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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도 힘든 설악산, '오체투지'로 오른 이유

이미 아픈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되면 죽습니다

등록|2010.11.04 11:08 수정|2010.11.04 11:08
"망가져버린 자연환경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 백담사-대청봉구간을 오체투지로 오르는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와 녹색연합 활동가들 ⓒ 녹색연합

절정에 오른 가을 단풍을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산을 찾는 이때, 지난 10월 한달 동안 '설악산 등산로 오체투지'에 나선 이들이 있다. 설악 녹색연합 박그림 대표와 활동가들은 '아름다운 설악산을 망칠 수 있는 케이블카 설치를 막자'는 염원을 담아 설악산 곳곳을 누볐다.

이들은 걸어서 오르기도 힘든 설악산 등산로를 세 걸음 걸은 뒤 두 무릎과 두 팔, 머리르 차례로 땅에 대고 완전히 엎드린 뒤 "설악산이 품을 수 있는 만큼의 탐방객만 받아들이기를...", "설악산을 무너뜨리는 케이블카, 모노레일 설치계획이 없어지기를..." 소망했다.

이들의 오체투지는 오색-대청봉 구간을 시작으로 백담사-봉정암-대청봉 그리고 천불동-대청봉 구간 순으로 주말마다 진행됐다.

걸어서 4시간 혹은 6시간 걸리는 구간을 오체투지로 오르는 데는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2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등산로가 넓지 않아, 뒤에서 잠시 기다렸다 일행들을 지나쳐 산을 오르며 "참으로 고생하십니다"라는 말을 남기는 이들, 잠시나마 함께 오체투지를 하던 사람들, 케이블카가 온전히 나쁜 것은 아니라며 노약자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케이블카가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등등. 지난 한 달 간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설악산의 바위와 돌계단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르는 이들의 발걸음을 지켜봐 주었다.

"스위스에서는 케이블카가 점점 낙후되어가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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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정상에서 만난 스위스 교환학생 ⓒ 녹색연합


대청봉 정상에서 만난, 고려대 교환학생이라는 한 스위스 학생은 "스위스에서는 케이블카가 점점 낙후되어가는 시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청봉에서 만난 많은 등산객들은 아름다운 설악산을 망치는 케이블카는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10월 1일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기준을 완화하는 '자연공원법 개정안' 공포로 현실화 됐다.

▲ 천불동계곡을 따라 올라 대청봉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박그림 대표의 모습 ⓒ 녹색연합

개정안 내용 중 공원자연보존지구에서 허용되는 최소한의 공원시설 중 로프웨이(케이블카) 설치허용 규모를 2㎞ 이하에서 5㎞ 이하로 조정하는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설치허용 규모를 완화함으로써 설악산 대청봉 혹은 지리산 천왕봉 정상 바로 밑까지 케이블카 건설이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1967년 자연공원법이 제정된 이후 오히려 보전기준을 낮추어 개발이 허용되게 만들어 준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10월 25일에는 환경부가 국립공원위원회(위원장 환경부차관)를 열어 '국립공원 삭도(케이블카) 설치 기본방침'을 심의·의결했다. 주요내용은 내륙 및 해상 국립공원별로 각 1곳 이상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것과 각 지자체별 케이블카 설치 난립방지를 위해서 단계별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내륙과 해상 각각 1곳 정도에 시범적으로 설치해 이후 경과와 분위기를 보아가면서 다른 곳에서도 추진할 것이며 하나의 국립공원에 여러 지자체가 서로 케이블카 설치를 신청할 경우, 1~2곳으로 조정 및 권고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 환경부 내에서도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르면 연내에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심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각 지자체들이 케이블카 설치를 주장할 때 국립공원 보전을 위해 힘써야 할 곳이 환경부다. 그런데 환경부는 오히려 케이블카 설치기준 완화를 시켜줌으로써 케이블카를 설치하라고 독려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북한산에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등산객 분산과 환경훼손을 방지하겠다는 이유로 케이블카 설치를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에서 주장하는 케이블카 설치 이유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다. 현재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 곳 중 경남 통영 케이블카 정도가 경제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실정이고 나머지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지역경제에 수익성 증대 논리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환경부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등산객들이 분산되고 등산객들로 인한 산림훼손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종점까지 올라온 사람들이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정상부) 이동하지 않고 고스란히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간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발상이다. 곳곳에 사람들의 발길로 인한 샛길이 생기기 시작하여 새로운 등산로로 인한 훼손이 시작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미 훼손된 설악산, 케이블카 생기면 더할 것

▲ 대청봉에서 등산객들과 함께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를 외치다! ⓒ 녹색연합


강원도 양양군은 현재 설악산 오색집단시설지구에서 대청봉 부근 관모능선까지 4.7㎞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11월 중 환경부에 공원계획변경신청서를 내고 산림청에 국유림 사용 요청을 해 내년 하반기부터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는 "양양군에서는 오색-대청봉 구간은 연간 40만 명 탐방객이 찾아 훼손이 심한 상태이며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등산로를 폐쇄하거나 격년제로 개방하여 자연을 복원할 수 있고,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경제가 좋아지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8인승 곤돌라 90개가 돌아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시간당 1600명, 연간 100만명에 가까운 80~90만명이 설악산을 찾는다면 정상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라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걸어서 하산하는 등산객들로 인해 등산로는 남아나질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간 40만 명 정도가 찾아와 이미 많이 훼손된 구간에 다시 100만 명이 넘는 탐방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에 오르면, 그 훼손의 정도가 얼마나 심해질지 상상하기 어렵다.

▲ 누적 탑승객 260만명을 넘어선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 녹색연합


환경 훼손을 막겠다면 다른 방안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현재 1년 중 3개월 정도 수준인 안식년을 3년으로 늘리거나, 산림훼손을 막기 위한 등산객들에게 환경등산교육을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자연환경을 수익성 증대를 위한 도구로 보고 개발만을 위한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모습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케이블카 설치 움직임이 미래세대에게서 빌려온 자산인 자연환경을 훼손하여 다시 돌려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정말 우려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연(自然)의 말 뜻대로 그대로 두는 길이 자연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또 자연의 외침을 거스르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과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결정되기 때문에 일 하나하나가 아주 소중한 것이며 깊이 있게 잘 생각하고 판단 내려야 한다." - 박그림
덧붙이는 글 이현우 기자는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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