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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체벌 대신 악수 청하는 교감 "매질 없다고 혼란? 학생이 조폭인가"

[현장] 학생·교사·학부모 참여 '생활지도규정' 마련한 한울중학교

등록|2010.11.03 10:38 수정|2010.11.03 10:38

▲ 서울 한울중학교 복도 게시판 한쪽에 '사랑의 매, 무서워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울중은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 박상규


"문제 학생 통제 불능, 교실은 혼란."
"체벌 전면금지, 사실 불가능."
"교사는 교육 포기, 학교는 엉망진창."

2일 아침, 출근 내내 전날 언론이 보도한 말들이 맴돌았다. 서울지역 초·중·고 체벌이 전면 금지된 1일, 많은 언론은 학교 현장의 혼란을 전하기에 바빴다. 그런 보도를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 하나.

'뭐야, 그동안 우리나라 학교를 지킨 1등 공신이 고작 몽둥이였어?'

괜한 의심 오래 하면 병 된다. 그래서 찾아 나섰다. 몽둥이 없이도 교육이 가능하고, 평온이 유지되는 학교를 말이다. 1일 몇몇 교사들과 전교조 서울지부는 한 학교를 추천했다. 금천구에 있는 한울중학교였다.

학교 지키는 공신이 고작 몽둥이인가

2일 이른 아침 도착하자 한울중학교 운동장은 뽀얀 흙먼지로 가득했다. 3학년 학생들의 체육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축구에 한창이고 여학생들도 자유롭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머리가 길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공을 제법 차는 한 남학생에게 슬쩍 다가갔다.

"여기 학생들 머리가 제법 긴 편이네요. 두발은 학생 자유인가요?"

남학생은 질문에 별 관심에 없다는 듯 축구공을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남자는 귀만 보이면 되고, 여자는 염색과 파마만 안 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내가 다시 "어쨌든 두발에 관한 규제가 있긴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학생은 공을 골대 쪽으로 뻥 찬 뒤 내게로 돌아섰다.

"파마나 염색 하고 싶은 아이들도 있겠죠. 그래도 지금의 규칙은 우리 학생, 선생님, 학부모가 다 참여하고 논의해서 만든 거예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의견도 반영된 것이니 큰 불만은 없어요. 여기는 학생도 많지 않고."

일명 '학생부장'으로 통하는 생활지도부장 교사를 만나기 위해 학교 2층으로 향하는 길. 한 풍경 때문에 다시 걸음을 멈췄다. 한 교사와 여학생들이 노란 국화가 핀 화단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나는 대중가요가 주변에서 들렸다. 한 여학생의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음악이었다. 한 여학생은 "공부시간만 제외하면, 휴대 전화 이용과 소지가 자유"라며 웃었다.

▲ 한울중은 학교 규칙을 정할 때 학생들을 참여시켰다. 학교 복도 게시판에 학생들이 제안한 '체벌 대체 프로그램'이 붙어 있다. ⓒ 박상규

생활지도부 사무실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췄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학생들의 글과 그림 때문이다. 먼저 한울중 학생회가 붙인 '체벌이 없으면 어떻게?'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의 매가 없어지면, 수업을 방해하거나 친구들과 싸우고 학교 규정을 위반하는 학생들을 위해 어떤 대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선생님과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가 가능할까요? 학생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 바로 아래에, 2학년 학생 다섯 명은 실명으로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이들이 제안한 내용은 이렇다.

1. 벌점 부과
2. Reading Books
- 인권, 폭력에 대한 책을 읽도록 지도하며,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느낀 점, 반성문을 쓴다.
3. 학생지도 Smile!
- 성찰실을 열어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마음 나누기를 시도한다.
- 전문적인 선생님을 초빙하여 대화를 통해 학생의 상태와 심각성 등을 진단한다. 이후 학생이 바뀔 수 있도록 지도한다.

학생·교사·학부모 참여해 규정 마련..."어떤 경우라도 학생 권리 보호하라"

이 밖에도 여러 학생이 새로운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벌금을 걷어 연말에 불우 이웃을 돕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그냥 글쓰기는 너무 쉬우니 영어 반성문을 쓰게 하자"는 견해도 있었다. 또 어떤 학생은 "수업 방해의 정도가 심하면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요약 정리하도록 하고 따로 보충 수업을 받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처럼 한울중은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정책에 맞춰 학교 규칙 개정 작업에 학생들을 참여시켰다. 먼저 지난 9월 중순부터 '학생생활지도 규정 제·개정 추진 계획'을 수립했다. 이 절차에 따라 교사·학생·학부모 설문조사를 벌였고(9월 29일), 학년별로 교사들도 토론을 벌였으며(10월 13일), 교사·학생·학부모 대표의 토론회(10월 18일)도 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학교 구성원들은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생활지도 규정>(이하 생활지도규정)을 마련해 지난 10월 31일 공포했다. 이 규정의 총칙에서는 "학생은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 또는 집단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는 점과 "학교에서 체벌은 어떤 경우라도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금지된다"고 못 박고 있다.

