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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살도시 (Suicide City) - 67

열아홉고개 산파(産婆)

등록|2010.10.30 10:10 수정|2010.10.30 10:10
1년 뒤.

넥타이를 매고 목을 자라처럼 움직이며 거울을 봤다. 썅. 또 각이 틀어졌다. 좋은 날 왜 이래. 까짓, 그냥 두지 뭐. 10년 만에 달아보는 넥타이라 워들링은 어설프기만 했다. 그래도 싱글벙글했다. 출판 기념식에 온 주빈(主賓)들의 덕담과 칭찬에 우쭐했고 샴페인 도수(度數)도 주량에 딱 맞아 유쾌하기만 했다. 지난 1년은 그에게 탄탄대로(坦坦大路)였다. 비하인드 미디어의 매출과 순익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고 그 또한 부시장으로 수직 승진하는 유명세를 치렀다. 부와 영예, 거기다 독신 생활을 청산할 약혼자까지. 사랑이라는 천군만마까지 얻었다.

오늘은 만승지위(萬乘之位)에 화룡점정(畫龍點睛)을 찍는다. 1년 동안 전력(專力)했던 르포소설 <자살도시> 출판기념식과 더불어 하트와의 정혼(定婚)을 공표하는 날이었다. 하트를 만난 건 천재일우(千載一遇)였다. 고운 심성에 정숙함까지 곁들인, 그야말로 워들링에겐 과복한 여성이었다. 자신도 이혼하고 중년에 이처럼 훌륭한 배필을 만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하루하루가 황송할 뿐이었다. 그래도 초혼인 신랑 신부처럼 행복하게 살리라 맹세했다.

직원들이 연회석 중앙의 대형 케이크에 양초를 꽂을 때 하트가 아기를 안고 나타났다. 내빈들은 박수를 치며 맞았고 그녀는 온화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워들링은 서둘러 하트에게서 아기를 받아 그녀를 케이크 앞으로 안내하고 무선 마이크를 달아주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하트는 다소 부끄러워하더니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제 프로필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구식(舊式)이라 비위를 맞추는 축사(祝辭)에는 능하지 못합니다. 저자(著者)로서 간소하게나마 말하고 싶은 건 이 책은 제 작품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글은 제가 썼지만 기획과 편집 방향을 잡아주신 워들링 편집장님... 아니죠, 부사장님과 그 외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이 책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 모두 공동 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자면 우리는 관광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크루즈 유람선을 타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관광지에 잠시 정차했다 떠나기에 원주민의 실태는 모르는 것처럼요. 킬리만자로 산의 국립공원에 간다고 아프리카를 알 수 없듯, 북미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순방(巡訪)했다고 모히칸족이 되지도 않습니다. 불행히도 이게 자살을 보는 우리의 나태한 관점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꼴불견을 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무거운 발언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워들링이 아기를 안은 채 박수를 쳤다.

"연설이 어찌나 엄격한지 물렁한 케이크가 얼음이 됐습니다. 드실 때 치아 상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다쳐도 보험이 되지 않으니까요."

워들링의 재담은 손님들을 크게 웃기며 흥을 돋우었다. 라운지 음악이 퍼지며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었고 워들링은 아기를 하트에게 넘겼다.

"당신도 어지간하군. 하기야 그게 당신 매력이지. 요 녀석이 울지 않아 다행이었어."
"전 이런 자리가 어색하네요. 그런데 얘를 양자(養子)로 삼은 게 잘한 건가 모르겠어요. 정이 안 간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자식처럼 키울 수도 있는데 굳이 그래야했나 해서요."
"아무 걱정 말라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테니까 지금은 즐기자구."

워들링은 아기에게 뽀뽀를 해주고 임원들에게 가서 건배를 했다. 환담하는 워들링 일행의 뒤에서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넉넉하니 남은 케이크에서 한 조각을 건져냈다. 그리고 하트와 아기를 슬며시 보더니 양장본(洋裝本) <자살도시>가 놓인 진열대로 갔다. 그녀는 책을 들더니 작자(作者)의 인사말이 있는 서면(書面)부터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상기(上氣)된 채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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