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남는 거 없는 고구마 농사, 내년엔 안 할란다"

열심히 농사지어봐야 얻는 건 '골병', 그래도 씨 뿌리는 농민들

등록|2010.10.26 14:56 수정|2010.10.26 19:11

▲ 마트에서 사다 먹을땐 비싼 고구마, 하지만 시골에서 캐어 농협 등에 올릴땐 정말 싸게 올라가지요. 직거래 같은게 있으면 좀 나은데 그러한 것도 활성화되질 않았구요. ⓒ 윤태


지난 주말 충남 서산에 있는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단풍 행락 인파에 길이 막혀 고생 좀 했습니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하고 왔습니다. 경운기로 고구마 두둑을 갈아내는 과정에서 힘을 너무 많이 썼더니 손바닥까지 멍들어 버렸습니다.

일주일 전에 아버지께서 새끼손가락을 심하게 다치셔서 15바늘을 꿰매셨는데 그 다음날부터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또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작으나마 힘을 보태 드리려고 일하러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한 일은 벼 추수하고, 고구마 캐고, 논에서 짚 거두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추수를 하고 나서 잘게 부서진 짚을 압축해서 네모나게 만드는데 무거운 건 30~40kg짜리도 많아 도저히 허리를 펼 시간이 나질 않았습니다.

저희 형제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손 다치신 아버지께서 또 무리를 하실 테니까요. 병원에선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했다는데 요즘 같이 바쁜 계절에 손놓고 계실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쯧쯧, 농약값도 안 나왔구먼"

▲ 벼농사 꼼꼼히 따져보면 남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몸만 부서지고 돈은 안되고...그래서 농민들은 땅을 파고 살아야 합니다. ⓒ 윤태



솔직히 일을 하면서 짜증이 났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정성과 노력으로 키워내봐야 몇 푼 건지지도 못하기 때문이죠. 또 시골 주변에 사는 형, 누나들에게 아버지께서 일요일 오전 7시부터 전화하셔서 오라 하니 신경질이 날만도 합니다.

다들 자기 생활 바쁘고 피곤해서 일요일만큼은 늦잠도 자야 하지만 비가 곧 쏟아지려고 하니 아버지는 마음이 급해져 자식들이 싫어라 하는 걸 아시면서도 전화를 하셔서 깨우는 겁니다. 자식들 입장에선 아버지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별로 소득도 되지 않는 일들을 하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기어이 엄마가 내년에 고구마를 심으면 싹을 다 잘라버린다고 하십니다. 형, 누나들은 일 하러 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일은 계속 될 겁니다. 고구마가 아니라면 그 어떤 다른 작물로 말이죠. 물론 쏟아 부은 만큼 건지지 못하는건 매한가지입니다.

논에서 벼를 추수해 바로 수매하는 곳에 넘깁니다. 등급을 받고 바로 돈이 나오는데 추곡수매장 옆에 있던 한 어르신께서 수매가격 나온 걸 보시더니 "쯧쯧, 농약값도 안나왔구먼" 하시며 발걸음을 돌리시더군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봄에 남의 집 트랙터로 논 갈고 써레질 하는데 한마지기에 3만원 정도 삯을 냅니다. 우리집이 30마지기니까 90만원이 나옵니다. 이앙기로 모내기할 때와 콤바인 추수할 때도 마지기당 이와 비슷하게 삯을 치릅니다. 이밖에 비싼 각종 비료값, 농약값, 두엄, 종자, 모판, 물대는 전기와 물세, 농기계 부품, 농기계 기름값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부대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번 가을 추수 벼 수매로 저희집은 약 1000만원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잦은 비와 태풍으로 벼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등급도 낮다보니 값이 훨씬 덜 나오는 것이지요. 1000만원 중에서 남의 기계로 일한 품삯을 주고 나면 얼마나 남을까요? 비료, 농약, 모판, 전기, 농기계 부품, 기름 등 부대비용은 아예 포함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이거 주말에 일하러 내려가는데 길이 막혀 휘발유도 더 먹히니 오갈 때 기름값이나 나오겠습니까?

▲ 추곡수매장에서 만난 80대 가까운 농민의 중얼거림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농약값도 안나왔구먼." 하시던 그 멘트 말이죠. ⓒ 윤태


농민들이 골병 들고 빚더미에 올라도 바뀌는 건 없다

언제나 그렇듯 농촌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정부나 언론이나 마찬가지죠. 농민들이 골병들 고 농약 먹고 자살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도 상황은 늘 마찬가지지요. 그러한 일들이 수두룩하게 벌어져도 이제는 언론보도도 나오질 않더군요. 농민신문에서나 다룰까.

하지만 농민이 땅 안 파면 뭐 하고 살겠습니까? 설령 뿌린 것보다 덜 거둬들여도, 손해가 나더라도 농민들은 땅을 파야 합니다. 그게 바로 농민들의 운명 같은 것이죠. 아버지께 농사를 그만 지으시라 말씀 드릴 수도 없고, 고구마 싹을 잘라 버리겠다고 엄포 놓고 일하러 오지 않겠다고 큰소리 쳐도 그것이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죠. 농사짓는 부모님도 일하러 가는 자식들도 서로서로 애타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게 바로 농촌의 현실인 거죠.

▲ 추곡수매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가슴아픈 풍경. 지난 태풍과 호우로 이렇게 망가져 버렸습니다. 복구할 엄두도 못내고 비닐하우스안의 작물은 모두 말라 죽어있었습니다. ⓒ 윤태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