅 빈 '유령도시' 모습이다. (자료사진) ⓒ 선대식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 뉴타운 내 답십리16구역에 사는 이정우(가명·40)씨. 그는 "지난해부터 이곳을 떠나려 했지만 전셋값이 너무 올라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함께 60㎡ 크기의 반지하 셋방에 살고 있다. 보증금은 500만 원이고, 월 30만 원을 집주인에게 낸다.
답십리 16구역은 이주가 거의 마무리됐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동대문구청을 상대로 재개발 비용 부담 등을 정하는 관리처분계획 인가 무효 소송을 내서 승소한 이후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이씨는 "현재 상황에서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이주비를 지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떠나려 하지만, 폭등한 전셋값이 문제"라고 밝혔다.
현재 보증금 500만 원짜리 집은 주변지역에서 찾을 수 없다. 현재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크기의 주택으로 가려면 보증금만 최소 1000만 원은 있어야 한다. 그는 "요리사로 일하다가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며 "뉴타운으로 서민들이 살 집이 많이 사라졌다, 싼 집이 나올 때까지 유령도시에서 못나가고 있는데, 오세훈 시장은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겠다, 막막하다"고 밝혔다.
그에게 "전셋값 폭등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오세훈 시장의 말을 전하자, 그는 "주변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100군데에서 모두 물건 없다고 한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기자가 직접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이 지역의 전셋값 폭등을 부인하는 곳은 없었다.
방 3개로 이뤄진 다세대·연립주택(80㎡ 내외)의 전세금은 1억8000만 원. 올해 초 전세금이 1억5000만 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승세가 가파르다. 월세도 올랐다. 올해 초 월세가 20만 원(보증금 1000만 원)이었던 한 연립주택의 경우, 최근 월세가 28만 원으로 올랐다.
한 공인중개사는 "뉴타운으로 서민이 들어갈 집이 사라지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전했다. 전농·답십리 뉴타운 내 전농7구역의 한 조합원은 "이곳에 1500여 가구의 주택이 있었고, 세입자만 3000세대가 넘었다"며 "26일 공사에 들어가 2013년 말까지 2397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가난한 세입자들이 들어갈 집은 없다"고 전했다.
김형식 서울시의원(민주당)은 "뉴타운 때문에 서민주택이 대규모로 사라져 전세난이 심해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은 안이한 것 같다"며 "문제는 앞으로 서민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민들의 전세난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난 해소를 위해서는 서민주택 공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26일 본격적인 착공을 앞두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 뉴타운 내 전농7구역 공사 현장 주변(20일 촬영) ⓒ 선대식
[강남] 전셋값 폭등은 또 다른 전셋값 폭등을 부르고
서울 강남 지역도 새로 건축된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세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1단지 아파트를 재건축해 최근 입주 만 2년을 맞은 잠실 엘스 아파트(5678가구)의 경우, 최근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마다 전세를 찾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 59㎡(이하 전용면적, 25평)형에 살고 있는 신혼부부 이민아(가명·30)씨는 전셋값 급등으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는 지난 9월 3억4000만 원에 전세계약을 했다. 지난여름 전셋값(3억1000만 원)에 비해 3000만 원이 뛴 가격이다. 그는 "비싸게 계약했지만, 그래도 현재 3억7000만 원에 이르는 전셋값을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곳 84㎡(33평)형의 전셋값은 4억~4억3000만 원 수준. 인근 신천역(지하철 2호선)과 가까운 남향인 경우, 4억5000만 원의 매물도 나와있다. 불과 2년 전 입주 당시만 해도, 역전세난으로 전셋값은 2억3000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전셋값이 2년 만에 거의 2배가 된 셈이다.
'반전세'라고 불리는 월세도 많이 늘었다. 과거 전세와 반전세의 비율이 9:1이었다면, 이제는 6:4 정도다. 84㎡형의 경우, 보증금 1억 원에 월세는 160만 원. 한 공인중개사는 "예금금리가 낮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전세보다 월세로 받아야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다"며 "부담스럽지만, 이곳 떠나기 싫은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 서울 강남지역에서도 전세난이 심해지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아파트 상가에 있는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에 설치된 부동산 매물정보. 매매 물량보다 전월세 물량이 더 많다. ⓒ 선대식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전임 연구위원은 "집값이 하락하고 있고 매매차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다주택자 등 투기적 가수요자들이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전셋값을 올려 만회하고 있다"며 "전셋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불로소득을 환수해 집값을 떨어뜨려서, 실수요자도 집을 살 수 있게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날 만난 한 세입자는 "전셋값이 올라서,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아직은 집값 수준이 과도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