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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연금은 단기간에 7천불을 넘고...

[박용만과 그의 시대 25]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명운을 만나다

등록|2010.10.27 14:28 수정|2010.10.28 09:37

▲ 박용만 ⓒ 독립기념관



박용만은 이승만, 안창호와 함께 미주 3대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이었다. 1912년 정치학 전공으로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을 졸업했고, 샌프란시스코의 '신한민보'와 하와이의 '국민보' 주필을 지냈다.

그의 독립운동 노선은 '무력투쟁론'이었으며, 네브래스카 주와 하와이에서 군사학교를 창설해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20년 북경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변절자라는 누명을 쓰고 1928년 동족의 손에 암살됐다. 올해는 국치(國恥) 100년으로 잉걸불과 같은 그의 삶과 투쟁을 재조명하고자 평전 <박용만과 그의 시대>를 엮는다... 기자 말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출신 지역에 따라 파가 갈려 분쟁이 심했다. 보다 못해 구한말 법무대신을 지낸 이범진은 1911년 1월 13일 밧줄로 목을 맨 다음 권총 3발을 머리에 쏘고 자결했을 정도였다.

헤이그 밀사로 간 이위종의 아버지였던 그는 유서에 "원동 각처에서 당파의 형세가 한인과 일인 사이 보다 더 심하다 하니 더 큰 일이므로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라고 썼다.

서북파(평안도 지역) 출신으로 거류민단장을 지낸 양성춘과 기호파(경기도 그 이남 지역) 출신 정순만 사이에도 파벌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권총을 들고 간 사람은 정순만이었다. 하지만 양성춘을 처음부터 죽이려고 벼른 건 아니었다. 본국에 있을 때 독립협회를 창립하기까지 한 지사 중의 지사가 한낱 무모한 자객으로 나서겠는가.

그는 골이 깊은 갈등이 개선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권총을 자기 가슴에 댔다. 기겁을 한 양성춘이 그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으려 하자 발사된 총알이 엉뚱하게도 양성춘을 쓰러뜨렸다. 그게 1910년 1월 20일경. 그러나 재판에서 그의 무죄가 입증돼 다음 해 2월 7일 석방됐다.

그러나 서북파는 양성춘의 가족에게 복수하라고 부추겼다. 석방된 지 4개월 후쯤 정순만이 근처 중국인 상점에서 된장을 사가지고 돌아가려는데 양성춘의 처가 집으로 같이 가자고 청했다.

그가 순순히 따라간 것을 보면 자기가 계획적으로 양성춘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고 또 그게 법정에서 밝혀졌기 때문에 안심한 것 같다.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 숨어 있던 양성춘의 형 양득춘이 도끼로 내리쳤다. 정순만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 전명운 의사(1884-1947) ⓒ 독립기념관



김현구 일행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명운을 만나게 된 건 하늘이 도운 행운이었다. 그는 '스티븐스 저격사건'의 한 주인공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스티븐스는 구한말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이었지만 일제의 앞잡이였다.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선전하기 위해 귀국한 그를 장인환과 전명운이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했다.

전명운이 먼저 권총을 쏘았으나 발사가 되지 않았다. 그는 총자루로 스티븐스를 내리쳤다. 둘이 엉겨 붙어 있을 때 장인환이 방아쇠를 당겼다. 스티븐스는 쓰러지고 전명운은 장이 쏜 총알을 어깨에 맞고 부상을 입었다.

사건이 터진 3개월 후 전명운은 증거 불충분으로 보석금 없이 석방됐다. 일본은 거국적으로 스티븐스 추모와 재판의 후원에 나섰다. 일본정부는 죽은 스티븐스에게 '훈일등'의 최고훈장을 추서했다. 천황은 친서를 보내 유족을 위로했다.