교사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도 "교사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수업 및 학생생활지도에 있어서 자율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전제한 뒤 "교사는 학생의 수업권과 인권이 보장되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생활지도규정에서 눈에 띄는 건, 체벌 대체 프로그램 지도에 관한 규정이다. 여기에 따르면,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 지시를 불이행한 학생에게는 1차 경고를 하고 그럼에도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이른바 '성찰교실' 지도를 명령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성찰교실은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몽둥이 '찜질'을 가하지 않고, 상담 전문교사와 상담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하도록 하는 공간이다. 한울중에는 이미 임시 성찰교실이 마련돼 있다. 교실의 이름은 '마음에 말 걸기'.

▲ 한울중이 운영하는 성찰교실. 교실 천장에는 계몽 문구가 아닌 "마음에게 말걸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 박상규


교실 안에서 '반성하라' '회개하라' '새로운 인간이 돼라' 등등의 계몽적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잘못을 저질러 성찰교실로 온 학생을 처음 맞이하는 문구는 '마음에게 말 걸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이다.

2일 오전, 한 여학생은 성찰교실에서 상담을 받고 있었다. 이 여학생은 무릎을 꿇고 있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 않았다. 차 한 잔 나누며 김경아 상담교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조경근 한울중 교감은 "서로 마주보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학생들도 마음을 열고 좋게 행동을 바꾸게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아'와 악수하는 교감·대화 강조하는 학생부장

잠시 후 성찰교실에 몇몇 학생들이 또 들어 왔다. '죄목'은 심한 장난, 교사 지시 불이행 등 다양했다. 이 학생들은 벌로 한자쓰기와 독서를 '명' 받았다. 조 교감은 물론이고 박수찬 생활지도부장은 이 학생들을 심하게 죄인 취급하지 않았다.

조 교감은 학생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우리 잘 하자"고 말했다. '문제 학생들'은 수줍게 웃으며 교감의 손을 잡았다. 한 1학년 학생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선생님들이 무조건 때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니까 스스로 많이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며 "미안해서라도 다시는 성찰실로 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찬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힘들어도 체벌 대신 다른 지도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동안 가장 쉬운 체벌만을 택한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며 "체벌은 그 순간에만 문제가 해결될 뿐이고, 결국은 교사와 학생 모두 감정적으로 힘들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사는 "물론 심하게 말을 안 듣는 학생이 종종 나오긴 하지만 교사에게는 돌봄의 의무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며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소통을 하면 일명 '문제아'들도 행동이 고쳐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곧 '학생자치법정'도 열어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예정이다"며 "2~3년 동안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체벌 금지는 시대의 가치이자 당연한 상식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교사는 이렇게 반문했다.

"군대에서도 체벌이 금지 된 지 오래고, 가정에서도 함부로 아이들을 때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왜 학교에서는 사람을 때려야 한다고 하는 거죠? 인간을 가르치는 일에 폭력을 동원하는 건 모순 아닙니까?"

"몽둥이 없다고 학교 혼란? 아이들이 조직 폭력배라도 되나"

▲ 한울중 건물에는 "자율과 책임으로 꿈을 실현하는 학교"가 적혀 있다. ⓒ 박상규


학교 관리자나 교사들의 '감시' 없이 학교를 둘러봤다. 물론 수업 시간에 졸거나 문제를 일으켜 뒤에 선 채 수업을 받는 학생도 있었다.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1시간 동안 둘러보는 동안 몽둥이는 못 봤고, 매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전날 많은 언론이 보도한 혼란, 교실 붕괴, 교사 자괴감 등의 말이 오히려 생소했다.

복도에서 만난 A교사는 "체벌 금지 됐다고 학교에 혼란이 온다면, 정말 그 학교가 이상한 것 아니냐"며 "어떻게 학생들 패지 않는다고 하루 만에 교실이 붕괴 되나, 학교가 '깡패 양성소'인가, 아이들이 무슨 조직 폭력배라도 되냐"고 웃었다.

1층 복도에서 만난 3학년 김아무개군은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는 몽둥이와 전혀 상관이 없다"며 "매질이 없으니 인간적으로 존중받고,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말을 마친 김군은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 쪽으로 뛰었다. 긴 머리가 찰랑 찰랑 흔들리는 '뒷태'가 보기 좋았다. 몽둥이 없는 학교를 나서는 정오께. 더 이상 '학교 엉망진창' '혼란' '교실 붕괴' 등의 말들은 맴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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