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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희궁 나들이, 왕은 없고 봉황만 남아

숭정전-자정전-태령전까지... 태령전엔 영조 초상화 봉안 중

등록|2010.10.26 14:53 수정|2010.10.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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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나들이, 왕은 없고 봉황만 남아!! ⓒ 이장연




서울 광화문과 서대문 사잇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선후기의 이궁이었던 경희궁은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해 1962년(광해군 15)에 완성됐다.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다.


▲ 왕은 사라졌지만 봉황은 남아있다. ⓒ 이장연




▲ 경희궁 숭정문 ⓒ 이장연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궐이라고도 불렀는데,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친 임금들이 경희궁에 머물렀고 태령전에 봉안된 초상화의 주인공인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경희궁에서 보냈다.

▲ 경종-정조-현종 세 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됐던 숭정전 ⓒ 이장연




▲ 숭정전 ⓒ 이장연






경희궁에는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를 열었던 숭전전을 비롯해, 일제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됐던 태령전,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자정전 등이 복원돼 남아있다.

▲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던 숭정전 ⓒ 이장연




▲ 숭정전에서 보이는 숭정문 ⓒ 이장연




경희궁에는 정전-편전 외에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으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궁권 건물이 헐리고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 본래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한다.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됐고, 이후 서울시가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파렴치한 일제에 수난당한 경희궁의 정전 지역을 복원해 2002년부터 일반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공개 중이다.

▲ 국왕이 공무를 보던 자정전 ⓒ 이장연




▲ 경희궁은 일제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 ⓒ 이장연




경희궁 관람은 무료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관림시간은 오후 6시까지다. 관련해 지난 21일 자전거를 타고 처음으로 찾아간 경희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한다. 세월이 흘러 조선을 통치하던 왕은 사라졌지만,

아직 왕을 상징하는 봉황은 남아 고즈넉한 경희궁을 지키고 있는 궁궐을...

▲ 영조의 초상화가 봉안된 태령전 ⓒ 이장연




▲ 영조 초상화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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