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이 극찬한 피아골 단풍, 눈으로 보세요
가을의 전설 노래하는 피아골 단풍, 지금이 한창
▲ 산도 물도, 사람도 붉어지는 삼홍의 피아골 단풍 ⓒ 최오균
▲ 선혈처럼 붉은 피아골 단풍 ⓒ 최오균
조선시대의 대학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은 왜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는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란 말을 했을까? 나는 그 답을 모르겠다. 저 계곡에 앉아 있는 네 여인들에게 물어보면 답을 해줄까? 남명도 저 여인들처럼 삼홍소의 어느 널따란 바위위에 앉아 저 붉은 단풍을 안주 삼아 한 잔의 술 걸쳤으리라.
▲ 푸른 가을하늘도 붉게 물들일것만 같은 피아골 단풍 ⓒ 최오균
남명은 58세 되던 1558년 4월 10일부터 26일까지 17일 동안 지리산 일대를 유람하기도 했다. 그러니 남명이 이 세상을 뜨기까지는 수십 차례 지리산을 들락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피아골 삼홍소에 이르러 그 유명한 <삼홍소三紅沼>란 시를 남겼다.
▲ 폭포와 단풍 ⓒ 최오균
▲ 삼홍소의 단풍 ⓒ 최오균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피아골은 지리산 주능선 삼도봉과 노고단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골골이 모여드는 골짜기다. 동으로는 불무장능선, 서쪽으로는 왕시루봉 능선 사이에 길고 깊게 파여 있다. <피아골>은 이름조차도 기묘하고 멀게 느껴진다. 나는 피아골이란 묘한 이름의 연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여행자는 그 유래를 피아골 계곡 지리산 국립공원 안내판에서 찾아본다.
▲ 직전마을 ⓒ 최오균
직전(稷田)은 바로 '피밭'이란 뜻이다. 피아골의 본격적인 산행은 그 직전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평일인데도 직전마을엔 주차를 하기가 어렵다. 단풍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인홍(人紅)의 무리를 이루고 있다. 설악산처럼 비록 기암괴석은 없지만 웅장한 지리산의 주능선을 따라 섬섬옥수 흘러내리는 섬진강의 푸른 흐름은 피아골 단풍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백미다. 피아골 단풍은 계곡을 따라 연곡사에서부터 주릉을 향해 장장 40여 리 걸쳐 펼쳐진다.
▲ 생강나무단풍 ⓒ 최오균
▲ 사람주나무 단풍 ⓒ 최오균
▲ 복자기나무단풍 ⓒ 최오균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샆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
정말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바라보기만 해도 피가 끓는 것 같다.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이리도 고운 것은 먼 옛날부터 이 골짜기에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단풍으로 피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제와 신라의 싸움터, 임진왜란, 빨치산 토벌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은 골골이 계곡마다 피의 역사를 품고 있다. 피아골 단풍에 취해 구계포교 출렁다리를 지난다. 출렁거리는 다리에서 피아골 계곡을 바라보니 붉은 단풍에 취해 온몸이 출렁거린다.
▲ 피아골대피소의 돌탑 ⓒ 최오균
계곡을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단풍은 온몸이 단풍 그 자체다. 산도 붉고, 물고 붉고, 사람도 붉다.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지리산 시인 이원규가 노래했듯 피아골 단풍을 만나려거든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른 지금 당장 와야 한다. 지금 피아골은 단풍으로 가을의 전설을 노래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2010. 11. 1 지리산 피아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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