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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친구' 천신일 겨눈 검찰의 칼, 진검일까

압수수색·소환 모두 늑장, 진정성 의심... 권력형 비리 수사로 이어질까

등록|2010.10.31 20:16 수정|2010.10.31 20:16

▲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 청탁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지난해 5월 20일 피의자 신분으로 18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와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전격 압수수색→강제 소환 검토.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절친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갑자기' 가속도가 붙고 있다. 제기됐던 각종 의혹에도 천 회장이 도피성 해외출국에 나선지 두 달여 만이다.

정치권에서는 천 회장에 대한 수사가 현재 진행 중인 전방위 기업 수사의 종착역이 될 정관계 로비 수사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반발 무마용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의 친구' 천 회장의 구속이 정치권을 강타할 사정 태풍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천 회장은 현재 대우해양조선의 협력사인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로부터 은행 대출을 도와 달라는 등의 청탁과 함께 40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를 받고 있다.

"천신일에게 현금 26억 건네"... 검찰 뒤늦은 강제소환 검토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는 최근 천신일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로부터 26억 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중인 이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2008년 수차례 서울 성북동 천 회장 자택을 찾아가 26억 원을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 회장의 운전기사도 "지난 2006년 현금 26억 원을 쇼핑백에 나눠 담아 천 회장 자택으로 여러 차례 가져다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돈이 천 회장 자녀 3명의 명의로 사들인 임천공업과 계열사인 건화기업, 건화공업 등의 주식 매입 대금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대표는 "천 회장이 자녀 3명 명의로 사들인 3사의 주식 대금을 되돌려 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28일 서울 중구의 세중나모여행 본사와 서초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천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 등 강제 소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천 회장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시점에 허리 디스크 치료 등을 이유로 도피성 해외출국을 한 후 두 달여 동안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천 회장이 연루된 사건의 수사를 하면서도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아 수사에 차질을 빚고 이후 신병 확보에도 미온적이 태도를 보이면서 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천 회장이 밤마다 일본 도표의 중심가인 아카사카의 한 술집에 나타난다는 제보가 접수됐다"며 "주일 한국대사관에 파견나간 검사도 있는데 뭐하고 있는 건가"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친구' 천신일, '표적 사정' 역풍 바람막이?

▲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 청탁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지난해 5월 20일 피의자 신분으로 1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 권우성


특히 C&그룹, 태광그룹 등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기업 수사가 주로 지난 정권 인사들과 한나라당 친박계를 겨냥하고 있다는 설이 흘러나오면서 '표적 사정'이라는 정치권의 반발이 강하게 일었다. 검찰과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정계 로비 리스트'에는 하나같이 야권 중진이나 구 여권의 486 의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게다가 최고 실세로 꼽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 23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지금 야당에서 문제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집권 시절의 문제일 것이고 정확히는 구 여당 것도 수사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해 야당의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7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검찰의 칼날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관대하고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해외로 도망쳤다"며 "공정 구호 아래 칼을 휘두르는 사정 정국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검찰이 천 회장 회사에 대한 '뒷북' 압수수색을 벌이고 구속 방침을 굳힌 것은 이 같은 정치권의 반발을 차단할 '희생양'으로 앞세우려는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 등으로 역풍을 맞았던 검찰에게 대통령의 친구이자 막후의 실세로 불리는 천 회장만큼 좋은 '바람막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천 회장에 대한 수사를 얼마만큼 깊이 진행할지에 대해서는 의심도 뒤따른다.

일례로 검찰은 지난 해 '박연차 게이트' 수가 당시 천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범죄 사실 소명이 부족했다는 이유였다. 천 회장은 이후 불구속 기소됐지만 세무조사 무마 청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고 주식시세 조종·불법증여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지난 8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당시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해서 한 만큼 현 정권의 실세인 천 회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수사 의지 의심받는 검찰, 천신일 소환 이후 주목

검찰은 이번 사건을 천 회장의 개인 비리 문제로 보고 있다. 이번 수사는 임천공업의 비자금이 주 타겟이라는 것이다.

언론 인터뷰에서 "천 회장이 현 정권의 위력을 빌려 부패한 것은 아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던 이재오 특임장관도 지난 29일 특임장관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천 회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공직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부 권력을 등에 업고 자리를 이용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임천공업이 빼돌린 비자금 일부가 남 사장의 연임 로비에 쓰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민주당이 천 회장에 대한 제대로 된 검찰 수사를 그렇게 촉구해 왔음에도 검찰은 천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차하지 않았다"며 "증거 인멸이 이미 끝났을 시기에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등 검찰이 진정한 수사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검찰의 진정성을 가릴 시금석은 이재오 특임장관 등 권력 실세 연루설이 제기되는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천 회장을 구속한다 해도 만약 개인 비리 수사에 그친다면 '구색맞추기'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18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 의혹을 전반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해 내사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던 연임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들을 뒷받침할 새 증거 확보 여부에 따라 개인 비리뿐 아니라 권력형 비리 차원의 수사로 옮겨붙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과연 검찰이 뽑아든 칼은 날이 예리한 진검일까, 아니면 녹슨 무딘 검일까. 천신일 회장 소환 이후 검찰의 행보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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