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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살도시 (Suicide City) - 66

열여덟고개 입관(入棺) - 4

등록|2010.10.29 11:11 수정|2010.10.29 11:11
   단골로 흥청거리는 불야성(不夜城)이었다. 귀금속과 남창(男娼)을 놓고 상인들과 고객의 시끌시끌한 흥정, 황사(黃沙)처럼 번지는 가로등불의 잔해가 언덕까지 전송됐다. 야시장(夜市場)과 언덕까지는 끽해야 50m. 믿기지 않았다. 승강기는 그다지 멀리까지 가지 않았고 자살도시 근방인 것 같은데 야간시장이 열리는 폴리스와 통해 있었다. 와본 적이 있는 장소였다. 자살도시와 멀찍이 떨어진 곳인데 어쩐 영문일까.

  승강기에서 나온 라이즈는 둔덕에서 눈을 비비고 야시장을 탐색했다. 남색(男色)에 취한 노리끼리한 갱년기(更年期)의 졸부와 초록 렌즈에 스모키 화장을 한 선정적인 미남들의 랑데부, 폐경기(閉經期)의 미망인을 호객(呼客)해서 카슈미르 블루 에메랄드와 바이올렛 블루 탄자나이트(Tanzanite)의 가격을 비교하는 상점 점원의 속어(俗語)가 빚는 만화경(萬華鏡). 분명 거기인데. 자살도시를 활기찬 도시와 이리 가깝게 둔 건 로빙의 안배였나. 혹은 북망산(北邙山)과 인가(人家)는 동전의 양면 같은 거라는 진부한 훈계? 따지지 말자. 일단 안전하게 기거할 곳을 찾자.

  당장 쾌면(快眠)에 들고 싶었다. 피로가 극에 달해 숙식할 곳을 찾아 푹 뻗고 자야했다. 라이즈는 승강기 앞에 둔 아기 재림자와 책을 가지러 돌아섰는데 입구에 펀펀한 그림자가 박혀있었다. 자신이 아닌. 불손한 기운이 후르르 휘날리며 근접했고 라이즈는 벌떡 자빠질 뻔했다.

  "귀염둥이 납셨네."

  장난기에 서늘한 비도(飛刀)가 어린 조롱이 어둠에서 쳐나왔다. 누군가 음지에서 한 발짝 내딛자 반색하는 안면이 드러났다. 시종 웃음기로 채운, 워들링편집장이었다. 주위에 다른 사람은 없고 워들링 혼자였다. 늘어놓을 자랑이 많다는, 일대일이 무섭지 않다는 위풍(威風)에 눌려 라이즈는 한 발짝 뒤로 갔다. 승산이 없는 짓은 하지 않는 인물이라 라이즈는 위험한 상황임을 체감했지만 어찌 대처할지 난감해 움츠러들기만 했다.

  "입술 갈라진 거 봐. 자살도시에서 비타민 섭취를 못했나보군."
  "편집장님...... 여길 어떻게......"
  "빙고! 설명은 쟤가 해줄 거야."

  하늘을 가리키는 워들링의 손가락. 라이즈가 턱을 들자 워들링의 코트가 짤랑짤랑 흔들렸다. 퓨슝 소리가 났고 가느스름한 부지깽이로 찌른 듯 총탄이 라이즈의 심폐를 관통하며 흉골의 삭정이를 긁어냈다. 라이즈의 대동맥은 칼로 째는 통증으로 곤두섰고 다리가 풀리며 비탈에 철퍽 쓰러졌다. 과하게 자외선에 쪼인 듯 눈이 팔짝팔짝 쑤셨다. 총상(銃傷)이 이런 건가. 제대로 맞았는지 뒤트는 것도 뜻대로 안됐다. 입을 뻐끔하는 것도.

  정맥에서 생혈을 밀어 올릴 때 상반신이 터덕이니 육신은 아직 대뇌의 하달을 받는가 보다. 어항 밖의 금붕언가. 화덕에서 튕겨 나온 숯불이 어항에 빠지면서 불기를 잃고 녹말로 전이(轉移)하는 팬터마임(pantomime) 같았다. 춥다. 라이즈는 멍했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본 죽음은 이러하지 않았는데. 외견상(外見上) 숭고하게 평안히 눈을 감는, 그건 과분한 허례(虛禮)인지도.

