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배우면 노후보험 든 것이여"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57호 전수자 황년임 선생을 만나다
▲ 바우덕이축제안성 지역에서 열리는 바우덕이 축제에도 경기민요 팀은 참가했다. ⓒ 송상호
적어도 안성에선 모든 경기민요는 그녀로부터 시작된다. 황년임 선생, 그녀를 안성의 경기민요 대모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안성의 경기민요는 그녀로부터
그녀가 8년 동안 가꿔온 '경기민요 취미교실'. 이 교실을 통해 2백여 명의 제자들이 거쳐 갔다. 그들 중 민요학원을 차린 사람도 있고, 지금까지도 무형문화재 선생에게 교육을 받으며 매진하는 제자들도 있다. 40~60세 등의 다양한 연령대의 제자들은 남녀가 구분이 없다. 요즘 들어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제자로 들어와 열심히 가르침을 받고 있어 황 선생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녀가 안성 농협에 경기민요 강사를 나가면서 연결된 봉사활동. 이 교실은 새로운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바로 '농촌사랑 실버 봉사단'이 탄생한 것. 이 봉사단은 안성의 장애인 시설, 양로원 시설 등은 물론이고 지역축제와 지역신문 창간기념 행사 등 안성 바닥에서 경기민요가 필요한 곳엔 반드시 나간다.
요즘도 그리 크지 않은 교실엔 제자들이 찾아와 경기민요를 배우고 간다. 황 선생은 "내가 민요 배울 땐 생전 목이 쉬지 않았는데,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목이 쉬었던겨"란다. 제자들에게 민요와 장구를 함께 치도록 가르치려고 모범을 보이다 보니 목소리가 커져 목이 쉬었단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 걸걸하게 잠겨 있다.
▲ 봉사단원들최근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농촌사랑 실버봉사단원과 함께 했다. ⓒ 송상호
새벽장사하며 민요를 배워
전북 고창 출신인 황 선생은 어렸을 적부터 민요를 접했다. 그녀의 외삼촌이 소리꾼이었다. 어깨 너머로 흥얼대며 배웠어도 그 소리를 모두 다 외워 버렸다. 그런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자신도 소리꾼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그 반대를 못 이겨 일단 결혼을 했다. 그럼에도 소리꾼의 꿈은 접히지 않았다. 35세 되던 해에 큰맘 먹고 민요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민요의 길이 28년이 지났다.
자녀 키우기와 가정꾸리기도 쉽지 않은데 민요 배우기까지.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엔 민요를 배우러 갔다. 점심 굶기가 일쑤였다. 어떤 때는 차안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민요교실이 시작되던 8년 전까지 이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밖에도 그녀가 민요의 길을 걸으며 겪은 역경 드라마는 적잖다. 그녀가 맑으면서도 깊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이런 고난의 길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57호 전수자'란 타이틀이 괜히 얻어진 게 아니다.
▲ 장애인시설 방문안성에서 제일 큰 장애인 시설 혜성원에 방문했다. 실버봉사단 뿐만 아니라 안성 농협에서도 봉사단 몇 팀이 합류했다. ⓒ 송상호
민요 배우는 것이 노후보험인 이유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로 이어지는 아리랑이 경기민요다. 한국 민족이라면 아리랑 아니던가. 도라지 타령 또한 경기민요. 하지만 소리하는 사람들 사이엔 경기민요 하면 '태평가'란다.
"경기민요는 청아하고 맑고 흥겹고 쌈박하다"며 황 선생이 말해준다. 원래 민요는 농사지으며 불렀다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 흥을 북돋우고 힘을 내게 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특히 경기민요가 흥겨운 것은 경기도에 이름난 평야와 곡식농사가 유명하기 때문일 게다.
"민요 배우면 건강에도 좋은겨. 단전호흡과 위장호흡으로 소리를 배우니까 한참 하고 나면 소화가 잘되어서 배도 고프다니께. 물론 호흡 조절헝게 폐기능도 좋아지제. 여그 와서 주부 우울증도 고치는 사람 수두룩혀. 제자들이 여그 와서 신명나게 노래 부르고, 농담하고 웃다가 자신도 모르게 고쳐 부럿지. 거기다가 봉사활동도 다닝게 우울증 그놈이 배겨 나것소."
이렇게 말하는 황 선생. 봉사단원들은 본인들이 자비를 들여 한복도 차려입고, 차량운행도 한다. 일체 비용을 본인들이 즐겨 부담한다. 아무도 이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은 없다. 만일 있다면 봉사단에서 스스로 나갔으리라. 나이가 들어도 심신이 건강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 황년임 선생민요교실에서 선생은 지금 경기민요 한자락을 신명나게 부르고 있는 중이다. ⓒ 송상호
황 선생이 "민요를 배우는 것은 노후보험 드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민요를 배워 놓으면 어디를 가도 인기다. 친구와 친척들 사이에서, 칠순 팔순 잔치에서, 경로당에서 등에서. 악기 반주 하나 없어도 언제 어디서든 틀면 나오는 민요. 그것이 노후생활을 든든하게 해주는 보험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도 조그마한 민요교실에 맑고 흥겨운 경기민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1일 경기민요교실에서 황년임선생과 이루어졌다. 민요교실이나 실버 봉사단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황년임 선생 010-9975-7340 에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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