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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전 고인돌은 살아 있었다

[강화 고인돌문화축제 체험기] 세계유산과 자연 그리고 역사체험 현장

등록|2010.10.25 20:13 수정|2010.10.26 10:29
3천년 전 세운 '고인돌'은 지금껏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청동기시대 우리 조상들이 숱한 노동력을 들여 힘겹게 세운 수많은 고인돌은 우리나라 이곳저곳에 약 3만 5천개 가량이 흩어져 있다.

고인돌이라는 이름에서 단번에 알 수 있듯 유산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너무 쉬워서, 그리고 너무 많아서… 고인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명예로운 훈장을 달고 있음에도 그저 멍하니(?) 오랜 시간을 버텨온 걸로만 알기 쉽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은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도 분명히 살아 있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한결같게 생명수를 바라보고 있다. 농경사회를 지탱하는 생명수, 물은 청동기시대 조상들에게 생명이었다. 그 생명수를 바라보던 고인돌이 이제는 자연을 보호하고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는 세계유산으로서 또 다시 가치를 발하고 있다.

고인돌의 그 생생한 가치를 지난 23, 24일 이틀간 열린 '강화 고인돌문화축제'에서 체험했다. 1박 2일간 축제현장을 지켜본 결과, 다녀간 사람들의 숫자만도 얼핏 3~4만 명에 달했다. 하나의 고인돌이 불러들인 사람들의 숫자치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수천년 간 한 자리를 지켜온 고인돌은 이렇듯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포근함과 함께 조상들의 슬기로움을 남겼다.

수년째 고인돌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고인돌 사랑회'(회장 김영창)의 한 관계자는 "자발적인 모임이라 행사를 준비하고 꾸려가는 데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다"며 "하지만 민간단체로서 고인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인돌 알리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많은 국민들이 고인돌을 아끼고 보살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돌 사랑회뿐만이 아니라, 실제 이 축제를 가꿔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이었다. 민(民)이 앞장서고 관(官)이 밀어주는 축제 현장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세계유산이 남긴 즐거움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 10월 23일 오전 11시 개막한 강화 고인돌문화축제 현장. 왼쪽 하단 '강화 고인돌'이 보인다. ⓒ 최육상


▲ 이틀간 열린 강화 고인돌문화축제에는 대략 3~4만명의 사람들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 최육상


▲ 지역민들이 꾸린 먹을거리장터. '송해면'은 국민MC 송해 선생님이? '불은면'에서는 모든 면이 불었을까? ⓒ 최육상


▲ 돌도끼를 함께 만들어봐요~ 고인돌문화축제에서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 최육상


▲ 고인돌 만화가 사인을 받아요~ 고인돌문화축제에서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 최육상


▲ 나무에 가려진 강화역사박물관이 고인돌 공원 옆에서 10월 23일에 개관했다. 3천년 전 세워진 고인돌이 역사박물관을 불러들인 형국이다. ⓒ 최육상


▲ 축제 현장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연들의 행렬은 마치 수천년을 이어 온 고인돌의 길고 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 했다. ⓒ 최육상


▲ 고인돌문화축제 현장에는 오직 '강화 고인돌' 하나만이 있었다. 이 고인돌을 보러 이틀간 약 3~4만명이 찾아왔으니, '일당 2만쯤' 되려나?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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