  은하수에 빛 한 점이 등장하며 라이즈의 반사 신경을 건드렸다. 사선(斜線)을 그으며 술잔을 권하는 원반(圓盤)은 공작새처럼 긴 꼬리를 곱슬곱슬 말린 혜성이었고 잔영(殘影)을 너울거리며 뭉실뭉실 떠내려갔다. 왜 지금? 혜성은 재앙을 몰고 온다나. 핵전쟁이라도 터지나. 그딴 건 아무짝에 소용없다. 내가 죽는 게 재앙이다. 정말 죽는 건가.

  인간은 밤하늘에 자기별을 갖고 있다는 동화가 생각난다. 사람이 죽으면 그 별도 따라 소멸하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면 새별이 생성한다는. 저 혜성이 나와 결연(結緣)한 별일까. 혀조차 삐꺽할 수 없는 나를 위해 구슬피 울면서 자태나마 현시(顯示)하려는 애도의 발부림이라면 그나마 소복한 기쁨이다. 허나 이것이 천명(天命)인지 불완전한 인간에게 불가분(不可分)한 초췌한 오판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여명이 트면 감람수(橄欖樹)의 잎사귀에는 이슬이 맺히고 성숙한 여성은 주기적으로 월경(月經)을 한다. 인간의 생령(生靈)도 이리 반복하지 않을까. 엊그제의 이슬이 글피의 이슬과 다르다고 어찌 확언할 수 있나. 한 차례 공간을 점유한 이슬이 사라져도 영혼 같은 비물질이 새로 조제되는 이슬에 들어가면 그건 재생(再生)이다. 우리 눈에 안 보일 뿐. 다만 알 수 없을 뿐이다.

  곧 죽을 판국에 허투루 의문을 가질까. 현재 나한텐 그것만이 중대하다. 나는 지구상에 유증(遺贈)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누구도 나한테서 재산, 사상, 추억, 기록을 가져갈 수 없고 그럴 가치가 있는 것도 남기지 못했다. 단지 나는 몇십 파운드 유기질과 무기질을 구비했을 뿐이다. 내 질량조차 이 우주에 영향을 미칠 근수(斤數)는 아니며 영혼이 있다한들 내 영혼이 타인보다 지대(至大)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매달리는 건 내세(來世)이다. 있다면, 있어야 한다. 이대로 끝나면 나는 무상(無常)하니 사라진다. 본래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 난 인정할 수 없다. 결승선 테이프를 거의 끊었었는데. 필시 다시 태어나서 과거의 실수를 딛고, 기억할 수 있다면, 도약하련다. 하지만 내세가 없다면. 무엇이 이것을 밝혀줄 수 있을까. 종교? 철학?

  죽음, 그 이후에는 뭔가가 있다. 인간의 인지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형성하는 공간과 새로운 종류의 생명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그걸 설명할 수 없다고 그것이 존재하는 않은 것은 아니니까. 분명, 그것은 있다. 나와 가깝거나 또는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어도 내 혼백을 수복(收復)시킬 존재 말이다. 뭐라고 이름 붙이건. 나는 그걸 믿는다, 믿고 싶다.

  내 내면은 몹시 허기지다. 속세적인 허기 말이다. 왜 생전에 주림을 채우지 못했나. 나는 보물을 캐려했다. 깊은 수심의 강과 험준한 절벽을 마다하지 않고 보물이 묻힌 탄광에 가려했다. 그곳에 보물이 있다고 게시판에 올린 광부(鑛夫)와 보물 위치를 표기한 지도를 믿었다. 속은 건가. 나는 혹시 하천(河川)을 거슬러올 때 바닥에 묻힌 사금(沙金)을 지나친 게 아닐까. 시냇가에 움막을 짓고 소량이라도 매일 열심히 모래를 쟁반에 올려 가려냈으면, 그게 내 인생의 금광이었지 싶다. 늦었다.

  왜 이리 허전하냐. 내가 품은 욕심과 사후세계에 대한 위화감은 인간이 신산(神算)의 상아탑(象牙塔)에 이르러야만 해소할 수 있을까. 그건 결국 모른다는, 인간은 끝끝내 허함을 채우지 못하고, 항시 해갈(解渴)의 멍에를 풀려는 고식적(姑息的)인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귀납법인가. 출생을 선체험하지 못하듯 죽음도 미리 경험할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생후 처음 겪는 세계로 불려가는 내게 일생에 얻은 지식은 무용(無用)하리라. 그건 공포다.

  눈물은 참아야 한다. 눈꺼풀 파락할 힘도 없기에 눈물이 차면 눈이 감길 것이다. 한 번 감으면 다시 못 뜰 것 같다. 서럽다. 울고 싶은, 지극히 인간의 본연적인 에토스(Ethos)조차 표명할 수 없다는 참담함이. 또르르. 아차. 눈물이. 멈춰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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