그런 판국이니 전명운의 목숨도 안전할 리 없지 않은가. 그는 이름을 맥 필즈(Mack Fields)로 바꿨다. 그리고 8월경 은밀하게 블라디보스토크 행 배를 탔다. 일본 측 변호사들이 재구속을 주장하고 있는데다 장인환의 재판에 불리한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변호사가 그렇게 권유한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개척촌의 동포 이치곤의 집에 유숙하면서 러시아어 학원에 다녔는데 한 달 수업료 50전도 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해 말 공교롭게도 안중근 역시 이치곤 집에 같이 머물게 됐는데, 후일 그가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자 일본은 '제2의 스티븐스 저격사건'으로 추정하고 전명운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전명운은 이미 본국에서 의식화된 청년이었다. 서울서 태어나 18세가 되자 한성학교를 다녔고 독립협회나 만민공동회의 토론회도 기웃거리며 속에서 애국심이 자랐다. 1905년 5월 하와이 노동자 모집에 응해 이민선을 탔다. 유학이 목적이었던 그는 1년쯤 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독립운동 단체인 공립협회 회원이 됐고 의거에 몸을 던졌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아라사와 전쟁한다고 세계에 공언하더니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고 토지를 늑탈하며 민가를 늉화(방화?)하고 부녀를 강간하며 재정을 말리우고 관직을 차지하여 헌병 순검이 경향에 가득하여 우리의 생명을 학살하니 내 대에서는 자유행동을 얻을 수 없는 고로 미국으로 건너와서 학업을 닦아가지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이더니 금에 스테분이가 한국 월급을 먹는 자로서 일본을 찬조하여 허무한 말로 각 처에 통신해 아무쪼록 일본의 야만행동을 매양 엄적하다가 금반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에 무리한 말로 게재해 우리 동포의 애국성으로 일본을 반대하는 일을 감추고자 해 도리어 일본을 환영한다, 은혜로 안다 하는 등 설을 세상에 반포했으니 스테분은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고자 하는 원수라 그런고로 나는 애국성으로 그 놈을 포살하려고 탐지한 즉 금일 9시 반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난다 하기로 식전 조조에 육혈포와 그 놈의 사진을 가지고 선창에서 기다리더니 마침 9시 반에 스테분이 일본 영사와 같이 자동차에 내리는 것을 붙잡고 총을 놓다가 총이 병이 나서 나가지 않는 고로 턱밑을 냅다 지르고 사기가 급박해 도망코자 하는 즈음에 뒤에서 오는 총알을 맞았으며 스테분의 뒤에 섰다가 총 놓은 장인환 씨는 불기이회로 만난 것이요. 당초에 알지 못하는 일이라."

▲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보도한 1908년 3월 25일자 공립신보. 왼쪽 사진이 전명운 의사 ⓒ 독립기념관

이것은 전명운이 병원으로 실려 간 후 경찰관의 심문을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 전도사 양주삼이 통역한 내용이다. 당일 밤 교회에 40여 명의 동포들이 모여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우선 연조금으로 7백 불이 모였다. 장차 재판을 후원할 7명의 후원위원들도 선정했다.

미국인 변호사 카글란(Nathan C. Coghlan)은 원래 아일랜드 출신인데, 아일랜드 역시 영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나라인지라 무료변호를 자청했다.

카글란은 한인회당에 와서 장강유수의 연설을 해 동포들을 감동시켰다. 자기가 본래 아일랜드 사람인고로 누구든 자기 나라를 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부득불 동정하게 되며 두 의사처럼 열열한 애국심을 발휘해 그들의 정의를 밝히지 못하면 다시 변호사가 되기가 부끄러운 일이니 끝까지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소식은 순식간에 사방천지로 퍼져 나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되던 3월 25일자 '공립신보'에는 "덴버에서 유학하는 지사 박용만씨는 양 의사를 위해 의연을 모집한다고 전보가 내도했더라"라는 기사가 실렸다. 의연금은 미주는 물론 조선과 만주 등지에서도 쏟아져 단기간에 7천 불을 넘었다.
뉴욕 타임스는 "(전략) 세상에서 금일까지 알던 바는 한국 사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해 가치가 없는 백성인 줄로만 생각하던 것을 금번 사건으로 세계에서 다시 한인을 주목케 함이로다. (하략) "라는 논평을 실었다.
덧붙이는 글 필자 이상묵은 1963년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했고 1969년 이래 캐나다 토론토에서 거주하고 있다. 1988년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인으로 데뷔한 후 모국의 유수한 문학지에 시들이 게재됐다. 시집으로 '링컨 生家에서'와 '백두산 들쭉밭에서' 및 기타 저서가 있고 토론토 한국일보의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문헌-

'독립지사 우성 박용만 선생' 다음 카페(후손이 꾸민 명작 카페)

방선주 저 '재미한인의 독립운동'

안형주 저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김현구 저 'The Writings of Henry Cu Kim'

신한국보, 국민보, 공립신보, 신한민보, 단산시보 등 1백 년 전 고신문들.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각 종 자료들.

독립운동가 열전(한국일보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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